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로마서

[롬8:38] 하나님의 사랑 _ 김기홍 목사

'코이네' 2022. 1. 11. 20:59

하나님의 사랑

본문 : 로마서 8:38-39

설교 : 김기홍 목사

 

 

친구 목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분은 장로님으로 오랜 동안 교회를 섬겨온 분이었다. 그러나 운명하기 몇 시간 전부터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하는 이야기는 별로 신앙적인 이야기도 없었다. 신자 아니 장로로서의 위엄은 모두 사라지고 죽어가는 보통 인간의 동물적인 모습을 보면서 목사는 평소 맛보지 못한 두려움의 실체를 만나고 있었다. 무서운 고통을 통해서 부친은 그에게 두 가지를 강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간장을 긁어내는 비명 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나왔다. 그것은 인간의 죄와 그 댓가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부분적으로나마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은 경련하며 비틀어지며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을 주었다.다음으로 그는 아버지의 이 마지막 고통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아버지를 구원하셨는지 아니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기나 하는지 의심했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30분을 평화로이 잠자는 모습으로 있다가 운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신자에게도 고통을 주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원망은 가라앉고 자신의 신앙과 사랑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그는 성경을 펴서 위로를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평생 들고 읽던 성경이었다. 마치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이 바울의 깨달음이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 끊을 수 없다." 그는 위로를 찾고 있었다.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한다. 어떤 때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멋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않되면 하나님은 도대체 내게 왜 그러냐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 열성을 접어두고 교회 출석을 그만 두기도 한다. 기도하고도 내가 원하는대로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예 집어치우고 싶어진다. 이것이 과연 사랑인가?인간사는 모두 이런 수준이다. 좋아했다 미워했다 언제나 변덕이다. 인간 관계도 그러하다. 조금만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얼굴이 달라진다. 죽기 살기로 사랑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별안간 원수로 변한다.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내가 생각한 결혼 상대자의 조건은 언제나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했다 미워했다 줄다리기를 하는 상대를 신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 목사는 이 점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은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하며 과연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나 있는지 불평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우수운 일이었다. 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했지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다르거나 기도가 조금만 늦게 응답되어도 불신자처럼 원망하는 자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가?

아무리 인간이 의심하고 불평하고 모욕하고 저주까지 한다고 해도 우리의 대한 사랑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이란 단서가 없다. 또한 어떤 존재가 방해를 하거나 이간을 시킨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이나 천사나 마귀라도 이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 정말로 변함 없이 동일한 사랑이다.

그렇다고 인간처럼 말로만 사랑하고 아무런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것인가? 또는 단지 정신적인 것에 그치는 사랑인가? 아니면 모두 죽은 뒤에나 해결되고 천국에 가는 의미의 사랑인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이런 것으로는 고통스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런 수준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말뿐인 하나님의 사랑이 곤경에 빠져있는 인간에게 무엇을 준단 말인가?아니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이다. 그리고 너무도 확실한 것이다. 성경 전체가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즉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셨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장차 어떻게 해 주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이 한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고통에 빠진 우리에게 무엇을 실제로 주는지 말하는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시의 이야기다. 전쟁에 나갈 청년들을 제비를 뽑아서 결정했다. 청년들은 모두 모병관 앞에서 제비를 뽑았다. 여러 사람이 뽑히면서 한 청년도 뽑혔다. 그에게는 딸린 식구가 많았다. 늙은 부모도 있었고 처자도 있었다. 그리고 어린 형제들도 있었다. 모두가 그에게 얹혀서 사는데 그의 출정은 곧 그 날부터 굶게 됨을 의미하였다. 청년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다음 날 청년들은 모병관 앞에 모였다. 모두 다 가족을 이별하고 있었다. 그 청년을 보내는 부모형제 처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다. 그 때 다른 잘 생긴 청년이 모병관에게 부탁했다. "제가 대신 가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모도 안계시고 결혼도 안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모두들 놀랐다. 이 경건한 모습의 새로운 청년은 한사코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였다.감동한 모병관은 둘을 바꾸어서 보냈다. 남는 사람은 자기의 목걸이를 그리고 떠나는 사람은 자기의 회중시계를 기념으로 주었다.

