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사도행전

[성령강림절 설교] 행 2:1 성령강림의 의미 _ 조용기 목사

'코이네' 2024. 5. 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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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의 의미

본문 : 2:1-4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령강림의 의미"라는 제목으 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사건은 50일이 지나는 동안에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거의 잊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 및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교법사들도 예수님과 빚은 논란은 이미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까맣게 잊어버려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데 유월절로부터 50일이 되는 오순절날 갑자기 모든 상황이 눈부시게 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 방에서 열흘동안 기도회를 하던 예수님의 제자 및 성도 120 위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으로 받고 성령의 말 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 한 이후에 놀랄만한 변화를 받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능력 있는 증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귀한 복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 복음이 예루살렘을 진동시키고 그 파장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갈보리산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건을 전 역사적 온 우주적 구원사건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한 사건은 팔레스타인의 한 구석진 곳에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리고 기억에도 잊혀져 버 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성령님의 손에 들려지자 온 천하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에 어떠한 변화가 사람들에게 오게 된 것 입니까?

 

첫째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구 원의 위대한 축복이라는 계시가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냈을 때는 유대인들이나 그 지도자들은 유대교에서 나온 이단을 심판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단자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했다. 그리고 이단은 사라졌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로 오신 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실패한 메시아로 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자마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22절로 24절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스라 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 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고 외쳤습니다.

베드로도 성령 받고 난 다음에야 예수께서 하나님의 예 정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의 구주가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린 것은 우리에게 위대한 구원과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바로 그 피 흘림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 사람에게 지은 죄, 우리 자신이 모자라 서 지은 모든 죄를 다 일거에 청산해 준 위대한 대속의 사역이라는 것을 그들은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원수된 담을 제키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계시하니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 슬픔을 대속하고 우리의 연약과 질병을 짊어지고 가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야말로 모든 저주와 가난을 짊어지고 우리에게 부유함과 형통함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승리였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헛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우리 죽음을 멸하시고 음부를 멸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생과 천국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신 사실을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그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는 이단으로서 처형당했다, 혹은 실패한 메시아였다 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해석해 주자말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야말로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요.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거기에서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얻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 있는 처소며, 아담이 타락해서 잃어버린 것을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 찢고 피를 흘려 값 주고 다 사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와 같은 위대한 진리를 우리가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야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며 부활하신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깨달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날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온 역사적인 우주적인 구주가 되고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속박된 사람을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하는 크나큰 역사가 출발한 날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자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예루살렘에 전하고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매 죄인이 회개하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 신들린 자가 해방을 얻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걸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죽은 예수님이 오순절 날에 갑자기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충만하게 되어서 그들의 당황함은 이로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오셔서 그리스도의 구원이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해방과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령이 오순절에 오자마자 그는 다른 분이 아닌 다른 보혜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절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러분 여기에서 다른 보혜사라는 말은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고 그 다음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인데, '다르다'는 의미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헬라어에는 다르다는 의미 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헤테로스'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알로스'라는 말은 다르기는 다른데 질이 똑같은 것을 말합니다. 틀림없이 질이 똑같은 것은 알로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로 말을 할 때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나도 보혜사고 그 다음 성령이 오시는데 성령은 나와 꼭 질이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시에 성령도 하나님, 내가 사랑인과 같이 꼭 성령도 사랑입니다. 내가 구원한 것처럼 성령도 내 이름으로 구원하고 나의 이름으로 치료하고 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나의 이름으로 평안을 주고 나의 이름으로 역사하니 내가 온 것은 성령이 온 것이고 성령이 온 것은 내가 온 것이고 나와 성령은 똑같은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처음 보혜사요, 성령은 다른 보혜사로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혜사가 있는 것이 더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오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 동시에 온 천하에 임할 수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계시고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받으시고 예수님 주위에 가까이 있으실 분은 요한 이후에 베드로와 야고보가 같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12 제자 그리고 70인의 제자 그 다음에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 얼굴조차 자세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가시고 영으로 예수님이 오시니 이제는 천하 만민이 예수 이름을 부를 때 예수의 영 성령께서 모든 사람 속에 들어와 계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신 이가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시지요. 거울을 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거울이 보입니까? 여러분 얼굴이 보입니까? 여러분은 거울을 볼 때 거울의 글라스를 보지 않고 여러분의 얼굴을 봅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입니다. 성령 안을 들여다보면 거울은 보이지 아니하고 성령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은 바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토록 동행하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비쳐온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죄를 용서하시고 여전히 근심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며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혜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보혜사고 성령도 보혜사인데 보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이요, 우리를 돕는 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파라 클레토스'라는 말은 '파라'라는 말은 곁에 있다는 말이고 '클레오'라는 말은 부르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부르셔서 우리를 돕기 위 해서 항상 함께 계시는 분이다. 이러므로 성령은 구만리 장 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오순절날 오신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란 여러분 곁에 불러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은 바로 변호사라, 돕는 자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오늘 이 자리에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3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은 참말인 것입니다. 고아는 부모가 없습니다. 돕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며 성령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함께 살 때 성령은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는 결단코 고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혜사 성령은 우리 곁에 와서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의지하면 성령님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마치 안개가 거두어지고 환한 시야가 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환하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면 가르치시고 우리 마음에 총명을 주어서 깨닫게 하시고 과거의 들었던 말씀도 기억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희한하게 과거에 내가 들었던 일, 읽었던 일, 공부했던 말씀이 머리속에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또 오시면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 다.

