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갈라디아서

[갈1:11]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코이네' 2019. 2. 22. 22:10

계시의 복음

본문 /  갈 1:11-12 

 

 

근 과학이 발달하면서 핵 연료봉이니,원자핵이니 하는 용어들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원자력 잠수함이라든지 수많은 건물을 단번에 파괴하는 핵무기, 또는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거대한 시설들도 따지고 보면 원자핵이라는 조그만 한 물질에서 그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정작 거대한 힘을 일으키는 핵심이며 실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있는 어떤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고 할 때에도, 역시 그 기업을 이끌어 가는 곳은 개발실이나, 기획실과 같은 핵심 사무실입니다. 순식간에 휩쓸어 버리는 태풍도 역시 그 가운데에는 태풍의 눈이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부터 태풍의 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밖으로 보이는 어떤 힘이라든지, 현상들을 따지고 들어가면 어떤 근원지, 또는 진원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떤 사람이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면 그 위대한 업적을 있게 한 사상이나 불타는 신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역사의 업적을 남긴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모세의 가슴에 불타는 자기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애정이 원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모세의 가슴에서 불꽃처럼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을 꼽으라면 사도 바울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는 신약의 27권의 성경 중 13권을 썼으면 기독교를 유럽과 아시아에 전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여러분 그가 이런 위대한 사역을 이루는 인생을 살도록 만들었던 그 어떤 원동력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그토록 위대하고 헌신적인 일들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하도록 만들었단 말입니까. 전통입니까? 바울이 배웠던 학문입니까? 아니면 성공을 위한 이상입니까? 바울의 가슴속에 마치 태풍의 핵과 같은 것,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롬1:16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능력을 주는 그 생명의 복음을 훼방하는 일들에 대하여 갈 1:8에 말하기를 그가 누구든지, 혹 그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20:24에는 말하기를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여 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강력히 외치고 있습니다. 바울의 가슴속에는 복음에서 오는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열망으로 언제나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 복음에 관하여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강해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교훈들에 의해서 그들의 신앙이 병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의 거짓 교사들이 그들을 꾀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전하는 복음도 꾸며낸 것이며 사람이 만든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과 같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분명한 복음의 말씀에 서있지 않는다면 우리도 잘못된 교훈들에 의하여 갈등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만일 100명의 성도들에게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에 왜 감사와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입을 열어 전도하지 못합니까. 믿음 생활이 왜 힘들게 느껴집니까.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 안다해도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복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 복음에 대한 확신에 서있습니까? 바울은 이 복음의 근원과 출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본문 11절을 보십시다.

 

먼저 그는 이 복음이 사람의 뜻에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사람의 뜻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고 사람을 따라라는 말씀으로 쓰여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근원이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즉 복음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복음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책들은 모두가 사람을 따라 온 것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들은 모두가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종로서적에 갔을 때 실망을 했었습니다. 책이 생각만큼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나중에 다시 가 본 후에는 역시 책이 많구나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저는 처음에 2층에만 갔었는데 3,4,5층에 계속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도 역시 사람의 지혜와 지식에서 나온 것입니다.아무리 심오한 철학 책이라도, 과학 책이라도, 결국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다.그 출처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결코 사람의 머리와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12에 말하기를 이는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받다라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을 전수 받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전통이나 사상을 받아들여서 이어받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에 논문을 쓰려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남들이 쓰지 않은 특별한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그러지 말고 먼저 쓴 논문들을 잘 읽고 그것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써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대 부분의 졸업생들이 다 이렇게 씁니다.사실 대학교에서는 논문 쓰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지 어떤 특별한 논문의 내용을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결국 전수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 만든 사상이나 전통을 사람을 통하여 이어받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배웠던 국사 책을 우리 후세들이 배울 것입니다. 또 그 후세들이 배울 것입니다.해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한 것은 이전에 누군가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받은 이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다”. 그 말은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사람이 만들었거나 생각했었던 이전에 있었던 어떤 전통이나 사상을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에 있었는데 그것을 전수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에 있었던 그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전달해준 그 어떤 사람도, 역사도, 문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여기 축구공을 내가 가슴에 안고 있다면 분명 누군가가 그 공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전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입니까. 바울은 그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배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12절에 이어서 말씀합니다.“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배우다 라는 말의 뜻은 가르침을 받는다”. “학습한다”. “연구한다”. 라는 의미입니다.배운다라는 것은 받아들인다라는 뜻보다 더 적극적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개발한다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지만 스승의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 전수받은 것이며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에게 물려받은 것이지만 스승의 그림을 바탕으로 하되 받은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추가하여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면 바로 배우다라는 학습과 연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전해 내려오는 것을 전수 받은 것이 아닐 뿐더러 그것에 전수 받는 사람 누군가가 자신의 뜻을 첨가해서 물려준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당시 헬레니즘 시대에는 많은 지식인들은 로마에 가서 새로운 학문들을 배웠습니다.수사학, 철학, 천문학들을 유명한 스승들로부터 배웠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배운 그들은 그 스승의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학문을 개발해서 새로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자꾸 학문은 발달되어 갔습니다. 바울은 이런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의 거짓교사들은 바울이 학문을 했다고 하는데 아마 바을이 전하는 그 복음은 그가 배웠던 어떤 학문일종이며 그가 그것을 개발해서 가르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복음은 나에게 어떤 스승이 있어서 그 스승이 연구한 것을 배운 것도 아니고 또 내가 첨가해서 만든 가르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울의 복음은 어디서 왔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만들지도 않았고, 전에 있었던 사상이나 전통도 아니며, 아무에게도 전달받지 않았고, 아무도 그 복음을 가르쳐 준 사람도 없고, 또 그 자신도 그것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 복음은 어디서 왔단말입니까?

