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11장]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코이네' 2014. 11. 26. 18:4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성경 본문: 마 11:28-30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결론이 자기에게서 맺어진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 이 말은 인간이 만든 의의 최고는 요한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정도로는 천국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천국의 말째도 그보다는 크다. 요한도 자기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제 요한은 자기 사명을 다하며 옥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에게 묻는다. 그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에게로 돌리려고 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구세주라고 직접 대답하지 않으신다. 자신이 하신 일을 그들에게서 말한다. 구세주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신 일을 보고 아는 것이었다.

 

구세주는 기적을 행하러 오신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려 오지 않았다. 구세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 그러므로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거짓 지도자는 자기를 높이고 부자들을 조정하며 노예로 만든다. 그러나 구세주는 그들의 노예가 되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준다. 그 복음을 통해서 자기 전체를 준다.

 

요한은 엘리야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예수에게 이끌었다. 실제로 자기 제자들도 예수에게로 보냈다. 사람들이 세상에 남아서 고생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가? 천국 밖에 무엇이 있는가! 모두다 천국을 공격하지만 목표를 잘못 두었다.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 길이 요한을 통해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길이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각기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덤벼든다. 죽기 살기로 목숨걸로 덤벼든다. 그것이 무엇이든가? 명예요, 권세요, 재산이다. 천국이라고 생각되는 이것들을 얻기 위해서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는다.그러나 이것들이 무슨 천국이랴 천국의 한 귀통이도 세상의 무엇보다도 나은 것인데,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일뿐이다.

 

사람들이 광야에 나간 이유가 무엇이든가? 또한 바쁜 시간에 교회에 모여온 이유가 무엇이든가? 선지자를 보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함이라. 그리스도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광야에 나가서도 인간적인 수준으로나 진리를 보려 한다. 그 마음은 경건의 율법적이고 외형적인 모습에 잡혀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의 모습까지도 자기 기준에 의해서 상상하고 거기 해당하지 않으면 사정 없이 비난한다. 그러기에 거짓 지도자들은 겸손과 위엄을 가장하면서 나타난다. 세상에 피를 불면 언제나 춤을 추고 애곡하면 따라서 운다. 사람들은 속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떠받든다. 진리가 세상의 기준을 따라서 움직인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진리를 받는 기준은 완전히 자기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요한이 금식하니 귀신들렸다고하고 예수는 보통 사람처럼 산다고 죄인들과 같다고 한다. 복음적인 눈으로 보면 요한과 예수의 행동은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율법적이고 세상적인 사람들은 도저히 이 두 행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요한은 인간으로서는 경건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그는 세상을 떠나서 홀로 살았다. 재산을 다 버리고 금식하며 일체의 쾌락을 삼갔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의를 이루었다. 예수는 전혀 그런 식으로 행동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그는 이미 의로운 존재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이였다. 먹고 사는 차원을 이미 넘어선 하나님의 생명이었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요한의 가르침도 예수의 복음도 모두 거절하였다. 그들은 요한의 비수같은 회개의 요청을 못들은체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기적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복음을 거부하였다.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반항한 죄라도 없었을 터인데 복음을 듣고도 무관심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진노는 무서운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세상에서 지혜롭고 세상에서 부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해결할 수 있으이라 믿고 있는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무능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이들에게나 복된 소식이다. 누가 그 안에 있는 보화를 바로 볼 눈이 있는가!

 

아들을 낳은 아버지만이 아들을 안다. 아들의 비밀을 아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자기의 피를 주고 낳은 자기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버지가 만든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다. 아버지는 원하는 자를 아들에게 구원하게 하신다. 안그러면 땅에 속한 버리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할 길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 눌린 이들을 부르신다. 죄짐이건 병짐이건 빚의 짐이건 슬픔의 짐이건 모두 가지고 나아오라하신다. 주는 우리의 짐을 짐어지신다. 날마다(시68:19) 우리는 주 앞에 짐을 가지고 나아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연보가 궤에 던져져 우리를 떠나는 것처럼 그 짐을 주에게 던져 맡기는 훈련을 한다.

 

이것은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그것을 모르면 절대로 믿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확인하자.저가 소경이 눈뜨며 앉은뱅이가 걷는다. 죽은자가 살아난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 모든 것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짐어지는 과정이다.

 

주 앞에 나온 이들은 주의 멍에를 메고 주께 배운다. 내 멍에와 내 짐을 주의 것과 바꾸는 것이다. 모든 짐을 벗고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삶과 능력을 나누기 위해 그에게 배우고 그의 짐을 함께 진다. 영광스럽지 않은가!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