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큰 헤이드호를 기억하라, 영국인들의 긍지가 된 이 말이 갖는 의미
1852년 2월 영국의 철제 수송선 버큰 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희망봉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군인 472명과 그 가족 162명이 승선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간은 새벽 2시, 배가 두동강이 나자 한쪽이 바닷물에 잠기고, 나머지 한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밤바다에서 풍랑은 점차 거칠어져 갔고, 배는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에 휩싸여 울부짖거나 기도를 하는 아수라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어디에선가 북소리가 들려왔고 병사들은 갑판에 올라 함장의 명령에 따라 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함정 사령관 알렉산더 시튼 대령은 병사들을 집합 시킨 뒤 여자와 어린이를 구명보트에 태울 것을 지시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갑판을 지킨 시튼 대령과 435명은 결국 버큰헤이드호와 함께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배의 뒤쪽에는 세척의 구명보트가 실려있었는데 60명씩 180명이 구조선에 탈 수 있었습니다. 이 세척의 구명보트에 부녀자들이 다 승선하기까지 함장과 병사들은 부동자세로 우뚝 서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버큰헤이드호'가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침몰하였고, 용케 물속에서 활대나 나무 판자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 날 오후 도착한 구조선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조선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4백36명의 목숨이 수장된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죽었습니다.
목숨을 건진 사람 중의 하나인 91연대 소속의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모든 장병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바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들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당시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남은 사람은 193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버큰헤이드호 사건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조하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과 선원은 끝까지 배를 지킨다는 해상 재난의 불문율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인들의 긍지가 되었습니다. 항해중에 재난을 만나면 선원들이나 승객들은 서로서로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고 속삭인다고 합니다.
"버큰헤이드호(號)를 기억하라"
.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왜 이 말을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by 코이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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