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4장]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 절박한 시험

'코이네' 2014. 4. 9. 13:41

마태복음 4장,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벌인 절박한 시험



 마4:1-4    절박한 시험


저에게 참으로 약한 부분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금식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은혜를 받으려고 금식을 해 본 경험이 있는데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금식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시면 이 시간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을 하신 예수님의 처지를 잘 이해 하리라 믿습니다.

(눅4:2) “...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아무 것도 자수시지 아니했습니다. 요즘 금식하는 사람들 처럼 간간이 물을 마신다든지 소금을 조금씩 먹는 일까지도 예수님은 포기하시고 40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었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한 후 예수님의 육체가 심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즉 돌맹이만 보아도 ‘야 떡처럼 생겼구나’ 하고 환상을 볼 정도로 먹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 잡혀 있을 때 마귀가 찾아온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항상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서 찾아와 시험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때야말로 마귀가 마음의 문에 있는 벨을 누루기에 가장 알맞는 챤스라는 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인간은 누구나 가끔씩 절박한 상황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병이 들어서 꼭 낫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까 ?

아니면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하여 돈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어떤 위기 의식을 느낀 일이 있습니까 ? 그럴 때에 마귀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의 문 앞에 찾아 와서 대기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자기 수단대로 아니면 자기 능력대로 성급하게 일을 처리해 버릴지도 모를 연약함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서는 판단력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또한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받는 시험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보세요 ! 마귀는 예수님의 가장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굶주림 예수님에게 주변에 널려 있는 돌덩어리를 가리켜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장 먹을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40일 동안 굶주린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는 말은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닙니다.

40일 동안 먹지 못한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있으면 먹으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권면이며 충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한 마귀의 권면을 듣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마귀의 말 속에는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돌을 바꿔 떡으로 만들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께 그 능력을 이용하라고 충동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하기 때문에 건강에 흑시 지장이 될까바 걱정이 되어서 돌 덩어리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마귀의 네가지 음횽한 계교가 숨어 있었습니다.

첫째 마귀의 시험 속에 감추어진 첫번째 함정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교가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십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권세나 영광이나 지혜나, 또 그 품성이나 권능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되신 분이요 하나님과 나누어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 오셨을 때에는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인간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류의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인한 원죄(原罪)와 각 인간이 범하는 본죄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죽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담이 아닌 인류의 다른 대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를 대리적으로 형벌을 받을 죄 없는 인간이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죄 없는 의인은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 자들이였습니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속죄하기에 불가능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성질을 가진 몸으로 죄와는 상관 없이 인간의 죄의 대속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또한 인간의 몸만 입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 그러나 예수님이 일단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신분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던 순종을 대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일이 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시지만 어느 것 하나라도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라고 말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이 하셔야 할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시면 절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순종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이는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순종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만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능력을 발휘하신 장면이 성경에 나옵니다. 마14장,막8장,요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고 떡 조각과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가 남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능력과 이적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주님이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생활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처럼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않됩니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시험을 이기는 중요한 비결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 많이 해야하고, 성경 많이 읽어야 하며, 성경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두번째 마귀의 시험 속에 감추어진 두번째 함정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좁은 길을 피하게 하려는 음횽한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좁은 문과 좁은 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처음에는 어려우나 나중에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좁고 협착한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비장한 각오와 결단을 내린 사람은 그 삶이 끝이 아니고 고난의 시작임을 매순간 각오를 새롭게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힘들고 외로운 고난의 좁은 길인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죄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간난의 고통, 질병의 고통,죽음의 고통을 주님이 친히 짊어지고 체험하지 아니하면 않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하기를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신 분이요, 우리의 죄와 병과 가난을 짊어지시고 평생 우리 곁에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놓고 피눈물을 흘리며 괴로워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이 고난의 좁은 길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고난의 좁은 길을 피하셨더라면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도들의 신앙 생활이란 이 세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의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처럼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수도 있고 명예와 권세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이러한 것들이 신앙의 장애물이 된다면 과감히 치워버리고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의 좁은 길을 피하고 편하고 넓은 길만 택한다고 한다면 마귀는 그 때를 이용해서 틀림 없이 함정을 파놓고 빠질때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우선은 평안하고 즐겁고 고독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종국은 멸망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리 좁은 길이라도 꼭 가야할 길이라면 나에게 엄청난 손해가 따른다 할지라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고, 편한 길은 포기해야 합니다.

