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맥추감사설교] 감사로 사는 사람 /임신영목사

'코이네' 2014. 7. 3. 18:13

감사로 사는 사람(맥추감사절)
본문  시100:1-5  설교 : 춘천동부교회 /임신영목사

 

 

어느 시골 동네에 가난하고 늙으신 한 집사님이 사셨습니다. 주일 아침에 헌금대신 동태 다섯 마리를 드리려고 머리에 이고 가는 도중에 강도에게 머리를 각목으로 맞고, 가방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믿지 않는 자녀들이 병원으로 달려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서 있는 동안에, 어머니가 당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나님은 자기에게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이 저 지경이 될 때 도대체 뭐하고 계셨던 거야? 동태만 챙기셨나? …… 이번 기회에 어머니를 다시는 교회에 못 나가게 합시다."

모두들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늙으신 어머니는 며칠만에 깨어나셨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신생활하는 자녀들을 그대로 두고 먼저 가지 않게 해 주시고, 전도의 기회를 다시 한번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동태 다섯 마리가 제 대신 각목을 맞아 주었기에 제 머리가 부서지지 않고 이제라도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동태 다섯 마리가 알고 보니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을 감사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자녀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선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8:28). 부귀와 영화, 승진과 행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낙심과 좌절, 불행과 고통으로 보이는 사건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이며, 그것이 소망이며, 그것이 경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0편을 읽어 보면, 이 시를 쓴 시인이 얼마나 감사로 충만한 상태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위대하고 신비한 은혜를 체험하고 보니 무심히,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있는 온 땅과 만물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1절 이하에서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아니, 명령합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가정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특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감사함으로 하라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심정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특별히 온몸을 통하여 시인은 하나님께 특별히 세 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수적인 축복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감사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라고 노래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 천사나 어떤 다른 귀신도 아니며,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변덕이 많고 질투가 심한, 또는 전쟁을 좋아하는 괴이한 신이 아니라 모든 신중에 뛰어나신 왕중의 왕이요, 신중에 신이신 만군의 여호와, 영원히 유일하신 하나님,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 지혜와 권능이 무한하신 그분이 우주만물과 우리, 그리고 나를 지으심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자연만물과 인간을 깊이 관찰해 보면, 그 속에 하나님의 창조 솜씨,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유머,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이 배어 있고, 녹아 있음을 볼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풀 한 포기를 보고도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신앙으로, 그리고 언제나 그분을 친히 뵐 날이 있음을 고백하는 소망으로, 또한 그분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랑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3절 하반부에 보면,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다음에 그대로 방치해 두신 무책임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우주만물을 만들어 놓기만 하고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요한복음 14:18에 보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지탱․보존하시며, 오늘도 일하시며, 우주만물을 섭리하시고 운행하십니다. 죄많은 인간 부모도 자녀를 낳으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자녀를 키우고, 온갖 좋은 것으로 자녀를 양육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더 위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낙심과 좌절과 절망의 눈물을 흘릴 때, 거기까지 오셔서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고통과 불안 속에 헤매일 때 '여호와 샬롬'으로 다가오셔서 내 영혼을 붙드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질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 능력의 손으로 고쳐 주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마치 양 같아서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고, 예견할 수 없으나, 목자되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천리 길을 예비하시고, 맑은 물과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질병, 가난, 죽음, 불행, 죄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 되신 주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하늘 위에 있는 것이든지, 땅에 있는 것이든지, 바다에 있는 것이든지, 천사나 귀신이나, 살아 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놀라운 왕권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기르시고, 인도해 주시니, 우리는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선하심에 감사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죄를 따라 보응하지 않으시며, 길이 참고 용서하시며, 우리의 약점을 친히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서 주님의 선하심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표현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칠 정도의 선하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6에서 나의 평생에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하였습니다. 시편 25:7에서는 내 소시(少時)의 죄와 허물까지도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어느 정도라고 느끼고 계십니까? 시편 34:8에서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본 자라야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감사는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감사는 훈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고도의 영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는 불평과 원망과 시기, 질투와 같은 것들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4:4~5에 보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는 감사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두 가지의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말씀의 빛이 충만할 때 감사라는 열매는 탐스럽고 맛있게 자라며, 익습니다. 기도라는 뿌리를 통해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아야 당도가 높고 영양가 있는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까? 정말로 범사에 감사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며 사십시오. "말씀 없이는 아침을 먹지 않겠다."(No Bible, No Breakfast.)는 각오와 "기도하지 않으면 기적도 없다."(No Pray, No Miracle.)는 믿음으로 무장하시면 감사의 꽃이 피고, 감사의 열매가 맺혀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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