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골로새서

[골 1:12] 하나님의 나라

'코이네' 2023. 5. 6. 14:59

하나님의 나라 

 

골로새서1:12-14

 

 

 

 

우리는 이제 한걸음씩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인도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만물의 창조주며, 교회의 머리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현신(現身)이며, 모든 창조물의 왕이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임금이십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를 곧장 소개해 줍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왕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왕국(하나님의 나라)과 그 신복들에 대해서 장엄하게 서술합니다. 이 말들은 골로새의 이단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골로새 이단들의 표현들은 본 서신을 읽어 내려가면 여기 저기에서 포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서술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 사상을 전한다고 생각했던 분들의 그 어떤 글들 보다도 비교가 안될 만큼 차원이 높습니다. 그런 교인들의 기독교관은 사실상 극히 제한적이었고 명목상의 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건한 종교 용어나 거룩한 듯한 몸짓이나 독단적인 교리에 대한 고집이나 특정된 의식의 준수나 혹은 자기 만족적인 종파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그에게서는 이런 류의 인상을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웅장감과 무한한 확충감으로가득차 있습니다! 바울의 사상은 얼마나 넓고 광대한 것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유산을 감사하는 찬양을 주께 드리자고 그의 독자들을 초대합니다(1:3).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유혹되기 쉬운 온갖 추상적인 철학적 이론들과 율법적인 관습들을 제쳐놓고 그들이 상속으로 받게 될 무한한 왕국과 그 왕의 영광을 응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우리들을 인도하는 곳은 자질구레한 󰡔종교적󰡕잡동사니의 계곡들이 아니고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직면하고 경이와 감사의 환성을 지를 수 있는 신앙의 정상입니다.

 

상속자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1:12)

구원이란 단순히 죄에서 해방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영원하고 무한한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손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죄의 용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원들을 우리 앞에 펼쳐 줍니다. 복음은 물론 용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감추어진 보물과, 큰 가치가 있는 진주와(13:44-46), 왕이 베플어 주는 향연과(22:2-14), 결혼잔치에 대해서도(2:19)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이 유산의 충만한 분량은 우리들을 위해 하늘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세에서 이 유산의 상속자는 때때로 궁핍해서 고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받을 상속의 권리는 유언자의 피로써 날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상속은 희미한 희망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부터 상속자로서의 모든 권리와 특권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책무를 지닌 당당한 아들입니다.

그는 과연 아들입니다! 우리 주에 누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공로로,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의 영향력으로, 또는 자기의 금력으로 아들이 된 자가 있습니까? 직분을 금력으로 살 수는 있으나 아들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자기 임의로 세계 최대 백만장자의 상속자라고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상속자는 유언자의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12-13)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2::8).

한 마디로 우리드들은 하나님께 속한 이 신령한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또한 그같은 상속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줄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산은 때로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해도 될 수 있습니다. 악덕과 죄와 어둠을 더 좋아하면서 자신이 거룩과 순결과 빛의 왕국에 속한 상속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에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너무도 불편해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천국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유산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많은 젊은이들이 경건의 모양을 억지로 내느라고 얼마나 힘들어 합니까? 부모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일이 자식들에게는 귀찮은 의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당신의 아들 딸로 삼으시고, 우리 속에 새로운 성향과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자세를 갖게 하는 새 본성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들로서 함께 즐겁게 교제할 수 있는 빛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란 늘 다랄붙는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옳고, 선하고, 참되고, 순수한 것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 속에 심어주신 새 본성은 이러한 것들 속에서 피어납니다. 새 본성은 빛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본성을 지닌 성도의 일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로 하여금 빛의 나라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누게 될 유산을 받기에 이미 합당한 자들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일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재산들을 완전히 상속받게 될 마지막 날이 점점 가까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상속이 지닌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는 장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날마다 훈련시키고 그의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왕족으로서 받게 될 특권들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우리들은 먼 장래에 완취될 상속의 측면만 바라보고 현재의 영광스런 분깃의 현실에는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해방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3). 이것은 현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다른 차원의 세게와 사회 속에 있습니다. 어둠은 빛에 밀려났고, 폭정은 사랑에 굴복하였습니다. 한때 노예들이었던 우리들은 이제 왕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우리 모습과 미래의 우리 모습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덧없는 현 세상이 지나가고 영원한 사물들이 드러나게 될 때에 우리들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뤼들이 하나님 앞에서 과거에 비쳤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아마 더 큰 간격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메꾸어진 이 간격으 넓이를 잘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또 불신 세계는 우리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우리 자신들 보다는 훨씬 적게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언젠가 우리들은 영원의 전망대에서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건너간 이 놀라운 전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닌 영광을 새로운 의미로 찬미케 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우리들은 과거에는 종들이었고 어둠에 속해 있었습니다. 어둠은 하나님과 떨어진 상태이며.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생명과 기쁨, 고난과 투쟁 그리고 죽음까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철저한 공허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노예들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우리들은 이 어둠과 죄으 폭군이 부리는 횡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이 전무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항 할 수 없는 세력이 우리들을 이 공허의 나락 속으로 계속해서 이끌고 갔습니다. 우리들이 위신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우리들을 얽어맨 밧줄들은 더욱 더 조여들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빛이 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죄의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마음 속에 어둠이 팔려있지 않았으며 죄가 그를 노예로 붙잡지도 못하였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거룩이 죄를 정복하고, 생명이 죽음을 딛고 일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그의 빛 속으로 데리고 가시려고 우리들을 대신하여 이 싸움을 이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무자비한 죄의 폭군으로부터 해방시켜 그이 나라로 옮겨 주시고 우리들을 왕족의 신분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노예로 있는 것과 왕가에 소속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아처럼 어둠의 세력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 사이도 천양지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왕국이며 자유와 기쁨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어둠의 나라는 종살이와 무기력과 반발로 가득 찬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그의 나라로 이미 데리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어둠의 세력과 싸워 이기신 후, 하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히우심으로써 그의 나라를 다스리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아직은 이 나라가 완전한 영광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때때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둠의 세력에 눌려있는 듯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는 너희 안에’(17:20,21) 있습니다. 하나님으 나라는 비록 숨기워져 있지만 자라고 있으며 아무도 그 성장을 막지 못합니다. 조만간 이 세상의 권력들과 왕국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 앞에 무릎을 끓고 말 것입니다. 왕이 곧 나타나시고 그의 왕국이 모든 능력들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사죄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4).

우리들은 스스로 의롭다거나 혹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우리들을 위한 구원 사역을 해주시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자력으로 어둠의 세력에서 도무지 벗어 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획특할 방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들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 결과 노예로 있던 우리들이 해방되었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된 것입니다. ‘구속이란 노예를 풀어주기 위해서 되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해 우리들의 어께를 짓누르던 죄의 빚도 탕감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어떤 선행이나 친절한 마음씨나 희생으로 이 켜져가는 빚을 도저히 깊을 수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차변의 빚이 항상 이월되어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빚은 장부에서 영원히 지워졌습니다. 그 대신 훌륭한 생명의 책 속에 왕중의 왕이 가지신 무한대의 재산이 우리들의 것으로 기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으로 뜨거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