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21:1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코이네' 2024. 12. 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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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 21: 15-23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시면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많은 일 들이 있지만 가장 큰 기적은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일이었읍 니다.

평범한 한 인간 -갈릴리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도록 고기잡이를 하던 베드로가 위대한 믿음의 반석으로, 예수님의 수제자로 일컬음 을 받은 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읍니다.

가난한 갈릴리 어부 무식한 베드로, 보잘 것 없고 미천한 그에게운 명의 새로운 장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읍니다.

어느날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그에게 동생 안드레 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메시야를 만났다는 동생 안드레의 말을따 라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였읍니다. 이에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의 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생애는 주님의 제자의 길이

고기잡는 가난하고 무식한 인간 베드로가 많은 사람의 뒤를 따랐읍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늘 함께 갔읍니다. 가버나움으로 사마리아로, 나사뎃으로,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따라 다니면서 예수 님의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행하는 권 능을 보았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이사랴 빌럽보 지방에서 예수님 은 조용히 베드로를 부르셨읍니다. 너는 나를 누구로 믿고 있느 냐?'는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다.'하고 그의 신앙을 고백하였읍니다. 그의 이같은 고?에서 '바 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신 것입 니다. 예수님을 따른 까닭에 한 무명의 인간 베드로는 그의 신앙고 백으로 교?의 반석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6?요절을 보면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 고백이 있 읍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믿음 을 얻은 베드로 -이제 주님을 믿기에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 백하고 있읍니다.

그의 이러한 진실한 신앙 고백도 주님의 말씀대로 연약한 소녀 ?에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엄청난 배신도 나왔읍니다. 이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선인 줄도 모릅니다. 어떠한 상황 에서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 았읍니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과오를 보인 것입니다. 주님을 판 것입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피하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부활의 주님께서는 찾아 오셨읍니다. 부활하 신 주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만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전 생애를 뒤흔들어 놓은 한 순간이었읍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 신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 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할 때,주님은 '내양을 먹이라'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주께서 세번씩이나 질문하실 때 베드로는 심히 근심하여'주여 모든 것을 아지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 이다'하였읍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사랑하느냐?'는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인 '사 랑한다'는 말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읍니다. 헬라어로 표현된 '네가나를 사랑하느냐?'하는 말과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하는 말은 서로 다른 단어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J=os JK?)'라고 물으셨고, 베드로의 대답은 '내가 주를 사랑하나 이다. (fJlltJ f=) ' 로 응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내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너를 용서하며 너를 위해 겸손하 게 회생했던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 이오나 주님처럼 사랑할 수는 없아오며 다만 제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아가파오 사랑을 물었으나 필레 오 사랑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오늘 이 지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께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는 베드로를 부르셨으며. 그 현장에서 너 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게 되었을까요?오늘 이 시간 우리 모 두 이 음섯을 듣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십니다.

 

교회를 계속 나오는 자는 믿음을 얻을 수 있고, 믿음을 얻는 자 는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1 는 결 코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서도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고 믿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적인 신앙이올시다. 참다운 신앙, 성숙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믿고 간구하기에 그리 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 생?의 중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 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 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2 :so,sl)

인간을 향한 전()계명 중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이 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신앙의 모든 행위는 위선입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읍니다.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 냐, 최대의 이단은 교의 상의 이단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치 않는 것이다.'고 하였읍니다.

한국 교회가 불과 백년만에 천만에 가까운 성도들이 예수님을 따 르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성도가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의 결 실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열심으로 교회에 모이고 성경을 보며 기도하는 교회로 굳건한 믿음에 선 것은 가히 칭찬할 만한 일입니 다. 그러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질문 ?에 오늘 한국 교 회는 너무 부족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여 주셨기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기에 오늘도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만이 우리들쎄 게 행복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느냐?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사랑해 왔 으며 지금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느냐?이 문제는 우리의 운명 을 결정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사랑 속에서 맺어지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냐쎄 따 라서 그 인간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운명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slo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근 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H라고 기록하고 있읍니다. 돈을 사랑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나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며, 많은 근심으로 찌르 며,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한 여인에게 사랑을 쏟아 버렸던 삼손, 그의 만년은 너무 비참하였읍니다. 두 눈이 뽑히고 대머리가 된 채 이방인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비참하게 죽었읍니다.

