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스겔

[겔1:1]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네 생물의 의미

'코이네' 2016. 5. 31. 21:56

네 생물의 비젼

 

성 경: 겔1:1-14

 

 

오늘은 에스겔서 1장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에스겔이 어떤 선지자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십시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강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를 붙들어 주시고, 강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세번에 걸쳐서 바벧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세번이나 침공했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어 가게 된 것입니다.

알. 키텔(R.Kittle)이라고 하는 분에 의하면 그때에 포로로 끌려간 숫자가 5만 내지 7만명이 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제1차 바벧론 침공 당시 유대왕 여호와긴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게 되어서 바벧론의 그발 강변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인 동시에 위대한 예언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것은 포로생활을 하기 시작한지 제5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제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록한 제삼십년이란 에스겔의 나이 삼십세 되던 해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에스겔은 서른살 되었을 적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여호야긴왕의 사로잡힌지 오년 그달 오일이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여호야긴왕과 에스겔이 바벧론에 포로로 같이 끌려갔는데, 포로생활을 시작하지 오년째 되던 해에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는 내용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시'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가 아니라 제사장인 부시의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3절 말씀에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 족속이 따로 있었고 레위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데 바로 부시는 레위지파였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성전 가까이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에 요시야왕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는 것을 그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에스겔은 어렸을적 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아합이라고 하는 악한 임금은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 안에다 우상을 세워두고 우상예배를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호와 예배를 중지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 태어난 에스겔이었는데,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요시야왕이 등극을 해서 성전을 청결케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전 안에 세워 둔 모든 바알신상, 아세라목상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는 그러한 사실을 그가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어려서부터 분명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결과, 그 나라가 바벧론의 침공을 받아서 패망했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또 몸소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25살이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여호야긴왕을 비롯해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저 이국나라 바벧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고통스러운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간지 5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 기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갈대밭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 눈물로 호소하고 부르짖다가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대화할 길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모노로그(Monologue)가 아닙니다. 독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쌍방교통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는데, 네 생물의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비록 이방나라에 포로로 끌려와서 아침부터 져녁까지 강제노동을 당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쓰라림을 맛보고 있지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그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들을 위로하시고 능력있는 오른팔로 붙들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네 생물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이었는데,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었고 그 얼굴의 모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네 얼굴의 앞부분은 사람의 얼굴이요, 또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뒷편은 독수리의 얼굴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표현하기에 어려운 그런 모습을 지닌 영물이 에스겔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보여진 것입니다. '날개는 둘씩 연결되어 있는데, 둘로는 몸을 가리웠고, 둘로는 날라가더라 그 생물들이 빨리 왕래하는데, 번개와 같은 빠른 속도로 왕래하더라 그 생물에는 바퀴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심에는 신이 있었더라 그래서 그 신이(다시 말하면 영이) 어디로 가려하면 생물도 그대로 따라 가더라 그리고 바퀴도 뒤따라 가서 움직이더라'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네 생물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견해가 있는데, 케네트(Kenneth)라고 하는 분은 에스겔이 바벧론왕의 침공시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때 범죄한 이스라엘 민족을 징계하기 위해서 선택된 바벧론군대가 잔인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을 침공했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메튜 헨리(Mattew Henry)라고 하는 분의 해석인데, 이 네 생물의 모양은 천사들의 일반적인 겉모양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고 그 짐승들은 이성적인 피조물로서 여호와의 등불이 되는 인간의 영혼, 곧 인간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외에도 몇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이 네 짐승은 메튜 헨리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 나타난 네 생물의 모습을 보면 얼굴의 앞 부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래 인간은 진실되고 선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모습대신 거짓된 모습이 되었고, 의롭고 선한 모습대신 불의하고 악독한 사나운 모습으로 바꿔졌고, 사랑이 미움으로 바꿔지는 타락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오른쪽 모습은 사자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사자는 어떤 것을 상징합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극히 담대하라 좌우로 치우치지 말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일에 사자처럼 용맹스럽고 담대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범죄에 타락한 인생들은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담대한 것이 아니라 반면 불의를 행하고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데는 강하고 담대하고 용감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불의를 행하고 죄를 짓는데는 그렇게 용감하고 담대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아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의를 행하는데, 선을 행하는데에는 사자처럼 강하고 담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 얼굴의 왼편 모습은 소의 모습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소를 보면 어떤 것을 연상하게 됩니까? 여름철에 비지땀을 흘리며 파리 모기에게 뜯기면서, 거머리에게 뜯기면서 논을 갈고 밭을 가는 이 소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원망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은 인내심과 봉사정신이 얼마나 강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소처럼 말없이 묵묵히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해야 될 것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 생물의 뒷편 모습은 독수리의 모습을 지녔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여러가지 특성이 있지만 그중에 한가지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비상한다고 하는데에 있습니다. 만일 폭풍이 밀려오면 다른 새들은 두려워 떨면서 바위 사이나 나무 그늘 사이로 숨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태풍이 밀려올 적에 앞가슴을 내밀고 그 태풍을 이용해서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태풍이 비록 불어올지라도 앞가슴을 내밀면 바람의 부력에 의해서 저절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을 당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독수리는 저 높은 무풍지대에 이르러 평안히 날개를 펴고 밑을 내려다 보며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독수리보다 더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다고 사무엘하 1장 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1장 8절에 보면 갈대아인의 기병을 가리켜서 '마치 식물을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보다 더 빠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시련과 환난의 폭풍이 밀려 닥쳐 온다고 할지라도, 역경의 폭풍이 밀려 닥쳐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해서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힘있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 네 생물의 중심에는 신이 있더라 그래서 신이 인도하는 데로 그 네 생물도 따라가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 마음의 중심에 누가 있어야 되느냐? 우리의 중심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신, 성령이 계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네 생물은 중심에 하나님의 신이 있어서 그 신이 어디로 가려고 하면 네 생물이 따라가고 바퀴도 따라 움직여 갔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중심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셔서 성령께서 감화감동하시는 대로 우리는 순종하고 따라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라"라고 감동하시는데, 우리는 "아니요"하고 반대방향으로 간다고 하면 그것은 성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라고 우리의 중심에서 감동을 하실 적에 우리는 "아멘!"하고 순종하며 따라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어디로 어떻게 역사하시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육신의 소욕에 끌려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소멸해 버리면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게 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어찌하든지 우리의 중심에서 감화감동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아멘!"하고 따라가고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