 

그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2절에 이어서 말씀합니다.“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는 이 땅의 어느 누구 어느 곳에서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 복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출처가 땅이 아니고 하늘입니다. 사람이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계시란 무엇입니까. 어떤 감추어진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배우고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탁월하고도 초자연적인 영적 감각을 주셔서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사실을 알고 믿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전수 받은 율법 뿐 입니다.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자신에게 오셔서 복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계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께서 바울에게 계시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그토록 사랑하고 확신하며 생명을 걸고 전하는 복음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5:1-8말씀에서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계시로 말미암아 받은 복음의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3절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주님께로부터 복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그 받은 내용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8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과 피흘림 가운데 돌아가신 주님은 바로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5:8-9에도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만한 아무런 죄가 없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받을 죄에 대한 형벌과 고난을 대신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에게 복된 소식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둘째는 죽으신 주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사도들을 비롯하여 여러 형제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왜 복음입니까. 주님께서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몸도 사망의 권세를 깨고 주님과 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축복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낙심치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주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소식입니다.

 

셋째는 2절의 말씀과 같이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무명한자도, 배우지 못한 자도 그 어느 누구든지 이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육체의 생명이 끝나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그 구원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나라에서 세세토록 찬양하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의 거짓교사들은 이 복음이 아니라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어떤 선한 행위를 할 때에 구원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죄만 저지르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냐고 반박합니다. 의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의인다운 행동을 했어야지 의인이 될만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냥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입니까. 오늘도 모든 종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신을 향하여 뭔가 선을 행하고 참선을 해야 그에 따른 댓가가 주어진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잖습니까. “그래 맞아 어떻게 영생을 얻는 그 큰 구원을 얻는데 지난 과거에 어떤 큰 죄를 범했든 그냥 단순히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일까.그래도 뭔가 어떤 의로운 일을 했든지 앞으로 해야되지”.

바울은 바로 이런 사실을 역설합니다.“바로 여러분들의 그 가르침이야말로 사람에게로 온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과 지혜로는 결국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2:16절에 분명히 말합니다.“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것은 사람의 지혜나 이성으로 생각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사람의 뜻으로 된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 난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뛰어넘는 영적인 통찰력을 부어주셔서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게 해 주신 것이지 사람의 지혜로는 생각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의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다.여러분은 오늘 왜 교회에 오셨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마음의 평안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 많습니다.축복을 원한다면 차라리 이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성경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입니다.뉴스를 보십시다 세계적인 지도자인 등소평을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도를 합니다.그렇습니다.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도, 금을 창고에 쌓아놓고 살던 사람도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들어 이 땅에 한 줌의 흙만을 남길 뿐입니다.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까?. 사람의 영혼은 그 육체를 벗어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3:23에 이렇게 말합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러분 중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의 칭호를 받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고통이 있는 형벌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누가 우리의 이 참혹한 운명에서 구원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우리를 이 영원한 고통의 형벌에서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절대적 절망에 처한 인간의 귓가에 들리는 희망의 소리, 그 소리가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인 예수를 보내셨다.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해서 받으시고 부활하셨다.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 영원한 저주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엄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너는 공부도 못하고 유리창이나 깨고 장난만 치니 내일 30대의 매를 맞을 테니 그리알라라고 말했습니다.그 학생은 다음날 긴장된 모습으로 선생님께 나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맞을 필요가 없으니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네가 몸이 약한 것을 잘 아는 아버지가 대신 와서 맞고 갔다는 것입니다.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그 아들이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의로운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대신 매를 맞았습니까.아버지가 대신 매를 맞는 그 이유는 단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받을 형벌이 이미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도살장의 양처럼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과 고난을 대신 받으시고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찾아가서 이 복음을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이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보잘것없는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자 되신 주님을 함께 찬양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의 복음을 간직하고 승리의 삶을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