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57:1]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코이네' 2019. 1. 16. 15:47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성경:시편 57:7-11

 

 

시편 57편은 다윗이 읊은 시들 중에 하나입니다.특히 이 시는 다윗이 사울왕의 추적을 피해 굴 속에 숨어 있으면서 읊은 시입니다.그러기에 57편은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는 고백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비록 굴 속에 피신해 있긴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로 피하겠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7절로 11절 속에서 다윗은 네 가지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 마음을 확정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살 때 맨 먼저 상품을 살펴 봅니다.그리고나서 값을 따져본 다음 마음을 정합니다.일단 마음의 결정이 끝나면 값을 치루고 물건을 사게 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 입니다.선을 보고 데이트를 하다가 마음이 정해지면 날을 정해 결혼을 하게 됩니다.

본문 7절에서 시인은 고백합니다.“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두번씩이나 자신의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그것은 내 마음이 확고부동하다”,“내 마음이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쫓기는 몸이라도 그 믿음이 확고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원인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기 혼자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고 버림받았다는 그 생각 때문에 불안과 초조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시절 잠깐이지만 공동묘지가 있는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긴긴 겨울밤이 되면 동네 어른들은 화로가에 둘러 앉아 옛날 얘기로 꽃을 피우곤 했는데 반드시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귀신 이야기와 공동묘지 이야기였습니다. 공동묘지에서 처녀귀신을 만났다느니,슬피 우는 여자 울음소리가 매일 저녁 깊은 밤이면 들려 온다느니, 앞 동네 김생원네 개가 없어졌는데 며칠 후에 공동묘지 상여집 앞에 죽어 있었다느니등 오싹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매일 같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어머니를 따라 공동묘지 건너 마을을 가야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마을은 공동묘지 한 가운데로 난 길을 통과해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제 마음에 어머니와 함께 간다면 아무 걱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공동묘지에서 기절하지 않고 건너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동행자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고달픈 인생 길을 혼자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걷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외롭고 쓸쓸해집니다.그리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시인처럼 하나님을 향한 확정된 마음으로 인생 길을 걷는다면 그는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을 확정합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기로 확정합시다.

 

2. 노래하고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7절 끝부분을 보면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뜻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영광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날 텔레비젼 스위치를 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음악 프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그건 음악이라기 보다는 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옷차림하며 머리 모양은 설명조차도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뒹굴고 뛰고 소리 지르고 흔들고 꼬고 좌우지간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동작은 모조리 취하고 있었습니다. 정신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젊은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면서 신명나게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우리들의 찬송 태도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은 우리들의 찬송 태도는 거기 비하면 잠꼬대 정도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찬송 태도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8절에서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 영광이란 내가 가진 모든 조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재능과 동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비파 연주가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음악가였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재능을 다바쳐 주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교회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악기는 오르간과 피아노여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소리나는 모든 악기가 하나님 경배에 동원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21을 보면 이미 그 당시 유발의 후손들이 수금과 퉁소를 만들었다고 했고, 역대상 23:5을 보면 다윗왕 당시 다윗이 만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4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9:26을 보면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섰다고 했고,27절을 보면 번제를 드리면서 나팔 불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시편 150편을 보면 나팔,비파,수금,소고,제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악기와 여건과 능력과 재능을 총동원하라는 것입니다.

우린 본문에서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양하리이다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나는 입 다물고 앉아 있으면서 남이 부르는 찬송을 듣고 그것으로 찬송을 대신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노래,내 찬송,내 기도,내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3.주께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9절에 시인은 내가 주께 감사하오며라고 했습니다.우리는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감사는 제사입니다.

 

시편 116:17을 보면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감사를 히브리어로 토다(todah)라고 합니다.그 뜻은 손을 펼치다,숭배,혹은 경배자들이 부르는 합창,감사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란 단순한 사의 표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며 경배이며 찬송이며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감사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제사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송아지,염소,,비둘기,곡식가루,기름 등 제사의 성격에 따라 드리는 제물도 각각 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올 때 빈 손으로는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5을 보면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했고,34:20을 보면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감사로 드리는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 영으로 주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은 내 몸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셋은 물질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감사는 내 영과 몸과 물질을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될 사람이 감사를 모르는 것은 배신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린다면 다시는 감사할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둘째 감사는 의무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13을 보면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땅하다는 것은 의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당연히 반드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짐승도 먹이를 두고 호의를 베풀면 주인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짐승에 비해 영장이라고 합니다.짐승보다는 나은 편에 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셋째,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감사해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인색하면 하나님의 축복도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많이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4. 새벽을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8절 끝을 보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그 뜻은 새벽에 잠자지 않고 일찍 깨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역대상 23:30을 보면 새벽과 저녁마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고 했고,느헤미야 8:3을 보면 유대인들이 새벽부터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46:5을 보면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새벽은 좋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밤에는 늦게까지 잠 안자고 새벽에 잡니다.새벽은 깨는 시간인데 늦잠을 잡니다. 인간의 생체리듬은 자연을 거슬릴수록 해롭습니다.낮에 일하고 밤에 잠자는 사람과 낮에 잠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비교 조사했다고 합니다.낮에 잠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이 신경성질환과 육체질환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14: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것도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시인이 새벽을 깨우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수를 들이키고 담배를 빼어 물고 조간신문을 드려다 보는 것이 좋습니까,아니면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주의 제단에 나와 새벽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둘째,하루의 출발을 찬송과 기도로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벽 기분은 그날 하루를 좌우합니다.새벽부터 은혜받고 기분이 좋아지면 하루의 삶이 형통하고 순조롭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그날 그날의 생활 리듬을 새벽으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면 저녁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그리고 새벽 제사를 드리려면 잠자는 시간을 약간 줄여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새벽을 빼앗아 가는 흉기가 바로 텔레비젼입니다.저도 TV를 가지고 있고 즐겨 보고 있지만 그러나 TV 때문에 가족들의 대화도 망가지고 아이들의 눈도 다 망가지고,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리듬도 깨져버렸습니다.그래서 TV문화는 필요악입니다.

내일 새벽부터 새벽 제단을 쌓기로 합시다.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납시다.그러려면 새벽에 일어나 제단으로 나와야 합니다.새벽에 나와 애굽을 넘어뜨리신 하나님을 만납시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됩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