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9:1] 때가 아직 낮이매

'코이네' 2024. 2. 3. 17:38

때가 아직 낮이매

본문 : 9:1-11

 

 

육체의 결함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결함이 무엇이겠습니까

헬렌켈러 여사는 듣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어려움임을 짐작할 수있습니다.

소경 가운데 특히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들에게는 상상의 근원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본 일이 없으므로 상상할 능력이 없습니다.

 

본문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유되는 기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소경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2) 제자들은 그 소경을 불쌍히 여기거나 그를 어떻게 도울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 그가 소경 된 이유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상대방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치유에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이 소경에게 어떻게 삶을 살게 할 것인가가 주님의 관심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불행해진 원인을 규명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람의 불행을 죄와 연관시켜 생각하였습니다. 본인의 죄가 아니면 조상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으리라고 상상했습니다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생각이 부질 없는 것임을 지적하고,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3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셨습니다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이 사람을 소경 되게 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어떤 불행한 상황도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오늘 성결 본문에 있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말씀을 통해서 이 시간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 소경은 티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다는 점에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경은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소경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남들이 자신을 소경이라고 하니까 소경인가 보다 생각할 뿐입니다. 이 소경은 찬란한 태양빛이 비취고 있고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으며, 둥근달이 밤하늘을 은은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고, 물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이 얼마나 신기한지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 뜬 사람들이 알려주는 말로 그런가보다 라고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습니다.

 

사실상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겠거니 하고 살아갈 뿐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소경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런 불행을 깊이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밤처럼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것도 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소경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길에서 만난 이 소경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전혀 무가치하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허송세월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불쌍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이 소경이 소경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어떤 죄값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리니까"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그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시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소경을 볼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저가 소경이 된 것은 분명히 어떤 죄값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저 소경은 죄인으로써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소경을 볼 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소경이 태어나는 것은 결코 어떤 죄 값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소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영적으로 볼때 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 19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멀리보지 못하고, 이 세상만 보는 근시안에 빠져 살아갑니다. 이 세상 문제만 바라보고 풀어보려 하니까 잘 풀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은 어느날 어떤 문제 때문에 몹시 답답하고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까 염려하던 중 어느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답니다. 마침 그 가정에 들어가니까 외양간에 소가 한 마리 서 있더랍니다. 그 소는 고개를 들어 외양간 담위를 멀리 넘겨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이 그집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 소는 저렇게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러자 순박한 그집 주인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마 저 소가 담을 통해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가 보죠" 그 말을 들은 스펀젼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 담때문에 보이지 않으면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되는 것이구나" 나는 지금 눈 앞에 가로막힌 문제의 담만보고 답답해 하고 괴로워했구나, 문제의 담이 가로 놓였을 때는 고개를 들자! 고개를 들어 좀더 위를 보자 그리고 멀리보자!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은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만을 보는 눈은 영적 근시안입니다. 우리는 저 세상까지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요한복음 939절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바리새인 가운데 한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우리도 소경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소경이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자신이 소경인데 소경인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소경인 줄 알아야 눈을 뜨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일어납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가운데 아직도 이 세상만 보고 저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밝히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때가 낮일 때 일을 할 수 있고 밤이 되면 그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낮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땅에 사는 동안이나 낮이며, 죽으면 밤이 되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날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은 소경이었기에 낮에 살면서도 밤처럼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저 길가에 구걸이나 해서 겨우 생명만을 연장해 갔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소경은 하나님의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보여야 일을 합니다. 돈이 눈에 보이니까 그 돈을 벌어 보려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명예가 보이니까 그것을 얻어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이 보이니까 그것을 잡아보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신의 눈은 밝아서 이 세상의 물질과 권세와 명예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영적인 어두우면 하나님의 일에 가치를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귀중하다고 생각되었던 세상 모든 것들이 마치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이세상 것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바라보니까 그에 비해서 이 세상 것들이 별것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의 눈이 띄어져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세계를 보게되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좋아보이던 것들이 별것 아닌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떠진 사람은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재능을 바칩니다. 심지어 자신의 육신의 생명까지도 바칩니다. 교회에서 맞겨진 자신의 직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압니다.

디모데전서 313절에 보면 교회의 직분중에 하나인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영의 눈이 뜨여져서 천국을 바라본 사람은 자신이 직분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같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시켜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직분까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서 받는 직분도 영광이 있는데 하나님 나라 직분은 더욱 그 영광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물질이 제공됩니다. 명예가 주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이 보상은 인간의 머리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보상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의로운 명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각나라 선수들이 지금 열심히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금메달 때문입니다. 금메달을 하나 얻기 위해 선수들은 밤낮없이 훈련을 합니다. 시상대에 올라가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올라 가면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볼 수 있습니다. 그 감격을 맛본 사람만 알 것입니다. 우리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을 때하나님나라 시상대에 올라 면류관을 받는 감격스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밤이오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십니다.『실로암󰡒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실로암 못은 기혼 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기혼은 예루살렘 바깥에 있는 샘입니다. 기혼 샘의 물이 바위를 깎아 만든 수로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실로암 못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그러니까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샘물이 󰡒보냄을 받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실로암이라는 이름이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유래되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실로암 못으로 소경을 보내면서 그 뜻이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요한복음 12, 18절 말씀을 보십시오.󰡒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예수께서 자신이 아버지께로서 보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본래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의 빛이 되기 위하여 창조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한 마디로 말해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동시에 구세주가 되기 위해 󰡒보냄을 받은󰡓 분입니다실로암 못은 바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 소경에게 있어서 가장 급한 일은 먼저 눈을 뜨는 일이었습니다. 눈만 뜨면 그의 신세가 달라집니다. 우선 거지의 신세를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소경을 고쳐 주시는 방법이 아주 특이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눈을 뜨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말씀하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절망에다 절망을 덧붙여준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실로암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해서는 절망을 통해서 영의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고통과 환란과 시련같은 절망스런 것들이 나에게 닥쳐왔을 때 영의 눈이 열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건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나라가 병상에 누워 사경을 헤멜 때 보입니다. 사업이 잘될 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세계가 사업이 어려움을 당할 때 눈에 보여집니다. 햇빛이 밝게 빛나는 낮에는 하늘에 펴 있는 별들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암흑의 환경 속에서 진리의 별빛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소경된 이 사람은 가뜩이나 어두운 눈위에 진흙을 이겨 발랐기 때문에 더욱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으로갔습니다. 못에 가서 씻었습니다. 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기에 눈뜨는 배경이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절망 속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그 눈이 떠져서 밝히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낮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아무쪼록 주어진 시간을 주의 일을 위해 값있게 사용하실 수 있기를바랍니다. 도둑맞는 시간, 누수되는 시간, 짜투리 시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간을 잘 활용하셔서 더욱 주님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면류관을 받게 되는 감격의 날을 맞이하게 되실 것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귀한 것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건강으로, 물질로, 명예로 보상해 주십니다. 이땅에서 영혼이 잘되셔서 만사가 잘되시고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