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11:8] 그가 붙들고 계십니다 / 김장환 목사

'코이네' 2016. 9. 22. 19:33

그가 붙들고 계십니다.

(히 11:8-10)

설교 : 김장환 목사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못생겼습니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강아지는 굶주림에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를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름표를 보았습니다. "밥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곧 경찰에 보고되었고 잘 보호되어 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왕의 부처가 에딘버러 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는 왕궁으로 돌아갔고 무서운 숲 속에서의 경험은 그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수백킬로나 멀리 떨어진 왕과 강아지를 연결시켜 준 것은 바로 이 이름표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자들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어디를 헤매던지 우리에게 이름표만 분명하다고 한다면 즉각적인 보호가 주어지게 되며 확실하게 주인에게로 인도된다는 사실입니다. 온 우주의 왕인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이름표만 확실하다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무엇이 강아지를 받아들이게 하였을까요? 강아지가 훌륭하게 숲 속에서 여러 날을 생존했기 때문인가? 강아지가 왕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인가? 강아지가 경호를 잘하기 때문인가? 왕이 강아지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자기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랜 동안 함께 살아서 가족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일이 신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요한복음 1:12의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책임지고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아 보호하시기 위해 거룩한 끈으로 우리를 잡아 매셨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하신 일이 먼저 마귀의 손아귀에서 찾아오기 위하여 죄 값으로 자기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셨습니다.

 

1.믿음의 끈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그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할 것은 끈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는 Believe이고 하나는 Faith입니다. Believe는 사전적 의미로 볼 때에 어떤 사실에 대하여 생각으로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구원계약을 동의한 사람을 Believer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께서 하나님과 맺으신 구원계약을 내가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Faith는 신용, 신뢰하다란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하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바 믿음이 두가지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Believe, 즉 동의한다는 것입니다.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롬10:10) 이 때의 믿음은 행위의 반대말입니다. 율법의 의에 대하나 반대말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할 때, 그 때 믿음(Believe)이란 단어를 씁니다. 우리는 아무도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t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는 Faith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내가 인정하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더욱 깨닫게 되고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이 두 가지의 믿음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첫 번째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홍해를 건너는 사건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이란 홍해를 갈라놓고 하나님께서 그 홍해를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가게 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십계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모세가 그 수염의 백발을 날리며 지팡이를 들고 그 홍해 바다를 향하여 그 지팡이를 내밀었더니 성경에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밤새 동풍이 불매 바다가 갈라지고 그 바다 밑의 진흙까지 다 마르게 되어 그 밑으로 바다물 밑으로 뻘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나 마른 땅을 지나가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그 땅을 갈라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래서 이 백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그 홍해를 건넜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구원 사건이요 침례(세례)사건이요 믿음의 사건이라고 얘기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절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다 구름과 해 아래와 물아래서 침례(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 홍해의 사건을 두고 침례(세례)라고 신약의 사건에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홍해로 건너가는 이 장면을 비행기 위에서 촬영기를 가지고 찍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흡사 그 장면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진해서 홍해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뒤에서 추격해오는 그 애굽의 전차를 모는 그 군사들을 피하려고 도망갈 곳이 없어서 울면서 들어간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때에 애굽의 군대의 마음을 일으켜서 그들을 추격해오게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퇴양난의 위협속에서 홍해로 들어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애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서 노예가 되던지 단칼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홍해를 갈라놓고 그들을 몰아넣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첫 번째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려고 가진 것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환경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의 반대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지만 그곳의 생활의 타성에 젖어 있었고 그들이 많은 시간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의 노예로 살면서 어느새 그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몰아 내셔서 결국 홍해를 갈라놓고 애굽의 군대를 통하여 밀어내어 홍해를 지나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로 옵니다. 적어도 한 주일에 수십 명이 수원중앙교회에 등록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분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를 들어보면 한 분도 없이 한결같은 고백을 합니다. “나는 예수 믿을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밀려왔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백하지 않으셨습니까? 밀려왔습니다. 이상하게 안 풀립니다. 이상하게 휘말립니다. 이상하게 꼬입니다. 뭔가 내 생각대로 계획을 세우고 뭔가 해 볼려고 하면 할수록 안됩디다. 열심히 하고 또 부지런히 젊었을 때 일하고 아름답게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풀립니다. 그러면서 뭔가 뒤에서 밀어붙이고 나로 하여금 결국은 이 홍해라는 사건을 지나가도록 마들어 졌습니다. 십자가 앞에 오지 않으면 안되도록, 예수를 붙들지 않고는 안되도록, 그런 사건들이 내 앞에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여기까지 밀려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끈에 의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이 부르심의 끈에 의해 구원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영적인 끈

