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스겔

[겔1:1] 이상이 보이십니까?

'코이네' 2016. 5. 31. 22:07

이상이 보이십니까?

성 경: 겔1:1-3

 

 

즐거운 방학이 시작되었다.이제 불행이 끝이 나고 행복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학교생활은 졸업하고 나면 그 때 그시절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학교 다닐 때는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최근 10대들의 쪽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고등학생들의 71.6%가 가출을 한번 이상해 보았다는 대답을 했다.믿어 지지 않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성적과 공부 때문에가 42.7%,가정에서의 갈등 27.2%,학교생활의 어려움 13.4%,이성 문제 6.1% 등의 순서였다.성적과 공부 학교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가출을 했다는 사람이 56.1%나 된다.학교 생활 공부가 우리에게 많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청소년들이 자살한 경우만 보아도 그것을 잘알 수있다.한 조사에 의하면 자살충동을 느낀 청소년 63.4%나 된다 한다.그 이유는 학업 30.2%,진로 취업 28%,이성문제 11.8%로 역시 자살의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학교 공부이다.얼마 전 여중생 올리픽 아파트 투신자살하면서 "공부만 하라는 현실이 지옥이다.내가 노래방에 안가는 것은 엄마가 무섭기 때문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또 5/13 목동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여학생도 "부모님이 언니와 동생만 좋아 하고 나에게는 너무 무관심하다. 학교성적이 너무 나빠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 두렵다." 심지어는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법대를 들어간 학생이 1학기 성적이 떨어진다고 자기집 지하실에서 목을 메고 자살한 사건도 벌어졌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학교 생활에서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잠시 동안이지만 학교에 가지 안는다는 것이 매우 기분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영어시간이면 기가죽고 따분하고 지겨워 시계만 드려다 보던 어떤 학생은 이제 방학이 되자 친구의 노트에 "I SEE PAL(친구,동료),ENGLISH GO HOME !"를 적고 통쾌하게 웃었다는 글을 보았다.공부 못하면 불량품 취급받고 공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 낙오자로 찍히

는 오늘의 현실속에서 가슴이 멍든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방학은 참 해방의 기쁨을 맛볼 만한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방학은 잠깐이면 끝이 난다.인생은 영원한 방학은 없다.어쩌면 방학은 지긋지긋한 공부로 부터 해방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 기간이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고해)라고 말하는 것 처럼 행복보다는 고뇌와 아픔과 슬픔이 많은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아니면 직장생활이 기다리고 있다.그렇다고 끝인가? 결혼,자녀 양육 등 무수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산적해 있다.그렇다고 절망하고 좌절할 것인가? 오늘 성경에 나오는 한 젊은이를 보아라.

 

1.에스겔의 절망적 정황

 

오늘 성경에 한 젊은이가 나온다.그시대는 입시 지옥은 없는 시대였다.그러나 이 사람은 오늘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우리 청소년 보다 더 절망할 수밖에 없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더 많이 느낄만한 젊은이었다.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597년 경이다.

 

유다 나라가 바벧론에게 망하여서 젊은이들이 포로로 잡혀갔다.이 포로 중에는 장래가 총망한 많은 청소년이 포함되어있었다.그중에 에스겔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그는 제사장이 될수있는 사람이었다.자기 고국에 있었다면 부모님 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을 것이고 30세가 되면 자연히 제사장이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그런데 나라는 망하였다.사랑하는 부모 형제는 만날 수 없다.언어,풍습,음식이 다른 나라에 그것도 유학이나 외교관으로 온 것도 아니고 전쟁 포로로 왔으니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못견디도록 자신의 처지가 슬프겠는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정말로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까? 그렇다면 왜 내가 이고통을 당하여야 하는가?

정말로 하나님은 전능하십니까? 그렇다면 왜 내가 포로로 끌려왔을 때 그들을 치지 않았는가? 정말로 하나님은 전지하십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의 고독과 고통에 침묵하십니까? 이런 질문이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에스겔은 한강변을 한가한 사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발강가에서 심각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포로로서 내 조국을 위하여 나의 부모를 위하여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도 나를 돌보와 주는 이가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얼마나 처절하겠는가?

