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다니엘

기도설교, 단9장,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다니엘

'코이네' 2014. 10. 12. 00:42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다니엘

 

말씀: 다니엘 9:1-27

 

 

요절: 다니엘 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다니엘서 9장은 갈대아 나라 다리오왕 원년에 다니엘이 하나님앞에 나아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내용과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응답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응답받는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니엘과 같은 기도의 용사로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다니엘의 기도(1-19)

 

1절을 보십시오. 메대 족속 아하수에르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이었습니다. 또한 2a를 보면 '곧 그 통치 원년' 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년수를 정확히 기록하는 이유는 바벧론제국이 멸망하고 유다가 해방될 역사적인 때가 임박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이 때 다니엘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b를 보십시오. 그는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습니다. 이는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5:9-11절을 보면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벧론왕을 섬기리라"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공부를 통하여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다니엘의 나이로 보나 사회적, 예언자적 위치로 볼 때 성경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80세가 넘는 고령에다 대 제국의 국무총리로서 그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서류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어 몹시 바빴을 것입니다. 이런 중에 책상에 조용히 앉아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특별한 영적 소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이에 관계없이 세상 일이 많으면 많을 수록 기도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하였습니다. 그는 성경공부를 의무적으로, 목자의 체면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위하여 절대적이고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힘과 생명을 다하여 감당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었으며 화려해 보이는 세상에 조금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적인 눈이 흐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끝까지 섬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해방을 갈망하였지만 그 년수를 깨달은 사람은 성경공부를 하던 다니엘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공부를 통해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그는 위대한 기도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정보시대로서 각종 정보들이 홍수와 같이 쏟아져 나옵니다. 의학지식만해도 오늘날은 10년전에 비해 세배의 양을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해서는 많이 압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하지 않으므로 영적 세계는 문외한입니다. 이로써 영성은 점점 피폐해져 사람들은 기계의 부속품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육체와 함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육의 양식이 필요하듯이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성경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두신 계획을 알았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필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첫째,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3-15)

 

3절을 보십시오. 그는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기도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이나 국가적인 재난이 있을 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은 육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한 가지 기도제목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쓴다는 것은 죄인으로서 무력함을 느끼고 겸비하게 하나님께 기도함을 말해줍니다. 다니엘은 죄악된 백성들을 대신하여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잘 알았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은 지금까지 하나님앞에서 뜻을 정하고 죄악된 이방문화가운데서도 하나님 한 분만 경외하고 섬기므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도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죄를 자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데 자기를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 중 한 사람같이 죄인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의 자세로 나아가 기도할 때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습니다.(시 51:17) 진실되고 의롭게 살고자 애를 쓸수록 하나님앞에서는 비참한 죄인임을 깨달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경륜이 쌓이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수록 자신과 자기 백성의 죄가 얼마나 크고 비참한 가를 알고 하나님께 애통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회개한 죄가 무엇입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시고자 주의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마저도 듣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를 볼떠 이들의 죄는 고의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백성이 근본적으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앞에 이 죄문제를 들고 나가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고 목자를 피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 본성대로 자기가 원하는 데로 살고자 하는 마음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게 되면 말씀앞에서 회개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다가는 세상에서 낙오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씀을 떠나는 순간부터 불행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말씀이 없으면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데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침판 잃은 배와 같이 방황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며 결국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말씀공부를 멀리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를 멀리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실상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는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는 죄의 소욕을 이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다니엘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100% 공의로우시며 자기들이 이렇게 수욕을 받는 것은 자기들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70년 동안 수욕을 당하게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편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재앙이 자기들의 죄때문임을 겸손하게 인정하였습니다. 11절에서 15절 까지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도 모세의 율법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선민이라고 해서 봐주시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범죄하면 저주하시고 순종하면 복을 내리십니다. 이 하나님은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14) 다니엘은 이 하나님앞에서 죄를 합리화하거나 핑계하지 않고 자복함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하면 징계하시지만 죄를 자복하고 진실되게 회개하면 어떤 몹쓸 죄인이라도 받아 주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요한일서 1:9절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16,17)

 

