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와 응답
본문 [마태복음8:1~4]
서론:어떤 문둥병자와 예수님의 만남
:문둥병자에 대한 성서적, 당시 사회적 의미
고대 사회에서 나병은 모든 질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 병은 처음에는 작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이 썩어져 가면서 고름이 생깁니다. 얼마 안 가서 눈썹이 빠지고, 성대는 거칠어지고, 호흡은 씩씩 거리게 됩니다. 먼저 손과 발이 썩어 들어가고, 차츰 온 몸에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뇌에까지 병균이 침투해서 정신적인 장애와 혼수 상태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처음에는 신체의 한 부분에 감각을 상실하면서 시작됩니다. 살이 곪아서 떨어져 나갑니다. 먼저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손 전체와 발 전체가 떨어져 나갑니다. 이러한 종류의 문둥병은 거의 20년 내지 30년간 지속됩니다. 몸이 조금씩 조금씩 죽어 가는 병이 바로 문둥병인 것입니다.
문둥병은 신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이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도 고통받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ophus)는 문둥병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취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질병이 확인된 그 날부터 철저히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레위기 13:45-46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찌니라]
중세기에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면, 사제는 문둥병자를 교회로 데리고 와서 그에게 장례식문을 낭독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문둥병자가 예루살렘과 모든 성벽이 있는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접촉을 금지하는 61가지의 규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둥병자와 접촉하는 것이었습니다. 문둥병자와 접촉하는 것은 죽은 시체와 접촉하는 것 다음으로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가령 문둥병자가 집안에 머리를 들여 밀기만 해도, 그 집은 지붕의 대들보까지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넓은 광장에서도 문둥병자와는 인사조차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무도 문둥병자에게 네 규빗 이상---약 2미터 이상---접근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만약 문둥병자가 있는 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 온다면, 적어도 100규빗 이상---약 45미터 이상---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문헌에 따르면, 어떤 랍비는 문둥병자가 지나간 거리에서 사온 계란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랍비는 문둥병자가 멀리 떨어지도록 돌을 던져 쫓았습니다. 또 다른 랍비는 먼 거리에서 문둥병자가 나타나면 아예 숨어버리거나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손을 댄 사람은 바로 이러한 문둥병자였습니다.
본론:문둥병자와 예수님의 만남:그 의미
우리는 오늘의 사건 속에서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느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그 문둥병자에게 어떻게 응답하셨느냐]하는 것입니다.
A: 문둥병자의 자세
먼저 문둥병자는 세 가지 마음 자세로 예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1. 확신을 가지고서 나아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기만 하시면 자기를 깨끗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이 있습니다. 문둥병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나아간다면 돌에 맞아 쫓겨날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은 쫓아내도 예수님만은 영접해 주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율법은 문둥병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문둥병을 치료하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2.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고쳐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이러한 뜻입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면 외면하고, 피해 버리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저는 당신께 감히 무엇을 요구할 수도 없는 비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당신은 나같이 비천한 존재에게도 능력을 주시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깨닫고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 왔던 것입니다.
3. 그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2절은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절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절하고]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프로세쿠네이](προσεκυνει)입니다. 원래 이 말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할 때에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에 왔을 때에,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경외를 발견한 것입니다. 바로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B: 예수님의 응답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나아 왔을 때에, 예수님의 반응은 네 가지였습니다.
1.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은 문둥병자가 2미터 이내로 접근만 해도 불결의 죄를 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결례법을 아주 크게 범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손을 펴서 그 문둥병자의 몸에 대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의학 지식으로 봐도, 문둥병에 감염이 될 아주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을 펴서 그 사람에게 대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을 하셨습니까? 왜 궂이 율법을 깨고, 감염이 되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까?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8:5-13에서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에 가지 않고서도 말씀만으로 병을 낫게 해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말씀만으로도 문둥병자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결례의 율법을 깨면서까지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한 영혼을 너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소외 당한 그 사람을 긍휼이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우리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구원하시기까지 우리를 아낌 없이 사랑하신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둥병자는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보면 외면하고, 피해 버리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감히 아무것도 요구할 수도 없을 만큼 자신이 비천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지금 당장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당신이 원하시면 깨끗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원하노니]⇒ 예수님은 [내가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러한 뜻입니다. [나에게 자비와 긍휼을 요구하지 못할 만큼 비천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너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네가 문둥병에서 깨끗이 낫기를 기꺼이 원한다.]
문둥병자에게 가장 필요했던 일은 오직 병낫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서 겸손히 주님께 나아가서 아룄을 때에, 주님은 그를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사업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가정의 문제입니까? 신앙의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일로 인해서 근심하며 염려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은 문둥병자와 같이 겸손하게 구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함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3.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팔레스틴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습니다. 여기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메시야를 곧 보내 주셔서, 군사력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팔레스틴은 크고 작은 소요와 동란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둥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권능자가 나타나셨다는 소문이 나면, 군중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지도자나 군사 지휘관으로 추켜 세우려고 들 것이 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사태를 진정시키기도 전에 또 다른 유혈 사태가 일어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이 세상을 사랑으로 정복하는 데에 있었고, 결코 이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하는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군중들의 오해와 혼란을 막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그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협조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받은 자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당부하신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것은 내가 잘 살고, 내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충섬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 창고에 쌓여 있는 모든 축복을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을 찾아가서 정한 예물을 드리고 문둥병에서 깨끗이 고침을 받았다는 증거를 받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규정에 근거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 레위기 14장은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규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는 다시 그리웠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다시 자기 가족과 사회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4절 후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예수님이 그에게 정말로 원하신 것은 단지 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가족과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 까지를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신문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신문사를 그만 두고, 종교 잡지사에 취직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군병은 될 수가 없습니다. 누룩이 자기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떡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떡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룩의 효과를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죤 멕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관람석에서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고, 전투에 참가하는 전투원이다.] 신앙과 사회 생활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은 이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충성된 십자가 군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by 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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