 

믿음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부자의 이렇게 이야기를 한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넓은 땅이 있어서 내가 이제 올 추수를 끝내고 많은 곡식을 거두었으니 더 이상 쌓을 곳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이제는 창고를 늘리고 내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그리고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이제부터 내 영혼아 즐기자 먹자 마시자 하였으나 내가 오늘 저 영혼을 불러 가면 그러면 그 쌓아놓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날밤에 그 사람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그 사람이 쌓아놓은 그 모든 재물과 인생의 좋은 모든 것이 도대체 누구의 것이 되는 것이 되며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가 파놓은 구덩이에서 그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실 수가 없습니다. 자꾸 우리를 몰아 내시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이제 얻었으니 먹자 마시자 즐기자 그렇게 하면서 인간이 버티니까 하나님은 밀어내시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더 먹고 살만하고 애굽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고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계속 도와주고 그들을 친척이나 이웃으로 알고 계속 그들의 번영을 도와주었더라면 그들은 조금도 하나님께 부르짖지 아니하고 살려달라고 소리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건져내시기 위하여 애굽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강퍅케 하시고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만드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오지 않고는 그 애굽 땅에서 살지 않고 가나안 땅 영원한 도성을 향하여 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땅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밀어내십니다. 환난이 옵니다. 건강에 위험이 옵니다. 사업이 곤두박질 칩니다. 내 재산이 망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에게 돈을 잘 벌게 해주었던 세계 정세가 바뀝니다. 국내의 정치판도가 바뀝니다. 어제의 재벌이었던 사람이 오늘 완전한 거지로 바뀝니다. 이런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하나님은 곤두박질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 곤두박질 치는 가운데에 사람들이 또 다른 길이 있는가하여 십자가 앞에 오게되고 그 십자가를 붙들고 새로운 문을 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로 믿음을 가지게 하는 홍해의 사건입니다. 괴로움도 잦아지고 자아상실의 파도에 침몰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환란에서 친구들이 나를 조롱합니다. 겉잡을수 없는 소용돌이가 나를 허우적거리게 만듭니다. 나는 아무 가치도 없구나 나는 죽어야 마땅하겠구나 나는 파산하였구나 재기할 능력도 없구나 나는 죽었구나 이러게 유서를 써 놓고 죽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 중에 이런 고난을 겪으시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 중에 이런 고난을 겪고 지나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홍해를 건너 애굽과 결별하고 여러분들이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영적인 세상, 하늘의 세상도 도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그렇게 하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세상향락에 취하여 꼼짝도 하지 않다가 홀연히 임하게 될 영원한 죽음, 두번째 사망의 불못, 지옥에서 건지시려고 여러분들을 그 홍해 앞으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통과의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통과의식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이곳을 지나가면 나는 너희를 백성으로 삼겠고 너는 나의 자녀가 된다. 나는 너를 백성으로 삼겠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를 지나가라. 이렇게 조건을 내세운 통과의식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이 홍해를 건너라 건너면 나는 너희들을 내 백성으로 삼겠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복을 주겠고 너희는 나를 섬길 수 있을 것이다.”

