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다니엘

기도설교, 단9장 다니엘의 기도

'코이네' 2014. 10. 11. 23:57

   기도설교, 다니엘의 기도가 갖는 특별함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동안은 단순히 그분의 약속에만 있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올리는 기도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대로’드리는 기도의 의미입니다. 이 주제는 신약에서 자주 거론되었는데 알고 보면 단순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찾아내고 나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실례를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선포된 자신의 말씀은 열매없이 그냥 그분에게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열매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하신 아들이 영광과 큰 능력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반복해서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기도하고 우리가 결코 실망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다니엘의 자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다니엘을 움직여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약속은 실현되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기도에 포함된 주된 요소들을 열거해 봅시다.

 

첫째. 다니엘은 하나님께 진지한 자세로 나아갔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별도의 특별 기도까지 올렸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 ”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기적인 기도 이외에도 열심히 특별 기도를 드렸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경외 심을 지니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오늘날 유행하는 감상적인 ‘사랑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조심없이 기도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론 하나님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했지만 자신과 친숙한 상대방의 신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엄연한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4절)이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셋째, 다니엘은 참회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고백’으로 시작되고 고백으로 끝납니다(20절). 이것은 겸손한 인간이 두려워할 크신 하나님을 찾으며 죄를 깊이 의식하고 자백하는 기도입니다. 다니엘의 이 자백은 그가 그의 소속된 조국과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언급된 죄악들은 유다 나라 전체의 죄악들이었습니다.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의 죄를 고백했다고 해서 막연하게 일반적인 죄악들을 열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고백의 기도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8절)…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9절)…(단9: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단9: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14절).…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15절).

이것은 고백의 기도입니다. 왕들과 관리들과 모든 백성들이 똑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순종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크나큰 일들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감사치 않았습니다.다니엘은 고백의 기도를 드린 후에 조국의 고난과 포로 생활이 죄의 열매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형벌이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7절과 14절을 보십시오.

(단9: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9: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11-14절에서 조국이 당한 비극은 일찍이 모세가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질 때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말씀의 실현된 것에 불과함을 인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형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이 사실을 깨닫자,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다른 약속, 곧 포로 생활이 종식된다는 약속을 지향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다니엘은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였습니다.

4절은 엄숙하면서도 자애로운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단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 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다니엘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무궁한 인애도 알고 있었습니다.

9절과 18절에도 이 같은 하나님의 부드러운 측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9: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단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다니엘은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일을 잊으시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가 갖는 위대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애 하심을 믿었으므로 담대히 주께 나아가 자신의 소청을 아뢰었습니다.

 

다섯째, 다니엘은 하나님께 구체적인 요청을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황폐화된 예루살렘과 성전과 그 백성들을 보고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은혜를 내려 달라고 간 구하였습니다. 그의 소청은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이었습니다.

“(단9:16)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 의 성 예루살렘,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단9: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얼굴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단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여섯째, 다니엘은 강한 설득력과 끈기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모세처럼 하나님이 어째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하는지를 힘있게 역설하고, 간절함과 절급함으로 거듭 소청을 아뢰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로써 다니엘은 15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킨 역사적인 대 구원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그같은 큰 구원을 하실 수 없단 말입니까? 폭군의 손아귀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풀어내시는 일은 하나님이 처음 해 보시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16절에서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를 지적하며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가만히 앉아 계실 수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수모를 당하고 있는 백성들이 ‘주의 백성’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백성들, 곧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해 낸 언약의 백성들이 갖는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데 어찌 방관만 하실 수 있단 말이겠습니까?

17절에서 다니엘의 설득은 더 한층 고조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만 전적으로 봉헌된, 세상에서 둘도 없는 경배 처였습니다. 바로 이 성소가 황폐화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주께서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은 이어서 성전이 위치한 도시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18절)임을 하나님께 상기시켰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반역과 탈선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내던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알려져 있고 주의이름을 붙이고 있는 자들임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황폐화된 상황에 처해 있으면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손상될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운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살피지 않거나 혹은 그들을 구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오해될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보고서 그들의 하나님을 평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역사 하셔야 한다는 것이 다니엘의 호소이며 설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성과 영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형편으로 인해 실추될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게 될 판국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내놓고 간절한 심정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19절에서 다시 한번 집약적으로 나옵니다.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당신은 언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까? 이런 기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활동을 보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성경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위해 다니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남은 자들이 이런 식으로 기도할 때 역사는 바뀌게 될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