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30:1]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

'코이네' 2018. 6. 27. 16:53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

시편 30

 

시편 30편은 치유의 응답을 받은 한 개인의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체험에서 출발된 시가 후대에 와서 새롭게 해석되어져 성전 봉헌식 때에 사용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시편 30편은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주어왔습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지만, 넘치는 번영과 성공, 그리고 축복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만한 생각이 들어 6절에서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번영과 성공의 축복을 주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라고 말할 정도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번영의 축복을 주셨음을 인정하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당연시했습니다. 부어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마음이 사라지고, 자기의 능력과 두뇌, 자기의 수완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자기의 세계, 태산보다 더 든든하리라고 생각했던 자기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7절 마지막에 보면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인 40대 후반의 가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집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나의 건강은 믿을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업에 능란한 어느 사업가의 잘 나가던 사업이 IMF로 인하여 부도가 나며,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뛰어난 능력과 예리한 사업의 수완을 믿었었는데, 믿을 만 한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평생직장으로 알고 회사에 충성 다하며 일하던 40대의 아버지가 회사로부터 퇴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 기업체의 직장이 지브랄탈의 바위처럼 든든할 줄 알았는데,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평생일 한 직장으로부터 받은 퇴직금을 사기 당함으로 생계가 막연하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나의 건강, 직장, 사업체, 은행의 적금이나, 사람은 영원히 믿을만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시인은 든든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삶의 근본과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졌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7절 후반부터 10절까지를 읽겠습니다. "...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인은 그 동안 번영과 성공에 도취되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세계가 무너지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시인은 말합니다. "하나님, 내가 죽는다면, 누가 손해입니까? 내가 일찍 죽게면 주님을 찬송하는 한 사람이 없어질 것이고, 진리를 선포하는 한 종이 없어질 것이니, 하나님만 손해 볼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나를 도우소서." 사랑하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말하듯 솔직하게 시인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릴 때, 이와 같은 담대함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파스칼은 우리 마음에 있는 공백은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공백은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마음 안에도 공백이 있다고 9절의 말씀에 비추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공백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된 우리만이 채워드릴 수가 있는 공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안에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죄악 가운데 헤맨다면, 하나님은 슬퍼하시며,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그분을 찬양하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속에 공백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공백은 그의 자녀가 된 우리만이 채워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30편의 시인이 자녀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주저함이 없이 다 요청하듯이, 우리도 하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이 시인처럼 필요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인은 그의 믿었던 삶의 근본이 흔들려 무너져 내렸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죽음직전의 질병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하나님은 이 시인의 경우처럼 자녀된 우리들의 부르짓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파멸의 경지에서 기적적으로 치유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어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가 첫번째 아기를 선물로 받은 후에, 아내에게 불길한 소식이 주어졌습니다. 그녀가 melanoma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두려운 소식을 들은 그녀는 시편 30편의 말씀을 날마다 여러 번씩 읽고 암송했습니다. 특히2절 말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는 말씀을 날마다 마음속에 새기고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금요일날 병원에 입원한 후 이튿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조직검사가 양성이냐 악성이냐를 가지고 의사들간에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그녀는 일단 퇴원을 했습니다. 그녀는 부활절 날 교회에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녀의 조직검사가 암이 아니라 양성으로 확정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월요일 아침 그녀의 조직검사가 악성으로 판정되어 암 수술을 신속히 받어야 된다고 말하며, 그녀를 입원시켰습니다. 그녀는 암세포가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수술을 통하여 악성세포가 온전히 제거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에 걸친 그녀의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수술후의 몇 달에 걸친 조사에서도 더 이상 악성세포가 조직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극적으로 구원해주기도 합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우리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보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우리가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43절에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는 것 같은데도 하나님은 계속 침묵을 지키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지하게 간구하며 응답을 기다리는데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 의심치 말고 믿음으로 구하라고 했으니, 우리는 의심치 않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혹시나 나에게 숨겨진 죄가 있나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귀를 질책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감사를 드렸습니다. 심지어 금식까지 하며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침묵을 지키실 때가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의 약속을 자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답치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예레미야 207절에서 말합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표준 새 번역)." C.S. Lewsis도 다음과 같이 그의 미국인 아내 Joy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슬픔에 젖어 Grief Observed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다른 도움이 모두 헛된 것이 되어 버렸을 때, 하나님께로 가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우리 면전에서 꽝하고 닫혀지는 문과 안에서 겹겹으로 잠그는 자물쇠 소리, 그리고 나서, 흐르는 침묵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멀리 떠나 버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며, 침묵만을 지키시는 것 같다면, 우리는 계속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게 되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위축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왜 또 기도하는 거냐? 지난번에도 별 볼일 없었잖아? 너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 경우를 살펴봄으로써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5-7절에 보면 "유대왕 헤롯 때에 ...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사가랴가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에 주의 사자가 향단 우편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이러한 천사의 말에 사가랴는 대답합니다.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나 이러한 말을 했다면 우리는 천사의 말을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아들을 낳게 해 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아들을 우리가정에 주시옵소서" 라고 부르짖었던 그의 기도가 이제 응답되리라고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가랴가 믿지 않습니까? 사가랴는 젊었을 때,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하여달라고 수 없이 많이 기도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응답 받지 못한 그의 기도는 그로 하여금 기도의 응답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다 빼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사가랴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모든 꿈을 이미 오래 전에 다 포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들을 갖기 위한 기도를 이미 오래 전에 중단했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드린 기도에 응답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사가랴는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에 말을 믿지 않고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사의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의 간구함을 하나님은 오래 전에 이미 들으셨다가 이제 기도의 응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들어주시지만,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과 뜻에 따라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의 실현은 나의 시간에 맞추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뜻과 시간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하신 계획과 뜻에 따라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더 적합한 것으로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더 적합한 다른 것으로 주시기도 합니다.

