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행복론
요13:34-35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인생의 소원을 말할 때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행복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 행복감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때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한 때 이 행복론으로 인해 무척 많은 시간을 고민해 본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 행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신앙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려운 것은 예수님이 과연 이 땅에서 행복했느냐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활의 결단이 쉽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행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이 행복의 문제를 이렇게 접근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 과 ‘진정 행복한 사람’에 대한 비교였습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잘생긴 용자였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러워하며 선망했다. 모든 사람들 눈에 그 사람의 생활은 너무도 행복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람은 권총자살을 하였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마음속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성경에 모든 인물을 이 행복론적인 입장에서 연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선 이 땅에서 가장 물질적인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솔로몬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는 지혜를 소유한 왕이었으며, 가장 강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가진 왕이었으며, 주변의 수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둔 사람이었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풍성한 재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인생에 내린 결론은 ‘전도서’였습니다. 그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결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저는 이 성경의 인물을 연구하다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의 특징은 세상적인 매력과 풍요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저의 속 사람의 타락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론이 바로 세상적인 풍요에 멈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접근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나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정한 만족과 넉넉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욕구의 그리움과 허무와 권태가 그들의 생명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의 조건은 커다란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저는 새로운 ‘행복관’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의미를 바로 예수 그리그리스도의 행복론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진정으로 인간의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매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탄생은 인간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은밀한 탄생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가정은 아버지가 목수였으며 그가 아버지를 도와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지어야 하는 보통 유대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예수님의 외모도 그렇게 준수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가 가지고 있는 생활적인 조건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에서 충격적인 도전은 세상적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인간들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물질의 풍요나 권력의 지위나 세상의 명예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망 하였으며 때로는 분노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쳤으며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명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복론’은 사랑이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제가 ‘행복’에 대해 정의를 내릴때 ‘행복은 사랑이 있는 곳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또 하나의 축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행복은 경험될 수 없는 감정인 것입니다. 충만한 만족감이 행복의 느낌이라면 우리는 이 사랑과 관련시킨 행복에 대해 동의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계명은 새로운 행복론의 가치관의 변화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무척 사랑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기를 항상 열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도 예수님은 항상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또다시 동일한 말씀으로 진정한 행복론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의 풍요가 있으며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의 가치가 있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그렇게 강권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경험되었는지 이제 우리는 여기에 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기꺼히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흘림으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구원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피조물의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은 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복론은 여기서 다시한번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목표가 있는 인생이며 그 목표를 성취하는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생에서 공생애를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인간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만족의 표현을 하시며 생명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랑으로 사셨으며 구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모든 것을 이루시고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은 불행에 보였으나 가장 행복한 사람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인생을 닮아야 한다는 제안속에 단순히 종교적인 순종만이 아닌 바로 우리 인생에 가장 관심이 있는 행복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모두가 진정으로 알 수 있는 삶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자세히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을 가만히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군요” 얼마나 행복할 까요?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격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의 가치를 빛나게 해줄까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거짓에 속하서는 않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사랑할려는 교만한 출발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사랑밖에 없다는 절박한 겸손으로 우리의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 역시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랑과 목표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인 구원을 사랑으로 완성하셨기에 예수님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면 갈수록 우리의 인생 역시 행복해 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한 96년은 어느때 보다 행복한 한해로, 인생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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