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11장]내 멍에는 쉽다는 말의 뜻

'코이네' 2014. 11. 26. 19:00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8-30

 

 

요한복음 3:16 만큼이나 우리들이 잘알고 있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교회의 버스에도 이 말씀이 붙여있고 어떤 교회의 담벽에도 이 말씀이 붙여져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그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참 주님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살고 있겠는가? 또한 이 말씀을 외우고 너무나 잘 아는 우리들이 주님안에서 참 쉼을 얻고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 기독교 교리를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 성경의 어떤 좋은 말씀에 믿고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삶속에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의 안에 무엇인가 뒤바뀌어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신앙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들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이 말씀 속에서 안식을 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첫마디 말씀은 [오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말씀은 [오라]라는 한마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를 향하여 "오라"하고 부르짖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간판의 네온사인들이, 백화점들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병워가들이, 변호사들이 모두들 우리를 향해서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음성의 뒤를 가만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어떤 조건이 뒤따릅니다. '오시오 그러나 돈없는 사람은 오지 마시오'라는 조건이 따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하시는 그 말씀은 세상의 음성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며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면서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심정으로 [오라]고 부르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을 살려주실 그 분이 마치 자기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인 양 [오라!]고 우리를 향해 호소하고 계십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라]고 하시는 초청장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너라. 돈없는 자들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두번째 예수님의 말씀은 [다 오너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도 다 오라고 부르짖는 곳이 많지만 막상 가보면 일부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안달하시는 구원의 의지를 갖고 계시는 예수님,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미 내어놓으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조건도 내세우지 않으시고 [다 오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의 대상인 인간을 향하여 예수님은 좋다 나쁘다를 따지지를 않으십니다.

 

세번째 예수님의 말씀은 [내게로 다 오너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돈을 내어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굶주린 자를 먹이기도 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기도 하며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쌍한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불쌍한 사람을 초대하기에는 우리의 집이 너무 반들반들하고 으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살림살이와 불쌍한 사람과는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족함 없이 윤택한 살림을 살고 있기에 가난하고 버림받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과 한 지붕밑에 살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자기에게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도 같은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과 꼭같이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과 똑같이 비천한 사람, 인생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샅샅이 아는 사람만이 그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을 자기에게로 부르려고 한다면 자신이 그 사람과 같이 되든지 아니면 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끌어 올리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게로 오라"고 한다면 불쌍한 사람에게 더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오히려 수치감을 더하게 해주는 것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그 분은 처음부터 당신이 가지고 계시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처럼 헌벗고 굶주리고 우리처럼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처럼 밤잠도 못 주무시기도 하고 편히 쉬지 못하셨으며 많은 괴로움을 겪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을 친히 맛보셨으며 우리가 겪을 죽음을 이미 다 겪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모순이나 거짓이나 위선이 없습니다. 진실하십니다. 이 주님의 초청앞에 우리는 지금 서 있습니다.

 

네번째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초청에서 제외당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마음껏 마시고 즐기자'고 배를 두드리고 사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이 구원의 촛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수고와 마음의 무거운 짐, 육신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는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면서 단 한가지 일로 근심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이 부르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나하고 근심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너무 많이 올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열려진 마음이 있는 곳에는 넓은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기만 하면 그 안에 누구나 용납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시기에 전 인류를 품을 수 있는 넓은 장소가 그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을 너무 막연한 초청이라고 생각해서 믿지 못합니다. 주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심을 우습게 여깁니다. 예수님이 선하심으로 오히려 인간이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간절히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지막, 예수님의 음성은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겁고 괴로운 짐을 지고 오는 사람에게 편히 쉴수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에게 오는 자는 그것이 안식이다. 거기에 편히 쉼이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무거운 짐은 천태만상입니다. 이 가지각색의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가면 예수님이 각자에게 맞는 어떤 길을 가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가는 그것이 바로 진리요 예수님 안에 진리가 있으며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그 속에 이미 생명과 쉼이 있는 것입니다. 팔을 벌리고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그분이 무거운 우리의 짐을 팔에 안으시고 [나와 함께 머물자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이 너희에게는 안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의사들은 한사람의 환자 곁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보면 알지만 담당의사를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만병의 대의사이신 우리 주님은 환자라고는 단 한명밖에 없는 의사처럼 우리각자를 대우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하여 내곁을 떠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환자곁에, 그리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는 그분곁에 언제나 머물러 있을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하는 이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은 이미 힘을 얻고 사는 사람이며 주님의 위로와 평안을 맛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외의 다른 것을 요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참 평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까? 오늘 성경말씀에는 간접적으로 그 이유를 몇가지 들고 있습니다.