이는 사랑해서는 아니될 대상을 사랑하였기에 온 불행이었읍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u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 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퍼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 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2 : l=)

우리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읍니까?나의 사랑, 나의 애정이 어디로 흐르고 있읍니까?이것은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허물어지고 없어질 것을 사랑하고 있다면 자신 을 불행한 함정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지간 우리 주님은 조용히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 느냐?' 정녕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참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의 삶을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 생을 기울여 사랑하고 사랑할 수록 더 사랑하고 싶고, 더 투자하고 ?으며, 후회함이 없는 이런 사랑의 대상을 만나야 하는데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한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 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가르킴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 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요한이 따르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떻 게 되겠읍니까?예수님의 대답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떠물게 하고 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였읍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남이야 무엇을 하든지 상관치말고 너 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기 애정과 자기 충성을 타인에게 비교해 볼 필요가 없 읍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사고 방식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절대적 인 관계에서 요구되고 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 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 치 아니하다' (lo : s7)고 하셨읍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감히 이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누가 우리의 부모나 자녀나 아내보다 더 사 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상을 요구하 였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을 바치면서도 감격하고 있읍 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사랑의 부부가 있었읍니다. 남편은 시 인이었는데 어찌나 자기 아내를 사랑하였는지 밖에 나가는 것을 원 치 않았고 집안에 있기만 원하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로 아내 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분이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내에게 이런 시를 썼읍니다.

'! 나의 태양, 나의 생명, 그대는 나의 기쁨, 오늘도 그대 생각속에 고달픈 하루가 덧없이 가네

이토록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버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 읍니다.

그 여인은 어느날 친구따라 교회에 갔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읍니다. 그 여인은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었읍니다. 그리스도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홀렀읍니다. 그는 일찌기 체험하여 보지 못한 생의 감격과 사랑이 흘렀읍니다. 도대체 막을 길이 없을 정도로 그 리스도의 사랑안에 빠져 들었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조용 히 목사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이런 하소연을 하였읍니다.예수가 나 의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WHt 앗아 가니 견덜 수가 없노라고 고백을 했읍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시다면 교회에오셔서 자매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바친 사랑을 달라 고 부탁하세요'하였읍니다.

이 일이 있은 지 어느 날 그는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왔읍니다.

아내의 사랑을 찾으려고 교회에 나온 그도 주님의 사랑에 이끌리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감격 속에서 그리스도를 찬양하 는 기쁨의 시가 흘러 나왔읍니다.

오 나의 주님, 나의 영원한 태양

나의 생명, 나의 전부이신 님이시여,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기에

마음의 눈물마다 당신을 향해 흐르고

가슴의 불길마다 당신을 향해 타고...