16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그의 첫째 기도제목은 마땅히 때가 되었으니 포로생활에서 벗어나도록 해달라고 간구해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조건개선보다 하나님의 분노를 떠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개선을 더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백성이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므로 하나님의 분노를 샀기 때문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조건 개선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개선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 자체를 구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성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랬습니다. 모세도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을 하므로 십계명 가운데 제 1, 제 2계명을 범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진노하사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약속대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시고 그 땅을 이들에게 줄 것이로되 하나님 자신은 범죄한 이들과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모세는 슬퍼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만민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5,16) 모세는 하나님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 보다 하나님과 함께 광야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잘 먹고 편히 산다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지옥이요, 비록 광야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천국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개선보다 조건 개선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보다 세상 물질,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훌륭한 동역자, 신실한 양 , 좋은 직장, 좋은 학점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얻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성이 좋지 않고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분노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얼굴빛이 주의 황폐한 성소에 계속 비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하는 목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5절에서는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셨음을 상기시킵니다. 17절에서는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도록 기도합니다. 18절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시도록 합니다.19절에서는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는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자기들이 포로가 되어 수욕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그 사실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며 그런 기도는 아주 잘 들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제목이 무엇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기도를 하는 내적 동기와 소원입니다. 같은 기도제목이라도 자기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는 그 결과에 있어서 아주 다릅니다. 양을 fishing하고 1:1을 하는 것도 목자의 체면이나 목자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하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됩니다. 양을 회개시킬때도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하면 회개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회개시키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가운데 역사하셔서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심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18,19)

 

18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다니엘은 지금까지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았고 이방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자기의 업적이나 의를 기초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봐서라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큰 긍휼만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의는 하나님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의롭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자기의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하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하고 하나님께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무가치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를 들고 나와서 요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이 인식하고 다만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할 때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눅18:9-14)

 

19절을 보십시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절하였으며 자기 백성으로 향한 목자의 심정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중보자로서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시고 즉시 응답하십니다.

 

.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20-27)

 

하나님은 다니엘이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를 자복하며 간구할 때 천사 가브리엘을 빨리 보내셨습니다. 23절을 보면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하나님이 가브리엘을 바로 보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수하게 양들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면 결코 지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기도에 대한 불신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 4:3) 그러나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은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요1 5:14)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려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천사가 그에게 온것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회복될 인류 구속 역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상속자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뭇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주시고 또 그들을 통해 이루실 600년 앞의 구속역사를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실한 양 한 사람을 위하여, 훌륭한 동역자를 위하여 간구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이루실 원대한 구속 역사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엡 3:20) 24절을 보십시오.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가운데는 70이레의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실 은혜의 역사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허물이 마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의 역사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가 끝납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죄는 인류위에 왕노릇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죄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로써 죄가 더이상 왕노릇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죄악이 영속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속하여 주시므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을 말합니다. 넷째로, 영원한 의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류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25,26절은 말합니다.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또 이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다섯째로, 이상과 예언이 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야에 대해 예언하시고 이상중에 계시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이 모든 이상과 예언이 응하게 되었습니다. 여섯째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시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이 모든 구속 역사를 일일이 다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70이레는 문자적으로 490일이지만 비유적으로는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90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는데서 부터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나아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전 기간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네 단계로 나뉘어집니다. 첫째, 일곱이레; 둘째, 62이레; 셋째, 중간 공백기; 넷째, 마지막 한 이레입니다.

 

일곱이레는 유대인들이 바벧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는 B.C538년 고레스 원년에서, 왕의 칙령으로 바벧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제 2 성전인 스룹 바벧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할 때(B.C445년) 까지를 가리킵니다. 육십이 이레는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시기전 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상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편에서 볼 때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속 역사를 준비하는 의미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중간 공백기는 그리스도 성육신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말합니다. 26절에서 육십이 이레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끊어짐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이레는 세계 역사의 종말의 시기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게 될 7년 대 환란시기를 가리킵니다. 이 때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기로서 전반부 3년 반 동안은 성도와 굳은 언약을 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나면 적그리스도는 자기 정체를 드러내서 모든 언약을 파기하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예배하게 하고 666의 숫자가 있는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이를 거절한 자들은 죽일 것입니다. (계 13:15-18) 그러나 이 기간은 잠시뿐이고 그리스도의 재

림으로 적그리스도들은 심판당하여 영원한 유황불 못에 던져져 멸망하게 됩니다.(계 19:20) 지금까지 성도들은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며 괴롭히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내적으로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고생했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는 기도는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임을 배웠습니다. 이 시대는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되게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기도의 종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봄학기에 우리 가운데 다니엘과 같은 기도의 종들이 많이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