 

첫째 멍에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내 멍에는 쉽고]에서 쉽다는 말(crhstov"(5543, 크레스토스) )은 꼭 맞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멍에를 자신이 다듬어 가지고는 그것이 좋다고 어깨에 메니까 그 멍에가 맞지 않아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납니다. 우리 자신이 인생의 두목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나름으로 다듬은 멍에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세상과 같이 멍에를 메기 때문에 우리의 짐이 무거운 것입니다. 유대나라에서는 밭을 갈 때에 소 두마리가 함께 겨리를 해서 밭을 갑니다. 소 두마리가 밭을 갈려면 힘도 키도 비슷하여야만 힘 덜들이고 밭을 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한마리의 소는 크고 힘이 센데 한마리는 작고 힘이 약하면 두마리의 소는 서로 다 무척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는 세상과 같이 멍에를 메지 말아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멍에를 메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멸시를 받는 자, 경멸당하는 자, 짐승만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병든 자도 다 오라고 부르십니다. 마음에 병든 자, 고통속에 사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가는 자, 자기의 불성실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 학대받고 천대받는 자, 선을 주었으나 악으로 보상받는 자, 모략과 이기심과 시기심의 제물이 된 자, 비겁하고 비열한 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자, 수많은 군중들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자,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마음이 허전한 자, 없는 것 없이 차려놓고 살지만 웬지 모르게 텅빈곳이 많은 자들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은 부드

러운 음성으로 강하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슬퍼하는 사람, 헛되이 수고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무덤 속에서는 안식이 있을지 모르지만 무덤 곁에는 안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죽어 무덤에 묻힌 인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아있는 가생도 아닌 그러한 인생의 고뇌를 말했습니다. 무덤곁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은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일 것입니다. 죽음에도 삶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주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사람은 눈에는 대단한 죄를 짓지 아니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 사람도 주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사람은 눈에는 무거운 죄같이 보이지만 주님께로 가면 대단한 죄가 아닌 그런 죄로 고민하는 사람을 주님은 부르십니다. 우리 지은 죄가 비록 사람에게 용서는 받았지만 마음에 평안이 없어 괴로움을 당하는 자도 주님은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문제도 그것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은 죄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폭로하지 않으시며 밖에 세워두고 호되게 꾸짖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안에 우리의 몸을 숨기면 그분은 우리의 약함을 보완시켜 주시고 채우십니다. 그분은 죄인의 친구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주위를 수없이 맴돌면서도 자신의 삶을 주님의 품에 던짐으로 얻는 안식을 누리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 주님의 품에 안길 수가 있습니다. 그 분에게 나아가기 위하여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억지로 벗어 놓으려고 애쓰지 마시고 그대로 주님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의 짐을 다 벗겨버리고 아무런 멍에도 없이 자유롭게 사는 그런 안식을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맞는 멍에로 바꾸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이나 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문제라도 주님께 가져가면 자신이 질 수 있는 멍에가 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멍에로 바꾸어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혀 맞지 않는 세상과 함께 밭을 갈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였는데 이제 주님께 나아가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우리 곁에서서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고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멍에는 쉽고 가볍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주님에게 뛰어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맞는 멍에로 바꾸어 주시며 우리와 함께 인생의 밭을 갈아주시는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의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