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로마서

[롬15:19] 내가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하였노라

'코이네' 2021. 11. 10. 21:36

 

내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9-21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의 입을 통하여서 놀라운 말을 한마디 듣게 됩니다.

잘못 들으면 부풀려서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쉽습니다.

19절을 보면 이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

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이 편만하게 전하였다는 말은 가득채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해서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자기 혼자서 복음을 가득하게 전

했다는 말인가? 약간 과장해서 한말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귀절입니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어느 분이 내가 당선되면 아파트 값을 반값에 공급하겠다는 말

을 해서 논란이 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오죽하면 했을까! 하고 웃

어 넘기고 맙니다. 과장된 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될 일이지만 해보겠다는 의지로 받아 들이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마다 어떤 개인의 생각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는 바울이라는 사람을 철저히 간섭하시고,

통제하시고,은혜 주셔서 단어 하나도 제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면서 기록했다고

우리가 믿는데 그렇게 해서 쓰인 성경이라고 하면,아무리 우리 귀에 과장된 말처럼

들려도 그것이 과장이거나 거짓일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거리로 따지면 1,400마일입니다.그러니까 KM로

따져서 2,000KM가 넘습니다. 그 지역이 얼마나 넓은 곳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지금

의 예루살렘에서 유고슬로바키아까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

람이 없도록,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한곳도 없도록, 가득히 채웠다는 말이니까

과장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대한 사도의 높은 업적을 치하하고,그의 노고를 찬양

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어느정도 사실인가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이 점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선교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예루

살렘에서부터 복음을 가득히 채웠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출발한 곳은 안디옥이라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2:19-22 의 말씀이 여기에 대한 해답이 될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났던 그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아 너는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라 네가 여기서 나의 복음을 전해도 여기의 사람들은 네말을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재차 말씀 하셨습니다. 바울아 떠나라 내가 너를 멀리 이

방사람에게로 보내리라.

바울이 환상 중에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바울

이 애초에 예루살렘에서 전도를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시도를 했을 것

입니다. 주변의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강력히 말

렸습니다. <네가 여기서 전도해 보아야 열매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떠나라.

네가 전도할 곳은 이방사람이다.>이렇게 주님이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을 가득히 채웠다고 말할수 있는 근거

가 있어요.

바울이 사실 복음을 위해서 나선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부터였다고 말할수 있고,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려고 시도했던 것을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일루리곤에 가서 복음을 전한 일이 있느냐? 하는 문젭니다.

지금의 알바니아와 유고슬로바키아 지역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 지역에 가서 바울이 선교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지금의 그

리스의 아덴이나,고린도 같은데 가서 복음을 전했지,그 북쪽에 있는 일루리곤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가득히 채

웠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바울의 선교전략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뭐 나가서 전한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선교전략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다.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

겠다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전략인데...., 바울이 늘 가지

고 있었던 선교전략은 군사용어로 말하면 고지를 점령하는 전략이었습니다.

고지라고 말할수 있는 중요한 도시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도시들은 생활의

중심이요, 정치의 중심이요, 경제의 중심이요,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도

로망을 보아도 항상 그 지역이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시에가서 복

음을 전하면 자연적으로 복음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

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되 중요한 도시마다 건너 뛰면서 전하겠다.

이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에 있는 그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면 중요한 도시마

다 복음을 가지고 공략합니다. 안디옥이 그랬고,고린도가 그랬고,빌립보가 그랬고,

아덴이 그랬고, 나중에는 로마가 그랬습니다.

 

그러면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어떻게 그 곳을 복음으로 가득히 채우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느냐? 그것은 간단합니다. 바울이 어느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믿

는 사람이 여러명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곳에서

얼마동안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양육합니다. 또 그 중에서 은혜를 받고 지도자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을 세워서 교회의 장로로 임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훌훌 떠

나서는 주변에 있는 큰 도시로 갑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 도시 주변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바울

로 부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훈련 받은 성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주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살전 1:8절을 보면 주의 말씀이 너

희에게로 부터 퍼져서 마게도니아 지방까지, 아가야 지방까지(요사이로 말하면 경기

도, 강원도 처럼 지방을 말합니다.)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더 할 말이 없다.그랬습니다.

바울로 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느냐? 아닙

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지 못한 각지방으로 사방에 장사하면서 퍼지고, 일거리

를 가지고 퍼지고, 사람 만나러 가면서 퍼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

다. 데살로니가 주변의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로부터 복음을 들었단 말입니다.

빌립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고

린도 교회의 주변의 사람들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온 지방이 복음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바울이 온 동네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사람 한사람을 붙들고 복

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나간 지역은 그를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마치 누룩이 밀반죽에 퍼지듯이 복음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입

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말해서 바울이 지나간 지역은 온통 복음이 가득찬 것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23절 한번 보세요.놀라운 말을 합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 고 합니다. 기가막힌 말 아닙니까?

바울이 나중에 로마에 가서 순교를 합니다. 그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

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복음을 더 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복음으로 가득찼습

니다.

바울이 살아 있을 때만 아니라,그가 살아 있을 때만 아니라, 그가 떠난 다음에 복

음이 더욱 힘있게 전파되어서 로마 제국전부가 예수그리도의 복음으로 가득찬 것처

럼 되어 버렸습니다.

