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룻기

[룻 1:19] 고통에서 자유로

'코이네' 2023. 5. 3. 14:59

고통에서 자유로

(1:19-22)

 

 

 

우리는 고통을 받을 때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 도와주기를 기대해 니다. 그 고통이 자신의 잘못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결코 사랑이라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편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할 때 보통은 다 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괜찮아 그럴 수 있는 것이지”, 아니면 이럴 때 일수록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 거야”, 그리고 때로는 너의 죄로인한 고통이니까 방법이 없어, 회개하는 방법밖에는하고 말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돕는 방법은 너무도 막연하고 너무도 주관적입니다. 서로를 돕고 싶으나 돕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돕고자 했던 의도가 더 큰 아픔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기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고통에서 치유받는 경험을 가져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통의 문제에서 자유를 경험하는 명쾌한 답을 가진 한 여인의 인생을 성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오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여인의 인생이 어떻게 고백되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고백에서 어떻게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지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자신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1:20)

나오미는 여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가진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리고 모압에서 남편을 잃고 이어 차례로 아들들 마저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두 며느리와 살게 된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이 이제 흉년으로부터 풀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앙적인 배경과 같은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형제들로부터 세상적인 풍요가 보이는 모압으로 갔던 자신의 행동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린 과의 대화를 보게 됩니다. 이제 룻과 더불어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과거의 신앙의 동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나오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마라는 우리말로 고통,슬픔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오미가 스스로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수치로부터 도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자신의 수치를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성경 뒷부분에서 나오미와 룻의 행복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과 회복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수치와 죄를 드러나게 하는 아픔을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아픔과 그 고통의 이유를 미화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2. 고난의 출처를 신앙에서 발견해야 한다(1:20)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나오미는 자신의 문제를 신앙인답게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도 어떤 환경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의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선택으로 인한 결과였다고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적인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장면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의 출처를 나오미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징계라고 말하는데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징계인지 아니면 극복해야 할 사단의 공격인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라고 고통의 출처가 자신의 죄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결코 쉽지않은 고백이며 깨달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하나님께 분명히 죄를 범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오미와 같은 고통에 처한 형제나 자매를 만난다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여러분이 나오미와 같은 깨달음을 가졌을 때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3.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선택(1:22)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는데는 우리의 고백과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신앙의 상식을 나오미의 인생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나오미의 선택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새로운 결단은 아마도 모압을 향해 떠날 때 보다도 더욱 어려운 결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유다 베들레헴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지 뉘우쳤다는 고백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발견되며 경험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은 바로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앞에 범죄하였을 때를 기억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상태! 바로 이 선택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풍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와는 무관한 풍요를 향해 과감하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당혹스러운 고통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아픔의 순간이 오게 된다면 나오미의 인생과 그녀의 결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풍성함에 거하는 자신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물론 나오미는 그 모든 풍요를 넉넉하게 누리지는 못합니다. 어려운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나오미는 추수의 풍요를 소유할 자격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주위의 관심과 도움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녀는 이제 생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을 나누어야 된다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나누기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개인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며 확인인 것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의 변화는 룻기를 읽어보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회개와 결단을 하나님은 이제 간섭의 이유로 보여 주십니다. 그녀의 고통만큼이나 하나님은 그녀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계보에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제 자녀들이 잘못을 범하고 깨닫지 못할 때 회초리로 그 작은 종아리를 사정없이 내려 칩니다. 아이들의 울음만큼 마음의 아픔을 삼키면서 그 작고 여린 종아리를 쳤을 때 아이들은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사랑하기에 때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이들은 모르고 때린 아버지에 대한 서러움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이제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우리의 깨달음과 성숙한 사랑을 위해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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