요한복음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 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또 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각박하고 고통스럽고 살벌하고 부딪히고 상처 입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푸근히 우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료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주 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자꾸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예수님이 구주 되신 것을 증거해 주심으로 우리 마음속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꽉 들어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와 곁에 계셔서 우리를 책망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68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고 마귀를 따라가면 성령이 책망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꾸짖어 주시고 마음에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을 돌아서서 예수님을 따라오도록 회개시켜 주시 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앞길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가 성령께 기도하면 성령은 우리를 인도해 주는 목자로서 일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 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 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짓으로 인도하지 않고 참으로 인도합니다. 귀신들은 거짓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참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보니까 성동구청이 그곳에 단지를 만들어서 점쟁이들을 모아놓고 국가 예산으로 단지를 만들어서 보호 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미친 수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사 이가 어느 시대라고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고 사람에게 요행심리를 가져오는 이와 같은 점쟁이 단지를 만들어서 관 광 특구로 만들겠다는 이러한 어리석은 발상을 하고 있는 이상 이 나라가 잘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일보에서 강력히 항의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 이와 같은 점치는 귀신,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오도하는 이런 영에 반대에서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참을 통해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항상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장래 일 을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의 장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이해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 연약함을 도왔습니다. 로마서 8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기도할 줄 모르고 우리가 허약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고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해 주시면 우리 기도에 힘이 생기고 능력 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서 하나님의 성령은 보혜사로서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모든 도움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모르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 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성공적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성령은 교회에 와서 계시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의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손을 잡 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속에 우리가 들 어가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알지 못하면 의식과 형식적인 신앙만 있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은사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 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자마자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시는 것입 니다. 예수 믿으면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 생활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령으로 예수 믿 고 성령 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성령이 와서 우리의 인을 처서 우리의 영을 살려주어서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 동시 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무장시켜 줍니 다. 그 무장시켜 주는 체험이 바로 성령 세례인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사로 우리를 무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일선에서 일하는 군인이 무장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싸울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 에 마귀와 싸워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다 소유하기 위 해서는 무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서 자기 신앙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성령 세례 받아 무장해서 우리가 나아가 마귀 의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점 령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령 세례 받아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절로 5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 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 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 받으면 그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고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원 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무장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통해서 여 러 가지 은사가 오는데 계시의 은사가 있습니다. 계시의 은사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 분별의 은 사인데, 하나님이 필요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또는 전혀 모르는 사실을 꿈과 환상과 목소리로 통 해서 지식을 허락해 주십니다. 혹은 영 분별을 통하여 성령 의 역사인지 마귀의 역사인지를 분별해 주는 계시의 은사 가 있습니다. 그 다음 발성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방 언을 하고 그 다음에 방언을 통역을 하고 예언을 하는 이 런 은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의 은사가 있습니다. 믿음을 주시고 혹은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주시고 혹은 병 고치는 은사를 주어서 하늘 나라를 확장하게 합니다. 바로 고린도 전서 12711절에는 그것을 말하고 있 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 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 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 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 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는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 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 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뜻대로 이 여러 가지 은사를 각 사람의 소질에 맞도록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래서 우리가 나가서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증거를 어둡고 깜깜한 세상에 나타내며 마귀의 역사를 강하게 파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역사의 은사가 있습니다. 섬기는 은사를 주 시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은사를 주기도 하시고 권위하 는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구제하는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다스리는 은사를 주시고 하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주시 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역의 은사도 하나님 의 성령이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사역하 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이 로마서 125절로 8절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 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 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 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 그냥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 세례 받아서 성령 충만을 간절히 간구해 야 됩니다. 예수 믿은 사람은 이미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이 오지 않고는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 나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아서 충만하여 다른 방언으로 말할 때까지 기도하십시요. 그래서 성령 충만의 외적 표적은 방언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아홉 가지의 은사를 나타내어 주시고, 그 다음에는 직분의 은사를 나타내게 주시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열매 맺게 합 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 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이런 열매를 우리 속에 맺게 해주 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 믿고 성령 받아 성령의 능 력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모르고 신 앙 생활하는 것은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 문에 많은 사람이 주여, 주여 하고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도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 또 성령 세례 받지 않고 삶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능력이 없습니다. 입만 살아 있지 실제 생 활에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따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여 러분 성령이 없는 신앙은 비 없는 구름이요, 물 없는 우물 이요, 불 없는 화로요,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형 식은 다 가지고 있어도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 시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의 은사 운동을 해 야 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말세 에 내 영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리라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오늘날이 바로 말세입니다. 1900년대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온 세계적으로 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 세례 받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거대한 신유의 집회가 일어나고 기적의 역사 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회개 운동이 일 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말세의 성령 운동의 시 대인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태어 난 교회입니다. 39년 전에 불광동에서 천막을 치고 가마니 깔고 우리가 처음 예배를 시작한 그 시간부터 우리는 성령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강한 바람으로 여의도에까지 우리가 39년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 말씀 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령으로, 성령 세례 받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님 오실 날을 예비하는 여 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보혜사 성령님의 시대이옵니다. 구약 4천년 아버지께서 친히 일하시고 신약 초기 예수님인 아들이 오셔서 우리 위하여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구 원하는 모든 역사를 마치고 승천하사 보좌 우편에 앉으시 고 이제 성령이 오셔서 아버지를 따라 예수께서 이루어 놓 으신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에 하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성령이 하고 계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 리고 의지하며 성령께 감사하며 시시각각으로 성령과 함께 인생을 동행하게 도와주옵소서. 성령은 우리 영적인 위대한 가정 교사이니 성령 가정 교사의 손을 잡고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게 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성령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무도 없게 도와 주시옵소 서. 우리 가운데 계신 보혜사 성령이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바람 같 이 불같이 생수 같이 주의 백성들 가운데에 운행하고 역사 하고 거대한 변화를 그리스도의 예수의 이름으로 가져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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