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15편] 주의 장막 주의 성산에 설 수 있는 사람들

'코이네' 2018. 3. 7. 19:06

시편 15: 1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여호와여." "거룩하고 높으신 자여, 당신과 함께 교제할 자가 누구입니까? 하늘도 당신의 눈에 순결치 못하고, 당신은 천사들이라도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나이다. 그러할진대 죽을 인생이 어찌 소멸하는 불과 같으신 당신과 함께 거하리이까?"

 

여호와는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의 집이나 그분을 섬기는 일이나 그분을 섬기는 자들은 이러한 여호와의 모습에 합당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한 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천사들도 얼굴을 가리고서 여호와께 경배를 드린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분을 경배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사는 자들은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분께 예배를 드릴 때에도 그들의 마음이 예배를 드리기에 합당한지는 묻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실로 겸손한 자들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에 움츠리고, 우리 주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의로우신 분이기에 하늘의 성전에서 우리를 변호하신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누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지붕 아래 거닐며 그분과 교제를 나눌 것인가?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누가 시온의 시민이 되며, 하늘의 예루살렘에 거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진정 사람들이 심각한 마음으로 해야 할 질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신학 교수라 해도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나누지 못한 이방인들이 있는 것이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자는 아무도 없다. 2절 이하에 나오는 요구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여호와께 한 것은, 전지하신 하나님만이 불안한 양심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실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여호와를 섬기기 위한 자격이 무엇인가를 장막에 계신 여호와께 물어야 할 것이다. 그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흠 없으신 주 예수만이, 그리고 그분의 형상을 입은 자만이 지존자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 위주로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인가를 알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아 더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전이며, 모든 산 위에 가장 높이 빼어난 산이다. 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에 적합한 자들인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의로운 결혼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은 교제의 잔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의로운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은 땅에 있는 온전치 못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되기에도 적합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위에 있는 온전한 교회에 들어갈 것을 어떻게 소망하겠는가!

 

시편15:2-5절: 질문에 대한 대답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4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5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2절. 여호와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1절의 질문에 대답하시며, 그분의 거룩한 산에 거할 자들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가르치신다. 오직 주 예수만이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시며, 성령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상대적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믿음과 성령의 은혜는 이곳에 언급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외적 특성만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열매가 있는 것을 보면,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자가 행하는 것, 그가 하는 일,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정직하게 행하며." 이 사람은 외줄을 타는 자처럼, 깨어지기 쉬운 귀중품을 그릇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자처럼 곧게 걸어간다. 진실한 성도들은 아첨하는 자처럼 움츠러 들지 않고, 뱀처럼 꿈틀거리지도 않으며, 땅을 파는 자처럼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교활한 자처럼 한편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은혜의 강한 허리뼈를 곧게 세우고 바르게 살아간다. 행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자만이 올바른 자이다.

 

"공의를 일삼으며." 그는 선행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이기에,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집은 부지런히 일하는 일벌들의 벌통이지, 게으름뱅이 같은 수펄들의 안식처가 아니다. 율법의 요구만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복음의 원리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하며, 그분의 거룩한 뜻을 우리 힘을 다해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3편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다. 시 13편과 14편에서 대조적인 내용을 관찰해 보라. 성도들은 진실을 사랑하고 그의 입술로 진실을 말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진실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마음으로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셔서 들으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매한 말이나 거짓말을, 그리고 아첨이나 속이는 것이나 핑계를 경멸한다. 진실은 장미처럼 가시가 담겨 있지만, 선한 사람들은 이 진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이 진리를 추방할 때에도 우리의 마음은 진리의 전당이 되고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진실을 가까이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진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여 항상 진실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살아가지 못하면,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신실함과 거룩함의 본을 보이셨다. 아! 그분을 날마다 닮아갈 수만 있다면!

