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9장, 마태를 만난 예수님과 당신이 서있는 자리

'코이네' 2014. 10. 8. 19:20

 어디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마9:9-13 당신은 어디에 있기를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나 명예에 어울리는 자리나 모임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보다 가치가 하락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결코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유익한 만남이나 자리를 찾는데 익숙합니다. 만약 나에게 유익하다는 판단이나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러한 모임이나 자리에 참여하지 않는 일에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언행을 통해 과연 우리가 예수님의 생각과 삶에 익숙해져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도 잘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을 때 마태는 기뻐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나눕니다. 그때 자신과 같은 직종에 있는 세리들과 그 시대에 죄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함께 주님과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 자리를 목격한 바리새인들은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 문제제기와 함께 예수님의 대답이 나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우리는 오늘 이 문제제기와 대답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신앙적으로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바리새인이 본 문제(마9:11)

 

바리새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결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옳은 인간관계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 외면되고 소외된 부도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결코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바리세인들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위대한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이 자신들과는 함께 하지 않고 오히려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지 그들은 이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이들과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를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시간이나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것이 대단히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생활이라고 믿습니다. 결코 그 누구도 자신에게 불필요하고 원하지 않는 어떤 관계나 상황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거나 희생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예수님을 닮기 원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 사실을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이상한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은 유명인사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에 대상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위나 명예에 부담이 갈 정도로 예수님은 유명인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그 시대에 멸시받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향해 물었던 것입니다.

 

결코 바리새인들이 우리와 엄청나게 다른 불의한 인간이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경멸하는 말씀을 많이 하시니까 우리는 바리새인은 대단히 비인간적이며 위선자처럼 받아들이면서 적어도 나는 바리새인과 같지는 않다고 말할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인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아주 흡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은 우리와 같은 종류의 상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상식적인 가치관을 비난했다는 것이며 그 사실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이 던져진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로 대하셨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대답(마9:12-13)

 

예수님은 결코 바리새인들이 잘못 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판단대로 이들은 죄인이며 세리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며 자리이냐 하는데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가 필요한가? 그리고 내가 있음으로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가? 하는 시각에 행동의 촛점이 맞춰져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서로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서투릅니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에만 투자해온 삶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긴장을 거부합니다. 결코 나의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그런 자리에 우리는 함께 있기를 거부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나를 필요로 한다하더라도 내가 원치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전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는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이들에게는 내가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답의 내면에는 이들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자리가 나에게 얼마나 유익하며 나에게 편안한 자리이냐 하는 것에 예수님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내가 여기 있어야 할 당연한 자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닮는 것이 소원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대답 속에 우리의 존재 이유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나보다 부족하고 서투른 인격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기를 두려워하며 주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인생의 가치관으로인해 우리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여기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사랑이었으며 그 분의 가치관 은 우리의 상식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가치관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과 대답속에서 우리의 개인의 인생관과 교회의 분위기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랑에 갈증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받아 들여지기를 원하며 서로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대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필요한 자리에 앉지말고 너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말합니다. 너의 감정이나 사회적 만족을 위해 살지말고 드러난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그 자리에 있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우리는 모두 무엇인 옳은 것이며 신앙적인지에 대해 분별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습니다. 결코 그 누구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여기에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데 그 자리에 당신이 없었다는 서운함이 오히려 우리에게 아픔을 주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옆 사람이 나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들린다면 우리는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내 생각처럼 그가 나를 원치 않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도 더 나가서 그에게 더러움과 추함이 있는 죄인의 모습과 세리의 모습이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며 그렇게 대우를 받아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우리는 서로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즐기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자주 만나고 할 수 있다면 함께 웃고 울고 고민하며 우리의 부족한 자리에 함께 하시는 에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에 우리의 양심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기도하겠습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