크레이 엘리슨은 사람의 외로움,소외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 정서적 외로움-정서적으로 혼자(남들과 친밀 부족,친구없음)

- 사회적인 외로움-삶에 흥미없고, 불안하고 공허함을 느낌(삶의 변두리 인생, 공부,돈,인기없음)

실존적 외로움-하나님으로 부터 분리 소외,삶에 목적없음,의미없음

에스겔에게 다가온 외로움과 고독이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고독이 아니겠는가? 그는 선택받은 백성으로 어렸을 때부터 제사장 훈련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제사장은 커녕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쓸슬히 보내고 있지 않는가?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멀리 떠나 버렸다.사회적으로 변두리 인생이 되어버렸다.그런데 하나님 마져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무런 모움이 되지 못하고 침묵을 하고 계신다.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고통이겠는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 혼자 밖에 없다 생각하며 쾌락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로 그 어려움을 잊으려 한다.어떤 사람은 그저 "될대로 되라지"하며 자보자기하여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하면 자살하게 된다.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해처나올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

겠는가?

 

2.절망의 늪에서 비치는 한 줄기 햇살

 

이런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겠는가? 그저 방에서 비디오나 보면서 실컷 나잠이나 자나? 아니면 예라 될대로 되라지 하며 오락실에 가서 테트리스나 수호지,프린스를 하루종일 즐길까? 어떻게 하여야 이 고난과 고뇌의 시절을 슬기롭게 보낼수 있느냐?

하나님은 에스겔에 대하여 잘알고 있었다.물론 방학을 맞이한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 마음도 그 옛날 에스겔의 마음을 아신것 처럼 잘알고 계시다.하나님은 에스겔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그 고독과 고뇌의 위기로 부터 벗어나서 처음 하나님이 부르실 때 사명을 주셨던 일을 시행하기 위하여 즉 이땅에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상을 보여 주었다.1절을 보아라.고독과 고통,의문과 회의 속에 살고있던 어느날 포로 생활 약 5년 만에 강변의 어느 포로 수용소에서 이상을 보여준다.하늘이 열리고 찬란한 비젼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겠는가? 힘들고 지긋지긋한 공부지만 그래도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좀 편히 쉬고 부모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 믿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려 주일이면 산으로 들로 가고 싶지만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말씀배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바로 비젼.이상에 있다.비록 오늘은 힘들고 어렵지만 내일에 대한 비젼이 있을 때 참고 견딜수 있는 것이다.현재의 고독과 어려움,절망과 고뇌를 극복할수있는 최선의 길은 비젼을 보는데 있다.비젼이 있는자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이상이 있는 자 결코 포기 하지 않는다.비젼이 있는 자는 절망의 늪에서 하늘문을 열고 찬란히 비쳐오는 한줄기 생명의 빛을 보고 힘을 얻는다.

야곱을 보아라 죽음의 공포에서 도망-브니엘의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후 그의 인생이 바뀌지 않았는가? 이사야를 보아라-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새삶을 시작하였지 않았는가? 사울을 보아라-"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소리 듣고 인생을 180도 회전하였지 않았는가? 사도요한을 보아라 -노년에 그 수고를 다하였는데도 결국 죽음의 유배지에 수용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늘문을 열고 신비의 계시를 보여줌으로 그를 끝까지 사용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변화시킨 이 위대한 비젼,이 찬란한 이상이 어느날 그발강가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포로 에스겔에게 임한 것이다.오늘 우리는 우리 시대를 향한,우리 가정,사회 ,나 자신을 향한 비젼을 보고있는가? 방학을 맞이한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비젼이 있는가? 여름이면 강가로 해변으로 가서 휴식을 취할줄 않다.이 여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이 없다면 에스겔이 강가에서 본 비젼을 꼭 보시기 바란다.올해도 신앙수련회가 강가 아름다운 시골 지금은 학생들이 하나도 없는 시골 학교에서 있다. 아직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를 통하여 꼭 이 위대한 이상을 발견하기 바란다.

