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제일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3:31-35
주경가 베이커는 “사랑이란 그리스도인의 배지이다”라고 했습니다.이 말은 군인이 계급장을 달고,회사원이 자기네 회사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13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언 땅을 녹이는 따뜻한 봄 햇빛과 같은 것입니다.
길가는 나그네의 두툼한 외투를 벗기기로 했던 바람과 해의 우화는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바가 큽니다.크고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바람이 불면 불수록 나그네는 외투 자락을 여미고 몸을 움츠렸습니다.그러나 소리도 없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햇빛이 나그네를 비치자 그는 훌훌 외투를 벗었습니다.
사랑이란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지만 닫힌 마음을 여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나눠진 것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랑을 원자탄이라고 부른 사람도 있습니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랑과 미움이 한판 승부를 겨루기라도 하려는 듯 대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요한1서 4:16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그러나 마귀는 증오와 싸움과 시기와 분쟁의 영입니다.마귀는 할 수 있는 대로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이 세상 곳곳마다 증오와 다툼을 일으키고 서로 미워하며 싸우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국경 분쟁,종족간의 싸움,이데올로기의 대결,종교 전쟁을 비롯하여 개인 대 개인의 갈등과 싸움도 따지고 보면 사랑의 부재 현상이 빚어 내는 사람의 농간인 것입니다.
캐나다 신문에 보도된 기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어떤 부인이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재판장이 부인과 남편을 불러다가 사실 심리를 하게 되었습니다.재판장이 부인에게 이혼사유를 물었더니 부인의 대답이 “남편이 노래를 너무나 못하기 때문이다”는 것이었습니다.노래를 얼마나 못하기에 이혼을 할 정도냐고 물었더니 그 부인 대답이 자기 남편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아는 노래가 단 한 가지 뿐인데 그 노래 제목이 ‘독신 생활이 좋아’라는 것인데다가 그 노래를 부르는 날이면 돼지 멱따는 소리에다가 곡조가 도무지 맞지 않아서 함께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이 그녀의 남편에게 그게 사실이라면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습니다.남편의 노래를 듣고난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 6개월 동안 부지런히 성악가에게 개인 레슨을 받아서 노래를 잘 부르도록 한다음 그때 가서 교정이 안되면 다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자”라고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웃고 넘기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야기입니다.제아무리 일생을 약속한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떠나면 어제 듣던 “그대는 나의 태양”이라는 노래가 돼지 멱따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불행과 고민은 G.N.P.가 올라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집권당이 독재를 하고 야당이 대드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시대,우리들의 문제는 사랑이 식고 증오가 춤추고 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문 34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크게 네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20절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을 다루고 있고,21-30절은 가룟 유다가 최후의 만찬속을 뛰쳐나간 사건을 다루고 있고,31-35절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을 다루고 있고,36-38절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게 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사탄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면 예수를 멀리하고 자신을 감추고 남을 속이는 가면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신 주님께서 가룟 유다의 정체를 벗기신 후에 둘러앉은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주님은 본문 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경가 파머는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것은 표적도 공식도 사람의 수도 아니며 오직 사랑에 있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우리가 예수의 제자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 역시 교회를 들락거린 연륜이나 공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이 교회다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주님은 이 사랑을 가리켜 34절에서 “새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는 경쟁심과 시기심이 있어서 누가 제일인가와 누가 높은가의 다툼이 거세게 일고 있었습니다.그러한 그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남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칼빈은 새 계명이란 갱신된 계명을 말한다고 했고 올스하우젠은 늘 새로운 계명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왜 “서로 사랑하는”이라는 것이 새 계명이 되고 갱신된 계명이 되며 늘 새로운 계명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동기를 만들어 남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내가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감정과 기분과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그 사랑의 표준을 정해 주셨습니다.그래서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나한테 잘하는 사람이나 내 기분에 맞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짐승들도 자기에게 잘해 주면 애정 표시를 합니다.그러나 상대편이 나한테 어떻게 하느냐를 떠나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볼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할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별력도 모자라는 사람들이었고 대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무식한 어부들이어서 다투기를 좋아하고 시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사랑한다는 구체적 증거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러니까 이 말씀 속에는 너희가 사랑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은 것처럼 너희끼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나 루즈벨트는 10살때 고아가 된 사람이었습니다.그녀는 20세때 결혼해서 6남매를 키웠습니다.6남매 중 한 아이가 어머니 눈 앞에서 죽는 슬픔을 당했을 때 친구들이 그녀를 위로했습니다.그때 그녀는 “걱정하지마,나에게는 아직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남아 있잖아”라면서 오히려 친구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녀의 남편 루즈벨트의 다리가 마르기 시작하여 쇠붙이로 받침대를 만들어 다리에 붙이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어느 날 루즈벨트가 부인에게 “아직도 나를 사랑하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는 당신의 다리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 전체를 사랑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면 그를 떠날 것입니다.명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명성이 떨어지면 그를 떠날 것입니다.권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권력에서 밀려나면 그를 버릴 것입니다.그러나 엘레나 루즈벨트처럼 망그러진 다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남편 루즈벨트를 사랑했다면 그 사랑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몸소 실천하신 사랑입니다.
입으로 외친 사랑이 아니라 친히 몸으로 겪으신 사랑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희생 시킨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영원한 사랑입니다.
잠깐 동안만 계속되는 사랑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3.차별이 없는 사랑입니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사랑이 아닙니다.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 시는 사랑입니다.
4.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동기 속에 불순물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어떤 조건이나 이유도 그 속엔 없습니다.다만 인간이 불쌍하고 가련하기 때문에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5.비길 데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에다가도 비길 수가 없습니다.유일하신 사랑이며 하나님밖에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문제는 사랑의 실천입니다.서로 사랑합시다.사랑이 제일입니다.삭막한 세상에서 사랑의 실천자가 됩시다.각목을 휘두르고 소리지르는 세상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릅시다.사랑의 들불로 우리의 가정을 밝히고 교회를 밝히고 어두운 세상을 밝힙시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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