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61:1] 땅끝에서 / 조성노목사

'코이네' 2019. 2. 20. 20:47

땅 끝에서

시 61:1-8

설교 : 조성노 목사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5]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6]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시편 61편은 대표적인 탄원시입니다. 비탄시입니다. 다윗의 일생에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지은 시입니다. 이때가 주전 979년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윗이 황망히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마하나임에 피난 가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사실 다윗은 압살롬을 가장 총애했습니다. 키도 컸고 이목구비도 준수했습니다. 압살롬은 유능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윗이 한 때는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권을 차지하려고 아히도벨이라는 다윗의 참모와 수작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다윗의 나이 61세였습니다. 그가 71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거의 말년에 그런 꼴을 당했습니다. 피난 갈 때의 모습은 사무엘하 15장 30절에 나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 원어로는 <아타프>인데 죄수복을 입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마하나임 생활이 감옥 생활 같았다는 겁니다. 감옥살이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럽습니까. 다윗이 아들을 피해 감옥생활을 하는 듯하다는 건데, 거기가 지금 땅 끝과 같다고 합니다. 물론 지리적으로 볼 때도 마하나임이 가나안의 경계지역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저 땅 끝 마을 해남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서 말하는 땅 끝이란 자기가 처한 형편이 백척간두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소식이 오기를, 압살롬이 마하나임으로 내려오다가 지금 요단강 건너편 길르앗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다는 소식이 온 겁니다. 그러니 다윗의 절망감, 비애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럼에도 다윗은 어떻게 하며 그 절망감을 이기며 극복했습니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절도 마찬가집니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부르짖었다는 것은 절규하며 큰 소리를 내며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다윗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기도했겠습니까? 피를 토하며 기도했을 겁니다. 사실 다윗은 얼마든지 군사를 동원해 반란군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란군의 수괴가 누구입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은 반란군을 무력진압하는 방법을 택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땅 끝으로 내몰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윗처럼 부르짖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벼랑 끝에서 기도하기보다 몸을 던져 자폭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절규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다윗은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다윗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3절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다윗은 피난 와중에 왜 신앙고백을 했을까요? 어려울 때, 땅 끝에서 드리는 신앙고백이 참이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좋을 때, 평안할 때는 누구나 훌륭한 말로 신앙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얼마든지 완벽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고통 가운데, 땅 끝에서 신앙고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신앙고백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때 하는 신앙고백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아무나 신앙고백하지 못합니다. 땅 끝에 설 때, 백척간두에서 신앙고백해야 합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그럴 때하는 신앙고백이 진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신앙고백을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신앙고백한 그대로 주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피난처, 견고한 망대가 되어 주십니다. 다윗이 이렇게 신앙고백했더니 주님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욥도 보십시오. 그 최악의 시험을 당하며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으니 알몸으로 돌아가며, 주신 이도 여호와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실지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완전히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훗날 갑절의 은혜, 칠 배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땅 끝에서, 벼랑 끝에서 다윗처럼,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을 고백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갑절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사실을 다윗은 잘 알았습니다.

 

다윗은 서원했습니다. 4절입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5절도 보십시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서원기도는 그야말로 비상한 기도여서 그만큼 호소력이 큽니다. 다윗이 백척간두에서 구해주시면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무르며, 어떤 경우에도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숨겠다고 합니다. 7절 이하입니다.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고 서원했습니다. 날마다 내가 그 서원을 잊지 않고 갚으며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다윗의 기도를 배웁시다. 다윗이 그 숱한 위기와 혹독한 시험과 시련을 이긴 비결을 배웁시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벼랑 끝 위기를 극복하고 땅 끝에서 극적으로 구출되고 구원 얻는 은혜와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