설교자료/출애굽기

[출14:10]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전쟁

'코이네' 2020. 7. 1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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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전쟁

본문 : 출애굽기 14:10-2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을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에 가까이 못하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하는 출애굽 행진은 '전쟁의 행진' 이었습니다. 이 행진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여러 가지 면을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와 환경을 조정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중에 신음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2:24)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역사에 깊이 개입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은 또한 친히 행동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이 죄 가운데 거할 때에는 그 죄악에 대해서 분노하시며 가차없이 심판하시기도 하십니다(32:30-34). 또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전적으로 나타나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에는 주의 얼굴을 대면하여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범위를 초월해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전쟁을 통해서 보여지는 하나님은 백성을 옳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 모든 불의의 세력과 싸우시는 전쟁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말씀을 조망하여 보면 이 세상은 하나의 전쟁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 전쟁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 지,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여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자기가 싸우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싸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자기 영혼과 영원한 복락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하여 놀라운 말씀은 주셨습니다. 역대하 2015절을 보면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또 히브리서 210절에는 '구원의 주' 라는 말이 나옵니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대장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이시며 captain이며 leader인 예수를 구원의 대장으로 모시고 악한 영들과 싸우는 구원의 병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성도가 지상에서 사는 삶은 싸우는 삶입니다. 전투하는 삶입니다. 이 싸움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싸움에 가담한 내가 넘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전쟁에 치명타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싸움에서 실패할 때, 그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실패입니다. 성도된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싸움의 성격을 바로 파악하고 이 싸움을 지휘하시는 사령관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서 친히 싸우시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본문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우리들을 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성서의 문자적인 표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애굽기 14장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 백성을 위해서 치르신 참으로 위대한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전쟁기사를 상고하면서 우리의 신앙행진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여 봅시다.

 

 

이 전쟁의 적()은 누구입니까?

 

그는 철저히 파멸될 때까지 추적하는 지독한 자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경험했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마병을 동원해 하나님의 백성을 축적합니다. 사탄은 갈보리산 전투에서 그의 최대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은 그의 최대의 무기가 무력하게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서 여지없이 정복되고 말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항복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끝까지 하나님을 괴롭힙니다. 이젠 하나님께 직접 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사랑받는 그의 자녀를 공격하여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합니다.

 

죄의 세력에서 해방 받은 성도들이여!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지배했던 사탄은 우리를 추적하고 우리를 생포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치명타를 입혀 넘어지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사탄은 우리가 그의 목표가 아님에도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를 괴롭히려고 우리를 계속해서 공격합니다. 나의 아픔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형제의 아픔이 형제만의 아픔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해서도 안되고 헛눈팔아도 안됩니다. 적에게 상처를 입고 포로로 끌려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봅시다.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아 나오자마자 전쟁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놀이에 가담한 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전쟁훈련에 가담한 것도 아닙니다. 실전(實戰)에 배치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전쟁의 성격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믿음으로 싸우는 전쟁인데,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고 의젓하게 대처해 가야 할 터인데 그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의 눈이 감겨져 버리니까 육의 눈만 크게 떠지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육의 눈으로 보이는 애굽 군대가 크고 두렵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신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큰 이적과 기사를 보았으면서도 아직 이들의 믿음이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하루 아침에 생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실전에 가담시키시면서 적 앞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적과 현실만이 더 크게 다가오게 되고, 삽시간에 두려움과 절망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불신앙적인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가슴에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만 의식하면서 그 상황에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되면 비참하고 약해집니다. 스스로가 자기를 학대하며 열등의식에 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그러고들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이르되 왜 우리를 이곳에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 상황이 이쯤 되면 이것은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 싸움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은 전쟁의 행진인 것을! 끝없이 싸우면서 진군해야 하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도 전쟁의 행진임을 기억합시다! 싸우며 나아가는 행진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평탄하리라고만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길은 싸움의 길이라는 것은 찬송가 543장 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주여 인도하소서"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합니다. 출애굽 행진은 바로 신앙의 길인데, 이것은 시험을 받으면서 나아가는 길입니다. 신명기 8:2 "너로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 우리는 이 신앙의 길에서 시험을 거치면서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매 시험마다 믿음으로 합격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 좌절감으로 탄식하게 되면 낙제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였기에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이 없이 굳게 서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합격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행진은 훈련소의 연습 게임이 아니라 실전을 통해서 우리 주 하나님을 배워가는 치열한 전투 현장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넉넉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9)"

 

또 모든 시험에서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바로 우리의 생각과 요구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배워 가기 위한 행진인 것입니다.

 

 

이제 이 전쟁을 주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살펴봅시다.

 

홍해 앞에서 닥친 위기 상황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혀 돌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무장된 적군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희생되어 질 것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한순간에 뒤바뀝니다. 절망의 아우성은 감격과 승리의 함성으로 바뀌게 되고 추적하던 적군은 그 두려움의 바다에서 파멸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원리와 작전원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라고 말합니다.

 

먼저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는 이스라엘을 안정시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평안하라고 외칩니다. "두려워 말라" 라는 것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5:1), 여호수아에게(8:1); 다윗이 솔로몬에게(역상 28:20); 하나님의 사자가 다니엘에게(10:12); 주님께서 제자들에게(12:32) 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 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라 이는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 마음이 견고한 자는 평강하게 됩니다. 왜냐면 그가 주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서라, 고요하라(Stand still !)" 라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모든 시도를 중단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행동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극한 시련 속에 처하게 될 때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가만히 서라", "가만히 있어라", "조용히 하라, 조용히 서라" 이것은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의 본성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입을 다물고 맘을 놓고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종은 권면합니다. "Stand still !" 하나님이 만든 전투에서 인간적인 노력은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홍해를 말려 버릴 수 있나요? 애굽 사람들을 없앨 수 있습니까? 뗏목을 만들 시간이 있습니까?이것은 모두 불가능할 뿐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 앞에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님께 향해서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의 한계가 드러날 때, 개입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노라고 손을 들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순간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홍해 물이 갈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바라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히 11: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의 말씀처럼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믿음으로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육의 눈을 뜨고 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암담한 위기상황에서 넉넉히 구해 주실 구원의 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사물을 보는 것이 믿음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너의 위기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서 망하게 하시지 않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사탄의 세력에서 구원해 주신 분이 아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것을 상으로 주시며 행복한 삶을 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던 백성이 순식간에 고요해 졌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떨쳐 버리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믿음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홍해 앞 광야에 깔려 있는 이 출애굽 군중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십시오. 이 엄숙한 분위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상황이 급전(急轉)했습니다. 소란하고 웅성거리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고요해지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정돈한 것입니까?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뭇 심령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교우들이여!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끝없이 소란스럽고 아우성치는 듯한 인간 본연의 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리를 진압시키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우리 구원의 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홍해의 갈라지는 이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떠한 장애도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끝으로 그의 종 모세에게 주신 명령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가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모세는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도 행동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짜기 전에 하나님에게 상황을 아뢰고 분부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일이 더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가게 하라 그리고 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에는 언제나 약속이 먼저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그리하면 너희를 괴롭힌 애굽 사람을 대적하여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것이다. '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다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인간의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그의 종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만드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구원의 길을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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