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욥기

[욥 42:10] 곤경을 돌이키시고

'코이네' 2023. 5. 3. 11:40

곤경을 돌이키시고

본문 : 욥 42:10-17

 

 

욥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부분은 욥이 당한 참상에 관한 것입니다.어느날 갑자기 집이 무너져 10남매가 죽고 소와 양떼들은 약탈당했습니다.아내는 가출했고 자신은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둘째 부분은 친구들의 위문에 관한 것입니다.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욥의 소식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그러나 그 친구들은 욥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이유는 욥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인과응보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까닭없이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겠느냐,잘못한 것 없이 이런 실패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욥에게 충고했고 회개할 것을 강권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잠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처를 건드려선 안됩니다.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자신의 의를 과시하는 기회로 삼아선 안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위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말해야 합니다.

생각없이 불쑥불쑥 말해선 안됩니다.

 

셋째 부분은 원상회복에 관한 것입니다.

주로 오늘 욥기의 셋째 부분에 해당되는 원상회복과 받은 축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어떻게 원상에 회복되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를 본문 속에서 찾겠습니다.

 

1.욥을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욥기 42:9 끝을 보면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기쁘게 받으셨더라는 것은 제사 용어입니다.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신 것처럼 욥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경우를 보면 제아무리 장엄하고 값비싼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드리느냐 입니다.같은 제물이라도 드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제사를 받으시기도 했고,거절하기도 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경가 베이커는 하나님은 먼저 그 사람을 받으신 후에 그 사람의 기도나 봉사를 받으신다고 했습니다.베이커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은 욥을 받으신 것입니다.

욥기 42:8을 보면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욥을 받으셨을까요.

첫째 그의 회개 때문입니다.42:1 이하를 보면 그동안 자신이 어리석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웠던 일들을 회개하고 있습니다.그리고 6절을 보면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은 용납하십니다.

비록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납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정당성 때문입니다.

42:7을 보면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했고 8절 끝에서도 너희가 나를 가리켜 한 말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욥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친구들과 욥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은 욥이 밀리는 쪽이었습니다.친구들의 충고는 옳았고 정당했습니다.그리고 신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은 그 반대였습니다.욥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3을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 하는 최후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잘 믿느냐 못 믿느냐 하는 것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나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42:7 끝을 보면 내 종 욥이라고 했고 42:8 첫머리와 끝에서도 역시 두번씩이나 내 종 욥이라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며 주인을 위해 일하는 존재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충성된 종은 주인의 칭찬과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욥은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그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우리 모두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벗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라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한 곤경을 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자기 벗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욥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습니다.다시말하면 남을 위해 기도했더니 내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욥이 드렸던 기도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미루어 짐작컨데 친구들의 공격에 대한 서운한 감정과 적개심을 먼저 풀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의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은 먼저 욥에게 임했습니다.

지난 913일 워싱턴에서 있은 이스라엘과 PLO간의 평화협정은 그동안 피로 얼룩졌던 두 나라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한 역사적 사건으로 전세계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위크지의 해설에 의하면 이 협정이야 말로 전문(前文)에 불과하며 해결해야 될 난제는 산적해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자기네가 안고 있는 정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PLOPLO대로 더 이상 전쟁이나 긴장관계를 유지하거나 지탱해 나갈 수 없는 정치 경제 국제적인 이유 때문에 협상에 조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다시 문제가 폭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더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 정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렇더라도 이제 저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도 없고 군비 중강에 열을 올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서로 복을 받은 셈입니다.

욥과 친구들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 중재에 나섰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찾아가서 할 일도 하나님이 지시해 주셨고 욥이 취할 태도 역시 하나님이 지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과 PLO의 중재자는 주로 미국이었습니다만 욥과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이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 사이를 중재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서로 사랑하라,서로 용서하라.

 

3.결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고통의 세월이 끝났습니다.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다고 했습니다.

주경가 베이커는 사탄에 의해 시작된 욥의 곤경은 하나님의 자비로 끝났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곤경은 크게 두가지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욥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친구들과의 원한을 풀고 바른 관계를 맺었을 때 곤경이 해결 되었습니다.

 

둘째 소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절 끝을 보면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잃었던 아들 딸 10남매도 다시 낳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섭섭한 일입니다.그러나 다시 찾은 기쁨은 비길 수 없이 기쁜 일입니다.

몇년전 이스라엘에 가면서 갈아 입기 위해 헌 바지 하나를 가지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집에 돌아와 보니 바지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서둘러 짐을 싸면서 바지를 떨어 뜨리고 온 것입니다.이스라엘에 있는 사람을 시켜 바지를 찾아 보라고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바지를 생각하면 허전하고 속이 편칠 않습니다.누가 가져갔을까? 더운 나라니까 싹뚝 잘라서 반바지나 만들지 않았을까 더 짧게 짤라 팬티로 입고 다니지는 않을까? 아니면 구겨서 걸레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소유는 귀한 것입니다.더우기 잃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찾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입니다.욥은 갑절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고통을 인내하고 견뎌낸 신앙의 장부에게 주신 큰 축복이었습니다.

셋째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욥을 저주하며 자살을 강요했던 그의 아내도 그리고 잃었던 10남매도 다시 찾았습니다.그리고 그의 형제 자매 친구들이 한아름씩 선물을 꾸려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욥의 집에선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그리고 그동안 겪었던 욥의 고통을 서로 위로하는 정겨운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교회 공동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그리고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감정을 풀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피셔의 말이 생각납니다.“남의 흉을 볼 경우 흉을 보는 사람의 가치가 더 떨어진다.어떤 사람을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때는 자신이 놀림을 당할 경우를 생각하라.남에게 바라는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났다고 가정합시다.왜 떠났는가 못된 놈이라고 역정을 내기 전에 왜 떠나게 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찾게 됩니다.

 

첫째는 그 사건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욥의 문제는 고통,실패,좌절,친구의 공격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욥 자신이 문제였습니다.다시 말하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이며 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나를 찾았을 때 문제가 풀렸습니다.

 

둘째는 그 문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욥의 문제는 욥기 42장에서 언급된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을 올바로 고백하면서부터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어떤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면 그 문제를 풀게 될 나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그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즉 신앙이 바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받으시도록 합당하게 섰을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특이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문제이며 내 믿음이 문제이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곤경을 돌이키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여 나의 곤경을 돌이켜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