3.십자가의 끈

 

이제 신약에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십자가를 지나가라, 너희가 이 십자가 밑을 지나가라 그러면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겠다. 전에는 너희가 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백성이었고 너희가 전에는 이방인이었고 너희가 전에는 외인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버리운 자들이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궁핍함을 당했다면, 십자가 앞을 지나가라 통과해라 그러면 그것을 나와의 계약으로 알고, 그 계약을 통하여 너희들은 내 백성이 되겠다.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계약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열심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뜨거운 사랑은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우리를 몰아 내십니다. 우리를 그곳으로 지나가도록 내몰아내십니다. “너희가 살기 원하느냐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느냐 인생의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느냐 그러면 이 갈라진 홍해를 통과해라 믿음으로 건너가라 믿음으로 건너가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맛보리라 더 이상 애굽의 노예 된 자리로 가지는 않으리라 애굽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해방시켜주겠다.”

 

그림자였던 홍해 사건은 그 그림자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완전히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입니다. 오늘 갈 길을 잃은 우리에게 그 십자가를 지나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홍해사건은 시작에 불과 합니다. 애굽 사람들과의 관계와 세상의 저주의 자리에서의 해방일 뿐이지 이제 홍해를 건넌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끈으로 보호받는 삶입니다. 영적인 삶, 구원 얻은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체험을 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복의 실체입니다.

 

두 번째 믿음은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자마자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뭐냐하면 물입니다. 그 광야 아라비아 사막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목이 말랐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은 계속하여 그 메마른 땅을 건너가면서 불평을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인도해냈어? 누가 우리를 여기로 건너오게 했어? 누가 우리를 예수 믿으라고 그랬지? 도대체 내 손을 잡고 예수 영접시킨 놈이 누구야? 그렇게 불평하며 사람들이 투덜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야! 여기 가나안쪽으로 가면, 홍해만 건너면 뭔가 당장 큰 축복이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고난의 연속이야? 예수 믿었는데 왜 변함이 없지 왜 좋은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사람들은 계속하여 불평을 이야기합니다. 예수 믿으면 뭔가 금방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내가 무슨 초능력을 가지게 되고 이 세상이 갑자기 내 기도 한마디에 하늘에서 복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왜 이럴까? 사람들이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불평 가운데 다행스럽게 맨 앞장서서 가던 사람아 소리를 외칩니다. 야! 오아시스다 저기 오아시스가 있어 오아시스를 발견했어 사람들이 그 사람이 쳐다보는 곳을 보았더니 정말로 나무들이 있고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아시를 향해갔습니다. 맨 앞에 가던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발견했다고 자랑을 합니다.

‘내가 발견했어. 내가 발견했어.’

그러나 막상 가서 물을 떠먹어보니 그물이 어땠다구요? 쓴 물이었습니다. 너무나 써서 마실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평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차라리 물이 없었더라면 물을 생각지를 않았다면 목마름을 참을 수 있겠거니와 눈앞에 물이 있는데 그 물을 떠서 마시니 먹을 수 없는 물입니다. 폐놀이 섞였는지 벤젠이 섞였는지 뭐가 섞였는지 모르지만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물을 사람들이 보기만 보고 먹을 수 없어 불편만 하는 그런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백성이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니”(24절)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목사님이 믿으라고 했으니까 목사님이 예수믿으면 당장 복 받는 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예수만 믿으면 당장 무엇인가 달라질 것처럼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해봅니다. 기도도 몇 일 해봅니다. 일주일간 기도해봅니다. 한달 간 작정해봅니다. 그런데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당장 눈빛이 달라집니다. ”목사님 아무 변화도 없는데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요.“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어떻게 되었더라? 달아졌더라. 뭐 설탕을 넣었습니까? ‘달아졌더라’ 이 말은 물을 마시기에 흡족할 만큼 맛있는 물이 되었더라 그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가 기도할 때에 한 나무를 지시하셨을까요? 그 나무를 지시하여 모세가 그 나무를 꺾어서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더라 그랬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그 방법대로만 순종하는 길 밖에 우리의 문제를 이 세상에서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을 첫째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첫 번째 믿음은 우리가 억지로 끌려 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믿음은 신뢰와 순종입니다. 이 믿음은 신뢰한 만큼 우리가 현세 얻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을 신뢰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신뢰하는 마음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시91:2-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기에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 할 만합니다. 그 분은 피난처요 요새요, 또한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기에 의뢰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를 신뢰하는 믿음 말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백성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시고 천국 가는 날까지 인생의 광야 길에서 인도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주를 믿음으로 좇아가야 합니다.