 

3절.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표현에 이어서 이제는 해서는 안 되는 부정적인 말이 나타난다. 우리 이웃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대하다 보면 마음으로부터 참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혀를 통해서 밖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빨보다도 혀로 더 사람을 문다. 혀는 철로 된 칼이 아니지만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르며, 그 상처는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이 혀는 우리의 얼굴을 향해 깊은 상처를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얼굴을 돌리고 등을 보였을 때에 깊은 상처를 준다. 매는 남을 등쳐먹는 사람을 상징하는 새이다. 이 새는 정결한 새가 아니다. 매와 같은 탐욕가와 사기꾼은 세상 어느 곳에나 있다. 모든 중상과 비방은 마귀가 싸움의 불을 붙이기 위해 사용하는 풀무와도 같다. 그러나 사람의 등뒤에서 불을 붙이는 것은 가장 악한 것이다.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혀에 재갈을 물리는 자는 손으로 친구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면, 그의 명성을 지키는 데 마음을 쓰고, 그의 재산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며, 나쁜 본을 그에게 보이면서 그의 성품을 오염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도둑질한 물건을 집어서 숨기는 자는 강도가 아니라면 바보이다. 강도질이나 훼방하는 것이나 모두 도둑질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즐겨 듣는 자가 없다면 이것을 퍼뜨리는 자들도 없을 것이다. 트랩 씨는 "말을 퍼뜨리는 자는 혀에 마귀를 달고 다니고,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 자는 귀에 마귀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남의 말을 퍼뜨리는 자를 용납하는 것은 죄이다. 우리는 술에 취해 떠들어 대는 주정뱅이를 싫어한다. 그들은 예의 없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도 말쟁이들이 사람을 훼방하며 퍼뜨리는 말만큼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업장에 도둑이 들면 "경찰을 불러!"라고 외친다. 그러나 사람을 훼방하는 험담을 들을 때에도 이처럼 분노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미친 개! 미친 개!" 이렇게 부르짖으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러나 말쟁이가 훼방하는 것처럼 위험하게 물어 대는 똥개도 드물다. 불이 나면 우리는 "불이야! 불이야!"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위험이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말쟁이의 혀는 지옥불이 붙어 있다. 사람을 훼방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태도를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갈먹이지 않은 혀를 위한 지옥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은 다른 사람을 훼방하지 않으시고,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우리는 그분을 닮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4절.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우리가 고지서의 요금을 주의해서 납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마땅히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 우리는 모든 선한 사람을 존경할 의무가 있으며, 어쩌다가 중요한 자리에 오른 악한 자들에게 선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존경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악인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우리는 그 지위는 인정하되 그 악인에 대한 평가는 양심을 따라 내려야 한다.

 

이와 반대로 진실된 성도가 가난과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동정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그를 존경해야 한다. 귀한 진주는 조잡하게 포장되어 있어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모조 진주라면 값을 많이 쳐줄 수가 없다. 죄인이 금사슬로 단장하고 비단옷을 입고 나온다 해도, 그를 누더기를 걸친 성도와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은촛대에 있는 희미한 불빛을 구름에 가린 태양과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옛 속담에 "어리석은 여자가 좋은 옷을 입으면, 그것으로 더 어리석어진다"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박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것으로 더 천박해지는 법이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신약에서 성도들은 결코 서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상시에 하는 말도 서원을 하는 것처럼 진실되어야 한다고 했다. 구약 시대에는 서원을 할 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서원으로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전히 서원한 것을 지키며 존경받을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사업가는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고서 심각하게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멀리 바라보는 자는 비록 손해가 된다 해도 이 약속을 이행한다. 그가 명예를 지킨다면 물질적 손해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예를 잃어버리면 신뢰를 잃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5절.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고리대금업은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채권자가 이 돈으로 얻은 이익을 채무자와 함께 나누는 것이 옳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 주고 나중에는 그를 먹어 치우는 것은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가난한 상인, 불쌍한 과부, 이런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높은 이자를 요구하여 재물을 모은 자는 그들의 금과 은이 녹슬고 없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바울이 손가락을 문 독사를 털어서 불에 던져 버린 것처럼,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자 하는 자는 이 죄를 털어 버려야 한다.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뇌물을 주는 자나 받는 자가 모두 죄인이다. 옛날에는 법정에서 뇌물이 많이 오고 갔다. 현대에는 이런 일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이 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역겨운 일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예수께서는 무죄한 자의 뇌물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닥쳐도 이런 사람은 요동치 않는다. 바다에서 그가 내린 닻을 끌고 갈 수 없으며, 땅에서도 그가 내린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것처럼, 진실된 성도는 그의 면류관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시온에 거할 뿐만 아니라, 시온과 같이 확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전에 거한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서 특권과 축복을 누린다. 죽음이나 심판도 그가 누리는 특권과 축복을 빼앗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에서 그를 쫓아내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하자. 이 시는 금을 시험하는 불과 같고, 은을 연단하는 용광로와도 같다. 이 시에 나오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