 

에스겔이 본 비젼은 무엇인가?

 

1).네 생물의 이상(4-14) 2).수레바퀴의 이상(15-25) 3).네 보좌의 이상(26-28)이다.이 이상을 이시간 다 설명할수는 없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이상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를 보여주시는 이상들이다. 네 생물은 천사의 기능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인 모습이다.(10:15) 이 이상을 통하여 천사를 부려서 역사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땅의 일들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즉 하나님은 보좌 위에 앉아서 역사 속에 간섭하시며 천사를 부리시며 역사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펼치고 계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었다.

 

비록 에스겔을 둘러 쌓고 있는 현실이 어두운 황혼일 지라도,도저히 소망을 발견할 수없는 칠흑같은 절망이 있다 할 지라도,비록 그의 삶이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의 삶을 섭리하시는 분이신것을 보여 주신다.넓게는 결국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정치 상황을,역사적인 현실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에스겔에게 계시하였다.젊은 포로,고국을 떠나 이역 만리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 버리고 외롭고 슬픈 나날을 보내는 이 젊은이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이상을 보십시오.이 이상이 보이십니까? 분주하게 일하시는 천사의 모습,수레바뀌를 굴리고 다니면서 가득한 눈동자로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모습,저 하늘 높고 푸른 보좌위에 앉아계신 양같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사람이 외로워하고 고독해 하고 아무일도 하지 않을려고 하는 심리적 요인은

낮은 자존심(자신을 과소평가)

의사 소통의 능력 부족(대화)-트로비쉬(결혼하지 말아야 할 대상 의사.목사)

자멸적인 태도(나는 죽어야 되)

적의(부정적,나의 도움이 않된다.교사 동료.부모)

두려움(실패할까바,실수)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에 대해,이 역사 속에 살고 있는 나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우리는 결코 절망할수 없고 삶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낮은 자존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모세가 죽은 후 민족을 이끌어야 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너와 함께한다" 이 말씀을 몇차례나 거듭하였는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너와함께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다.이 역사를 주장하시고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젼을 보아라.

 

방학이다.휴식의 시간이다.이 기간 무엇을 하겠는가? 할 일이 많겠지만 이 여름 나에게 주시는 구체적 비젼을 발견하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우리의 삶은 쉽지 않다.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아니된다.방학이 내 삶의 포기의 기회가 되어서는 않된다.비젼을 발견하라.그리고 방학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삶으라.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체험하고 인격의 성장과 실력의 성장 무엇보다도 삶의 긍극적인 테도가 바뀌는 기회로 삼으라.

 

얼마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왔다.그는 불행항 과거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1946년 8월19일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스 4세로 아칸소주 호프시 줄리아 체스터 병원에서 아버지 윌리엄 J 블라이스 3세와 어머니 버지니아 캐시디 블라이스와의 사이에서 유복자로출생한 사람이다.관광회사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4개월전 시카고에 출장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술주정뱅이로 술취해 익사 했다 한다. 클린턴의 어머니 버지니아는 다섯번이나 결혼한 사람이다.3명의 남편과 사별하고 2명과는 이혼했던 비운의 여인 버지니아 클린턴 켈리가 제42대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의 어머니이다.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생(두번째 남편의 아들.지금로스앤젤레스에서 악단 단원으로 일하고 있음)과 이름이 다르자 15세때 자신의 이름을 두번째 아버지의 성을 따 클린턴으로바꾸었다.그는 그정도로 동생과 가족에 대한 우애가 깊었다,과거를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그런데 그가 이렇게 불행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용기있게 살 수있었던 것은 1962년 청소년 학생대표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 비젼을 가지면서 부터였다 한다.오늘의 그가 있게 한 것은 바로 그때의 그 비젼이었다.칠흑의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비쳐오는 하늘의 비젼을 보아라.거기에 인생.오늘의 삶에 대한 답이 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