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5:33] 가정의 관계정립 _ 김창인 목사

'코이네' 2020. 4. 23. 13:47

가정의 관계정립

본문 : 에베소서 5:33-6:9

설교 : 김창인 목사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써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최초로 접하게 되는 환경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최초의 교육의 장이 되며, 부모는 최초의 교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최초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들이 가정 밖에서 받게 되는 그 어떤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히브리인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 포로이후에도 유대인들은 회당 교육과 함께 가정에서 율법교육과 도덕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회당교육과 동시에 가정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무리 뜨거운 신앙의 열정과 풍부한 성서적 지식, 자녀에 대한 적당한 이해에 근거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라 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다릅니다. 이 안타까운 한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환경 안에 있습니다. 또 한 부모만큼 자녀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의 자녀들을 부모만큼 잘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상고하는 것은 부모들도 교육의 대상이 되어야만 함을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I. 부부관계 정립(5:33)

 

 

가정은 부부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아담 혼자 지음 받았을 때에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지음 받았다는 것만으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남녀를 짝지어 주셨을 때 비로소 가정이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 생활의 기본단위는 가정입니다. 결코 개인이 아닙니다. 부부관계가 건강할 때 가정이 건강하고 가정이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교육이라 하게되면 흔히 자녀교육으로 국한을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보다 더 우선해야 할 가정교육은 부부관계 정립을 위한 교육입니다. 부부가 바른 자세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자녀교육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부에 관계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19:4). 하나님께서 남자도 여자도 만드셨기에 남녀는 평등한 관계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은 엄연히 영역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은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원리를 부부가 정확히 알면 부부관계는 정립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부부의 의무와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남편의 의무는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아내는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과 경외가 부부간의 의무요. 책임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대로 부부의 책임과 의무를 잘 이행하면 바른 관계가 정립됩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되는 부부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가정 주일을 맞이하여 부부관계 정립을 위한 철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II. 부자(부모와 자녀)관계 정립(6:1-4)

 

 

하나님께서 남녀를 짝지어 가정을 이루어 주신 것은 "가정"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자녀를 얻고자 하심입니다(2:15). 경건한 자녀는 출생자체로서 경건한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부모가 경건해야 하고 경건한 부모가 자녀에게 경건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세례요한을 나실인으로 경건하게 키워 바쳤던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선구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경건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기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가 된 것입니다. 즉 메시아의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자녀에 대한 교훈이 먼저 나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기도가 기도를 낳은 것처럼 순종이 순종을 낳습니다. 부모가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자녀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하여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불순종밖에 없는데 어떻게 부모에게 순종하겠습니까?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려고 하면 자신이 먼저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종이 순종을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과 공경을 배워 실천하는 자녀에게는 잘됨과 장수의 복을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계속해서 부모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자녀를 교육할 때 부모가 자기 고집과 주장을 강요하여 절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과 동시에 주의 말씀을 가지고 교육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가장 좋은 교과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부자(부모와 자녀)관계가 바로 정립되는 것입니다.

 

 

III. 상하관계 정립(6:5-9)

 

 

사람에게는 사람 위의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민은 평등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일하는데는 위가 있고 아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일하는 윗사람이 있고 아래서 일하는 아랫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라 하여도 이것을 무시하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상하관계가 정립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 바울 시대였으니 주종 관계를 당연시하여 말한 것이기에 오늘에는 의미가 없다고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주인과 종은 한 집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오늘에도 한 집안에 직계는 아닐지라도 집안에 어른이 있고 한참 아랫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주종관계는 아니지만 상하관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선후배가 있고 직장에서도 역시 선후배로서 상하관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종은 주인에게 주께 하듯 하고 단 마음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정당한 명령에는 이유와 핑계를 대지 말고 주께 하듯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윗사람의 권위에 잘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권위가 무시되는 곳에는 혼란이 야기됩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는 귀한 것입니다. 가령 교수에게 학문의 권위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교육은 황폐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권위를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라 하였습니다. 즉 아랫사람들에게 주께 하듯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요. 동시에 인권을 존중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상하관계가 바로 정립됩니다. 이것은 가정주일을 맞는 교회가 꼭 해야 할 교육입니다.

 

 

제가 시무하는 광성교회에서는 5월에 맞게되는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을 합쳐서 5월 첫 주일을 가정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맞게 되는 가정 주일에 가정교육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가장 건전하고 바람직한 가정은 부부관계가 바르게 정립된 가정입니다. 부부관계가 잘못되면 그 가정은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역시 바르게 정립된 가정이 행복합니다. 부자관계(부모와 자녀)가 악화된 가정에서 하나님이 받을 영광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윗어른과 아랫사람들의 좋은 관계가 삶의 멋을 더하게 합니다. 그러나 상하관계가 순탄치 못할 때 되는 일이 없습니다. 가정주일을 맞이하여 각 가정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어 기독교인의 가정으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