 

4.거룩한 끈을 놓지말라

이처럼 믿음은 깨우쳐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 시험하실새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게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니라” 이 말씀은 너희가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 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면 이라는 조건을 내세우셨습니다. 그러면 복을 주겠다. 너희가 내 말에 귀도 안 기울이고 청종하지도 아니하고 잘 안 듣고 예배시간에 빠지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중요한 주일을 지키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고 하나님 앞에 조그만 약속까지고 내 마움에 정한대로만 한다면 나는 너희를 결단코 그대로 두지 아니하겠다 징계를 내리겠다. 반대로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청종하고 여호와의 율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지키면 나는 너희를 애굽사람들에게 내린 질병, 감기조차도 너희들에게 내리지 않겠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고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어떤 경우에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을 한번 지켜보려고 애를 쓰면 나는 너희들에 대하여 여호와의 약속을, 이 계약을 계속하여 지켜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과 의식을 지난 다음에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행하는 계약입니다. 언약입니다. 이제 이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삶의 어떤 굴곡이 와도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여 따라가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한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하러 바다에 나아갔습니다. 여느날처럼 어머니는 신창까지 나가서 식구들을 배웅하고 많은 고기를 낚아 가지고 평안히 돌아오기를 빌었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부면서 높은 파도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어부와 두 아들이 탄 배는 곤두박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집에서는 아궁이에 잡힌 불이 잘못되어 강한 바람에 불이 번져 몇 가지 옷만 남기고는 집 한 채가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겨우 아버지와 두 아들은 배를 저어 해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해변에서는 어머니가 불이 났다는 슬픈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만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서 "여보! 불이 나서 우리 집이 몽땅 타버렸어요. 우린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아내는 안타깝게 하는 말이 "여보! 제 말이 안들려요?" 그때 남편 대답이 "응, 나도 들었소. 하지만 몇 시간 전에 우리는 파도가 높게 이는 바다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했소. 등대불도 꺼져버리고 보이지 않았소. 그때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었소. 그런데 멀리서 희미하게 노란 불이 보였소. 그러더니 점점 더 커지는 거요. 우리는 배의 방향을 바꾸어 있는 힘을 다해 그 빛이 있는 방향으로 노를 저었소.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요 우리 집이 처음 불타기 시작할 때 본 것이 그 희미한 빛이었구려. 한참 탈 때는 마치 온 해안이 다 대낮처럼 밝았어요. 우리 집을 태운 그 불 때문에 우리 목숨을 구한 거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집이 불타듯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있고 약점이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편 힘도 있고 장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지만 참아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나 혼자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드려져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실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 그 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며.............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아 열매 맺음과 같을 것이며 ” 너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라 합니다. 종려나무 가지가 우뚝 솟아 푸르러 듯이 그렇게 형통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들처럼 오아시스를 이루고 숲을 이루는 하나님의 풍성케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너희가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과 거룩한 끈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뢰의 믿음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이 믿음의 비밀을 깨달았다면 용감하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붙들어 주심에 대한 우리의 신앙입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시 해군사령관이던 스윈스씨를 공천하려고 면접하였습니다. 먼저 정치이념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대답하기를 "지금까지 저는 세가지원칙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첫째, 파도가 밀려올 때는 사자처럼 용감하게 대처했습니다. 둘째, 파도가 배를 덮을 때는 쥐를 잡으며 작은 일부터 해결해 갔습니다. 쥐가 선창을 갉아먹어 당황할 때에는 무조건 정의의 편에 서서 행동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이 세상에서의 연단 받고 훈련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훈련의 목표가 무어입니까? 그것은 용감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군사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골탕 먹이 자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전에서 용감하게 싸우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를 거룩한 끈으로 붙드시고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시는 이유는 훈련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용감하게 싸우게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용맹하십시오. 상황이 어려우면 우선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하십시오. 그리고 악이 난무하며 세상이 혼탁할 때는 무조건 정의의 편에 서십시오. 그러면 형통할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