세번째 마귀의 시험 속에 감추어진 세번째 함정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려는 음횽한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6:33-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굶주렸어도 하나님께서 주실때를 기다리시고,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했나요 ? ‘뭘 그렇게 기다리냐, 굶고서 무슨 일을 하니 ?먼저 먹고 볼 일이지...’라고 유혹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하나님을 잘 믿도록 하는체 말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끌어내려고 합니다. 마귀의 말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배가 고프니 먹으라는 것이 잘못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속에 무서운 거짓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거짓 진리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떡이라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배가 부를 때 하나님도 있고 신앙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이 말하는 경제 제일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사상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악입니다. 왜 현대인들을 가리켜 경제동물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 그 까닭은 현대인들이 돈에 가장 민감하고 돈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인생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각에서도 선교사 가운데 이러한 사상에 물이들어 그들은 말하기를 오늘날 제3세계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빵이다, 빵이 먼저 필요하다. 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급진주의자들은 말하기를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구제사업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옳은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술책입니다. 그 위장된 말속에는 무서운 거짓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즉 급할 때는 돌로 떡을 만드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상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은 빵이 있어야 돼, 빵이 우선이야. 라는 사고방식에 젖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떡이 하나님보다 앞선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왜 사람이 떡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지를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말과 하나님으로 산다는 말은 동일합니다. “사람이 덕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 사느니라”라고 하면 오히려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 여러분 우리는 성경말씀을 제쳐놓고는 하나님의 실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즉 성경 말씀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대화할 수도 없고 그의 뜻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즉 성경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사느니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라는 말은 동일합니다. 그럼 우리는 왜 하나님 없이는 살지 못할까요 ? 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까 ?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만물이 하나님에서 나오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시104:14-15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습니까 ? 지금 세계 곳곳에 여러가지 재난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홍수와 폭설로 재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3년동안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면 세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 우리 나라만 해도 지금 남지방에 몇달 비가 안와서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3년간 하나님이 비 한방울 주시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땜이 무슨 소용이 있고 통장에 쌓아둔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사람이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나요? 돈만 있으면 정말 못하는 것이 없습니까 ? 그러므로 돈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떡만 있으면 되고 떡이 하나님 말씀보다 먼저라고 말하는 것은 악한 사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보다 떡이 우선이고 떡만 있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없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아십니까 ?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돈이 없어서 망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없어서 지금 망하고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유했습니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여 위정자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온통 돈으로 일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했습니다. 도한 말씀을 가르칠 선지자도 필요없게 되자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암흑시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돈이 하나님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돈이 다스리는 무서운 사회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권력이 없는 자들은 비참하게 착취를 당했고 곳곳마다 부정부패가 속출하고 종교생활은 위선으로 바뀌었고 사람의 모든 기준이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로 평가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돈과 떡만 섬기다가 30년도 못가서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전 모신문사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청소년들의 80%가 돈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 “세상을 살려면 돈을 벌어야 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류대학에 들어가돼...”라고 가르친다면 이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되겠습니까 ? 틀림없이 그 자녀는 하나님보다는 돈을, 부모형제 보다는 돈을, 아내와 남편보다는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떡이 하나님보다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먼저 계셔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릴 적부터 아이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면 그 아이의 장래는 부모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정에 우선이 아니고 돈이 우선이며 돈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지키려는 부모는 결국 그 가정은 망하고 불행하게 되고 말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군을 잘 아실것입니다. 박한상군의 부모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마귀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가정입니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떡만 있으면 돼, 돈이 제일이야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어.그 다음이 신앙이야’라는 마귀의 사상에 물들어 있어던 가정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들에게 하나님 보다는 돈과 떡을 우선으로 가르치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덯게 말씀하십니까 ? 사람이 떡으로도 살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 답게 살 수 없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 시간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 떡을 먼저 선택하시겠습니까 ? 하나님 말씀을 먼저 선택하시겠습니까 ? 다시 말해서 영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육을 먼저 선택하시겠습니까 ? 또한 세상이 먼저 입니까 ? 천국이 먼저 입니까 ? 이 둘 중에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하고 인생의 삶의 있어서 내가 어느 것을 우선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영생의 축복이냐 아니면 영원한 멸망의 저주냐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마귀는 언제나 항상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와 우리를 시험 합니다.  사탄은 신앙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보다 떡만 있으면 돼, 돈이 제일이야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어. 그 다음이 신앙이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즉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떡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고 먼저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신앙인들도 실패 할 수 있고, 질병으로 고통 당할 수 있으며, 속상한 일로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인생의 태산을 넘고 험고개를 넘어 가드라도 인간은 세상에 속한 것들이 먼저가 아닙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떡이 먼저가 아니고, 돈이 먼저가 아니며, 또한 그런것들이 하나님 말씀보다 먼저 있어야 사람답게 살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적으로 할 일이 없고 한가하며 편안할 때, 아니면 성공하고 나서, 그리고 돈을 벌고나서, 또한 부모의 허락, 남편의 허락을 받고 나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되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필요한 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더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