그 날부터 남은 청년은 자기를 대신해서 출병한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날마다 마을 공회당에 나가서 전사자의 명단을 보았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무서운 전투가 있었다. 거기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피아간에 거의 대부분이 죽어야 했다.결국 대신 나간 젊은이의 이름도 전사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남은 이는 그의 시계를 꺼내들고 울었다. "친구야 너는 나를 위해 대신 죽었구나." 그는 자신이 죽고 이제 친구의 몫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심을 다짐한다. "네 삶을 살아주마." 그는 이제 그 경건했던 친구처럼 자신의 삶을 살았다. 새생명을 확인하며 시계를 만지며 친구를 가까이서 느끼고 있었다.기쁜 때나 슬픈 때나 그는 시계를 꺼내 놓고 친구와 말했다. 사랑하는 친구는 언제나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기도하며 너의 복을 빌어주마. 친구야 힘을 내어라." 정말로 시계는 그에게 말할 수 없는 힘을 공급하였다. 언제나 친구의 후광은 그와 함께 있었음을 너무도 확실하게 느끼고 살아나갔던 것이다

말년에 그는 어느 대학의 총장으로 변해 있었다.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의 모형을 본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당할 일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영원한 저주였다. 마치 앞의 목사가 두려워했던 그 고통의 영원한 연속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대신 짊어졌다. 그 지옥 넘어로 대신 가준 것이다.뿐만 아니다. 그의 실체는 언제나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영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속의 그리스도를 확인하며 산다. 마치 사랑하는 친구의 선물을 만지며 그를 가까이서 느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어루만지며 실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영이요 그의 보이지 않는 실체이다.만약 이러한 점이 우리에게 분명하지 않다면 너무도 쉽게 우리는 넘어질 것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그가 우리 속에 영으로 너무도 실제적으로 확실하게 계심을 모른다면 신자로서 무슨 힘을 쓰겠는가!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소망 사항이 있어서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 앞에서 기도를 할 때마다 속히 소원한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에도 기도하면 반드시 시행하리라고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부모는 우리를 사랑해서 좋은 것을 준다. 그러나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의 증거는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준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준다. 좋은 것을 주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함을 안다고 생각하면 정 반대로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 먼저이고 좋은 것은 그 후에 나타난다.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자신의 사랑이다. 이것은 그로부터 나오는 물건보다도 더 중요한 감정이다. 즉 자녀가 필요한 것을 요청할 때 부모로서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자신을 쏟아주신다.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선물을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주시되 자신의 전체를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아는 이는 그와 함께 다른 것들도 당연히 따라오는 것도 안다. 기도의 응답은 셋 중 하나이다. 예스, , 그리고 기다려라. 여기서 ""까지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주시고 그 뒤에 함께 따라오는 최상의 것으로 그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국 요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그러므로 신자가 할 일은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느끼고 누릴줄 알아야 한다. 가장 좋은 선물인 하나님 자신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기쁠줄도 알아야 한다. 그는 계속 살아서 움직이며 내 삶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가 주시는 ""까지도 외로움과 아픔까지도 모두다 감사하며 받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 자체도 기쁨이 되고 평안이 된다. 놀이터나 백화점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엄마 잃은 아이는 울며 정신없이 헤맨다. 아무리 위로를 주고 좋은 장난감을 주어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즉시 울음은 그치고 만다. 과자나 아름다운 환경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가?잃어버린 하나님이 자신 속에 있음을 깨닫는 즉시 울음을 그칠 수는 없는가? 아이들에게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원하는 것들이 아직 내게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먼저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생명이 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이들이 부모를 즐기듯 하나님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아직 내가 요구하는 것이 내게 없어도 그 모든 것을 알맞는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을 즉 그 하나님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인가? 자녀에게는 부모가 옆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연인들에게는 애인이 옆에 있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계속적으로 영원한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변함없는 사랑을 줄 수 없다.하나님의 사랑을 변함 없이 받고 있다는 깨달음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행복과 능력의 출발점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와서 아무도 자기를 원하지 않고 다 떠나 버렸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자기에게는 좋은 일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가족도 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고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내 뱉는다.그때 만약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목사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신자로서 자기가 하나님을 별로 사랑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같은 인간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하나님은 내 행동을 보고 사랑하지 않고 참되게 사랑하시되 자기의 모든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상황은 달라진다.

 

그렇다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요 실제적인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다.

기쁨과 평안은 절대로 외부에서 오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런 기쁨은 잠간이다. 하나님속에만 영원한 기쁨과 평안이 있고 그 하나님은 믿는 사람 속에 있다.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삶,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지하였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풍습상 막내에게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속에 왕을 받았다. 왕의 기쁨과 힘과 능력을 받았다. 하나님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으로 노래하였고 기뻐하였다. 그는 왕이었고 하나님이었다.그의 평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한 찬양으로 표현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변함 없이 하나님처럼 자녀에게 주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처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