 

Billy Graham 목사의 아내인 Ruth Graham 여사가 처녀 때, 마음에 드는 총각을 만나면, 이 남자과 결혼하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후 다른 믿음이 좋은 청년과 데이트하면서 이 청년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허락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7번이나 했는데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여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8번째로 만나 데이트한 남자는 같은 대학을 다니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녀는 빌리 그래햄과 데이트를 하면서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게 하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8번째로 만난 빌리 그래함과 결혼할 수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Ruth Graham여사는 말합니다. "나는 결혼에 관한 나의 과거의 기도들이 응답 받지 못하였음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아도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내가 원하는 데로 다 응답을 하셨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덜 성숙한 사람, 지금보다 훨씬 더 믿음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기도를 내가 원하는 데로 응답해 주시지 않았기에 나는 좀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좀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 좀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따라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나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시편 30편의 저자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적인 간섭으로 그의 질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새로운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5-6절에서 말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가 이 구절을 쉽게 변역 한다면 "진노는 잠간이요, 은총은 영원하니, 저녁에는 눈물을 흘려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라."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슬픔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스테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순교하기전에 말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바울은 그의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 후서 4장에서 말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크나큰 슬픔, 어려움, 고통이 있습니까? 열려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된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하늘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비록 내가 저녁에는 눈물을 흘릴지라도, 아침이면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이 기쁨을 홀로 간직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같이 찬양하자고 초청을 합니다. 4절에 보면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11-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구원의 은혜는 혼자 간직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은 나누어야 만 합니다. 지금의 스리랑카에 D.T. Niles라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던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란 "밥을 공짜로 얻어먹은 거지가 다른 거지들에게 어디에 가면 너희도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예수님을 주로 믿음으로 공짜로 구원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예수 믿으면 공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21절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 전파를 위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며 복음 전파를 위해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나만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나를 신뢰하기에 전도자로서는 내가 가장 적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오직 나를 통해서만 복음을 들을 수 있을 는 지도 모릅니다. 나에게서 복음을 듣는 것이,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만이 접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신뢰하며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전파를 위해 독특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해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