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다니엘

[단3:13] 신들의 아들 _김기홍 목사

'코이네' 2021. 7. 22. 21:15

신들의 아들

(3:13-30)

설교 : 김기홍 목사 

 

 

하나님께서 유다왕 여호와김을 망하게 하였다. 이미 멸망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여러번 그리고 오랜 시간을 통해서 경고되었다. 최강국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유린하여 유다의 항복을 받아냈다. 허다한 공물과 인질들은 수천 킬로 떨어진 먼먼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때 성전의 금은 기물들도 함께 약탈을 당하였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 기물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집어넣었다.성경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갈등은 한 국가대 다른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 다른 신과의 싸움임이 나타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시대부터 다른 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면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불신앙에 빠질 때 하나님과의 계약은 파기되었다. 적들의 손에 떨어져 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물건들은 그들의 거짓 신의 신전으로 운반되었다.이 기간은 예레미아가 예언자로 활동한 시기이다. "너희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을 모르느냐. 너희의 거역은 무서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랑하시는 신이시니 그가 정녕 너희를 멸하시리라!"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미움을 받았다. 유대 전설에 의하면 그는 원수들에게 잡혀서 통나무 속에서 톱으로 두 동강나서 죽었다고 한다.이 때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 중에 청년들이 있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 귀족 중에서 준수하고 학문에 능통한 이들을 택해 훈련시켜서 자신의 박사가 되도록 명하였다. 요즘 말로하면 자문역인 셈이다. 이들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특별 대우로 3년을 훈련받았다. 대 바벨론의 최고 귀족이 되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이들이 바로 벨드사살이라 이름붙여진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이다.그러나 이 청년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만을 할 것을 고집하였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 청년들은 일등국민으로 장래가 보장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왕을 거역한 것이 되므로 위험한 것이었다. 그들을 돌보는 이는 시험 삼아서 채식을 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네 청년들은 영원히 왕의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들에게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한심하게 생각했겠지만 이들에게는 왕의 진미보다 나은 하나님의 진미가 있었다. 포도주와 고기는 없었다. 그러나 채식도 하나님은 진미로 만들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하나님의 영적 양식을 함께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신자들이 누릴 양식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믿음으로 보고 만지고 먹고 누리고 있었다.그러므로 그들의 외모만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수도 없는 은사를 받게된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것이다.

 

바벨론은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권력과 부와 명예가 총집중된 곳이었다. 동시에 거짓 신이 국가의 대표 신으로 되어 있어 죄악의 도시였다. 여기에서 이들은 위대한 삶을 마지하게 된다.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만든 신의 상을 만들었다. 높이가 27미터요 넓이는 3미터가량되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북한 수령동지의 금페인트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왕은 전국의 지도자들을 불렀다.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고 하였다.그리고는 명령하였다. "느부갓네살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누가 감히 이 명령을 거역할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세 청년은 절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으로 다른 곳에 있었다. 순식간에 바벨론 사람들의 모든 시선은 이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이들은 왕에게 보고되고 즉시 곤경에 떨어지고 말았다.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신에게 절하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사건이지만 세상에서 볼 때에는 미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왕의 반응은 당연히 격노한 것이었다. 그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이들을 아끼는 왕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이제라도 절하면 좋거니와 않하면 극렬한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이 말에 대해 세 사람은 당당하였다. "만일 그럴 것이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할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말이 오늘 말씀의 주제이다. 모든 신자들은 이 말을 하나님의 영감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인간의 지혜는 조심스러운 대답을 기대하였지만 이들의 대답은 너무도 솔직하고 명쾌하였다. 임기응변이나 정치적이고 도피적인 답변이 아니었다. 또한 왕의 질문 내용 너희를 내 손에서 어느 신이 건져낼 것이냐는 말에 대해 그들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실뿐 아니라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밀하게 돌보시고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임을 확실하게 고백하였던 것이다.

 

이 하나님이 구원하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구하고자 하신다면 당연히 구원하신다는 확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하던지 않으시던지 상관않고 절대로 신상에는 절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이 구하셔도 절하지 않고 구하지 않으셔도 절하지 않겠습니다"이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고 그에게만 자신들의 모든 삶을 일임하겠다는 확실한 입장 표명이다.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삶은 너무도 고집불통이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적응 못할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위의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절하라고 명령한다. 돈에게 높은 사람에게 그리고 명예와 인기에 절하라고 타협하라고 한다. 적당히 하고 너무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 일에만 몰두하고 세상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사업하면서 그들처럼 살라고 한다.

 

히브리서 11장을 본다면 하나님은 신앙의 인물을 구하셨음을 갈파한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하여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계속 읽어본다면하나님이 구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이 나타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같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이 교훈은 실제적이다.

 

인생은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구원을 받기도 하고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역사의 한 가운데 서서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대면해야 한다. 이 문제는 현실이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온갖 세상의 문제들이 여기 해당된다. 작게는 개인의 망신이나 실패로 시작해서 죽음이나 집단의 멸망까지 갈 수 있다. 신앙의 사람은 거짓 신에게 절하지 않는다.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는 예수께서 구세주임을 증거했다. 그리고 돌에 맞아 죽었다. 구세주가 구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면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는 죽었어도 살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았다.

 

느부갓네살은 평상시보다 칠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세 사람은 결박된채로 불 속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들을 던지던 사람은 즉시 불에 타죽었다. 보던 사람들은 전율하였다. 높이 솟아오르는 맹렬한 불빛은 모든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보던 사람들을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 자신부터 놀랐다. 그들은 타지 않았다. 불 속에서 거닐고 있었던 것이다.놀랄 일은 아직도 있었다.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지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 같도다." "신들의 아들"은 어디서 나타났는가? 성육신하기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 또 나타났던 것이다. 세 청년들은 불 속에서 결박이 풀린 자유로운 몸으로 타지도 않고 그슬리지도 않는 몸으로 거닐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면서 고독하게 망해가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늘 함께 다니시던 하나님이 특별한 시간에 모든 사람이 보도록 나타난 것이다. 세 청년들은 확실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다. 그리고 은혜에 감격하였다.이 신비한 일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당시 문명의 한 복판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결과는 두 가지이다. 사람들 앞에서 신들의 아들과 함께 서느냐 아니면 당당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죽느냐이다. 후자는 더 나은 부활을 약속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신들의 아들이 항상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느끼는 것이요 다음으로 절대로 세상의 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다.세상의 방법에 따르지 말라.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악인과 함께 술마시고 악행하지 말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진 확신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위협에도 건져낼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세상의 신에게 절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전능하신가? 나를 책임지시는가?행동하면 그 댓가로 복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복받은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이 확실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행동은 하나님이 동행함으로 확증된다. 세상 사람들은 신들의 아들이 함께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으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을 행동에 옮기라. 그러면 그 믿음의 행위가 열매로 증명된다.느부갓네살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풀무불 앞에 가서 불렀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천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여 나와서 이리로 오라." 불에서 나온 사람은 더욱 아름다웠다. 왕은 외쳤다.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여기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쉬지않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은 언제나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앙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들을 신들의 아들로 만드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확고한 삶에 세상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신들의 아들로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