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8:1] 우상의 제물과 덕을 세우는 사람

'코이네' 2016. 4. 22. 21:01

우상의 제물과 덕을 세우는 사람

고린도전서 8:1

 

초대 교회 시대에,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의 우상 숭배는 그들의 모든 생활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회적 교제, 그들의 축연들, 법의 집행, 공중 오락들, 정부의 직무와 의례 등이 모두 많든 적든 간에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어떤 우상 숭배에 연루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당혹스러운 수많은 신앙 양심의 문제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면, 한 부분은 제단 위에서 불태웠고, 또 한 부분은 사제의 몫이 되었고, 마지막 한 부분은 제물을 바친 사람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제나 제물을 바친 사람들은 필요한 양 외에는 다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바로 이 제물을 음식물로 여겨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가 교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대두된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은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교인들을 비난하였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 역시 먹는 교인들을 비난하였습니다. 급기야는 먹는 파와 먹지 않는 파가 형성되어 파벌 싸움으로 비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하찮은 문제 때문에 보다 더 중요한, 화합과 화목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 6:17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일곱 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 첫째는 교만한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16:18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식이 교만하게 한다는 말씀은 무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더구나 모든 분야의 지식이 다 교만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믿음의 형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교만을 초래하는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지식은 물론, 그 위에 덕을 세우는 사랑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교만을 초래하는 지식은 무너뜨리지만,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의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로서,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자연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사랑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 상대의 요구대로가 아니라, 참된 의미에서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나 선행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형벌이 마땅한 대가일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화목제로 그 아들을 주신 것이 곧 사랑입니다. 화목제로 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참된 사랑이란 진리와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사랑은 상대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더구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영적인 면에나, 정신적인 면에나, 육체적인 면에나,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줌으로써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께로부터 은사와 복을 받아야 할 이유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와 복을 주시는 목적입니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을 사랑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또 남을 사랑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오는 대로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란 곧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최대의 사랑인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기 위해 우리가 받은 모든 소유와 지체들, 그리고 생명은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소유는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고, 또 우리의 생명을 비롯한 모든 지체는 낡아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영생의 주님을 선물하는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고귀한 덕을 세우는 사랑을 모르면서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