당신은 나의 행복, 나의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인 천재다. 천국이 라는 것을 약속하고 그 댓가로 수 없는 사람들의 재산을 =Ht 앗고 생 명을 빼앗아 간다하였지만 천국 때문에 제자들이 그토록 열광적으 로 따른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사랑의 강권함 때문에 그러는 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미치게 만들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 생의 전부를 그에게 헌신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몸이 제믈로 불살라 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랑을 요구 하였고 베드로에게 생명 전체를 제물로 바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까닭에 생명과 사랑을 주께 드렸읍니다. 그래서 믿 음의 승리자가 되었읍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무엇을 빼앗겼읍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때문에 젊음을 빼앗겼읍니까?예수 그리스도 의 사랑 때문쎄 직업을 빼앗겼읍니까 ?마태는 세리를 그만 두었으 니 요즈음 말로 일등 직업을 포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생에서 무엇을 빼앗아 가던가요 ?아브 라함처럼 하나 밖에 없던 생명같은 자녀를 빼앗아 가던가요 ? 먹지 도 쓰지도 않고 모은 재산을 uHt 앗아 가던가요? 여러분의 손에서 그 토록 즐기던 낚싯대를 Wut 앗고, 없어서는 못 살 것 같던 세속적인 어떤 취미를 빼앗아 가던가요 ?정녕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소중 한 것을 빼앗겨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하여 봅시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5o대의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하고 건장한 청년, 힘 있고 패기찬 야망의 청년으로 예수님을 몰랐다면 그런대로 유족한 생환을 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 다. 생각하여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직업도 빼앗기 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십자가에서 빼앗긴 사람입너다.

그에게는 네 차례에 걸친 생의 계기가 있었읍니다. 갈릴리 바다 에서 주님을 만난 일이요, 가이사랴 빌럽보 지방에서 신앙을 고백 하던 일이요,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닝을 만났던 일.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사건, 베드로의 생을 전격적으로 변화시킨 것 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일입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 으로도 못하던 일들을 그는 성령을 받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 성을 불사르고 모든 책임을 기독교인들에 돌리 고, 모든 기독교인을 핍박했을 때 베드로는 로마의 일곱 언덕을 넘 어 피신 길에 섰읍니다. 그 길에 주님께서 나다나셨읍니다.

'껴바디스 도미네'베드로는 두렵고 떨리는 음성으로 '주여, 어디 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읍니다. '나는 네가 버리고 도망치는 로 마 성에 들어가 다시 십자가에 죽으려 한다.'이 말을 듣던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려 로마 성으로 다시 들어 갔읍니다.

베드로가 자수하였다는 소문은 온 로마 성을 뒤흔들었고 그를 처형 하는 원형극장에는 수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었읍니다. 드디어 베 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읍니다. 마치 매달린 자루처럼 처참 한 모습, 눈에서도, 코에서도, 입에서도 붉은 선혈 피가 터져 나왔 읍니다.

그러나 흘린 피 찢긴 입술 사이로 목메인 소망의 찬송이 흐르고 있었읍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러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갈릴리 바다레서 직업을 빼앗던 주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생명까 지 빼앗아 갔읍니다. 물론 베드로가 주님을 몰랐어도 죽었을 것입 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삶을 uHt앗긴 베드로, 영원히 후회 함이 없었고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한번 죽고 끝나 는 자가 되지 말고 죽어도 사는 자, 아니 영원히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무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읍니다.가난한 과 부에게서 하루 먹을 것을 uHt 앗으셨읍니다 물론 그 과부는 하루 동안 굶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에게는 말할수 없는 감 격이 있었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 를 빼앗아 갔읍니다. 그 값진 향유는 주님의 머리에 부어짐으로 끝 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일은 기념이 되고 있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가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던가요 ?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들이나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 사랑 을 빼앗겨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 리의 것을 빼앗아 갈 때 그것은 하늘 나라에, 그리고 영원한 생명 과 합께 우리의 것으로 남아 있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귀중한 두 아들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살당했 읍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었 읍니다. 그러나, 그는 기쁨이 충만했고 자기 영혼을 주님께 맡기며 원수를 용서하고 죽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보다 많이 빼앗깁시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에게 아무 것도 ?ut 앗기지 않고 깊이 감추인 채 인색하게 잘 살아왔읍니까? 이것은 지혜로운 것 같으나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섭섭하게 여기지 마십시요. 결국은 다 빼앗기는 날이 오는데 가슴 을 치며 부X러워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시간과 정열과 그리 고 그리스도에게 바쳐야 할 사랑을 누가 ?ut 앗아 갔읍니까? 오늘 이 시간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께서 말씀하 십니다. u한신 교회 성도들이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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