터틀리안과 같은 교부는 로마 황제와 지도자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제 보라. 너희들이 제사하는 신전을 빼놓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는가 한번보라.예수의 이름이 증거 되지 아니한 곳이 있는가 보라.

그 만큼 사도바울 한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소아시아와, 그리스,이탈리아반도 전

역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에 바울의 말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요, 잘 못된 것이 아니

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이 더 좋아 하시는 방법

은 자기 마음에 꼭드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 하나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이

었지만 로마제국을 뒤집어 엎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나 하나쯤은 -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쯤은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은 한 사

람을 너무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이처럼 바울의 말이 과장도 아니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했다면 이제 우리

가 바울 앞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고, 도전을 받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야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고, 바울이야 하나님께서 남다른 은혜를 주셨

으니까 그럴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뭐 나같은 사람이야, 뭐 선교사냐? 전도사냐?하고

여러분이 마음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이유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바울과 우리는 다른 점도 있습니다.

바울은 사돕니다. 온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될 막중한 의무를 가진 사도

였습니다. 그는 심는자였지, 물을 주는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제일 먼저 복음

이 전파되지 않은 곳을 찾아 다니면서 제일 먼저 복음을 선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0절을 보세요 {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

기로 힘썼노니} 그러니까 누가 전하든간에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더 이상 일할 생각

을 안했습니다.

그는 사돕니다.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될 큰 사명을 진 사람들이 사돕

니다.

그러므로 바울하고 우리는 달라요, 우리는 사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를 복음

을 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어떻게 기록된 성경 말씀

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알았고,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도 알았고, 주님의 부활이 나에게 새생명을 주는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고,

사도 바울이 전해준 이 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영원토록 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도 우리를 흔들수 없

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도 나를 정죄 할수 없고,나중에는 그리스

도와 함께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해준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자 가만

히 있지 않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 처럼,

우리에게도 똑 같은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으니까 이제

우리 입으로 이 복음을 우리 주변에 다니면서 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수만해도 6만이고, 공식적으로 교회에 등록한 수만해도 1200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예수의 이름을 들을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알아 두십시요. 아직도 7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들어도 믿지 않고 거부하고, 그들의 가슴에 복음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가슴에 복음이 가득하게 하고, 이 땅에 복음이 편만하게 퍼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바울에게 있느냐? 아닙니다. 그를 통해서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예수를 아직 모르는 분이 있습니까? 그 분의 가슴에 예수 그리

스도로 가득차게 하는 책임! 먼저 믿은 가족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직장도 마찬가집니다. 산돌교회가 위치하고 이 지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

득차게 해야할 책임! 우리에게 있습니다.

청주의 유흥가를 보십시요, 거리에 넘쳐 흐르는 사람들의 물결, 차량들의 물결을

보십시요. 교회들이 많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음이 들려질

것처럼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혀 들리지 않는 공동

묘지와 같은 곳이 도시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예수의 이름이 없습니다.

새생명의 기쁜 소식을 그들은 듣지 못합니다.

누가 전할 것입니까?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산돌교회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가득히 전할수

있었는가?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가?

본문에서는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요 이 일로 인하여 - 이것은 18절을 요약해서 19절로 연결하는 말입

니다.

그러면 18절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을 예수 믿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게 하기 위하여 바울에게 성령을 부

어 주셨는데,그 성령을 통해서 바울이 말할 때마다 능력이 나타나고, 바울이 하는

일마다 능력이 나타나고, 그 성령을 통해서 바울에게서 이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입

니다.

이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유요, 방법이요, 비결이었습니다.

 

성령이 바울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할수 없었던 일을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철저히 그와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점에 대해서도 또 하나 중요한 점을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지요, 우리는 아닙니다. 다르지요.

사도바울이 받았던 성령의 능력과 우리가 받은 성령의 능력이 같으냐? 다르냐? 다

릅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사도직을 주셨기 때문에 그 사도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사를 따로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랬고, 요한에게도 그랬습니다.

주님이 특별히 택해서 특별한 사명을 주신 사람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임했고, 특

별한 이적기사가 그를 통해서 나올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달라요.

사도바울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알아요. 19장

11-12절에 보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

게 하셨다 그랬습니다. 그것은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고 악귀들린 사람들은 귀신도 나가더라 그랬습니

다. 얼마나 희안한 일입니까?

요즈음 아무리 은사가 요란해도 이런 사람이 없지요.

하나님은 사도 외에는 그런 능을 잘 주시지를 안았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가끔씩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경우에는 주시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2:2-3절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과 능력을 골고루 주

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증거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그러나 사도행전을 보세요. 사도 바울을 통해

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사도바울과 같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는

가? 루디아 같은 사람, 없습니다. 차이가 있어요, 달라요.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사도바울이 받은 능력 달라고, 표적기사를 달라고 막 하

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조금만 이상한 것 있으면 요란하게 떠들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근본적으로 잘 못된 것입니다.

똑 같이 주지 않습니다. 절대로. 내가 사도바울이 아닌데,왜 내가 사도바울과 같

은 능력을 받아야 합니까?

마귀도 병을 고칩니다. 어떤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도 고칩니다.

마귀도 죽은자을 살릴수가 있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마귀도 행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잘못하면 마귀가 하는 일을 마치 그리스도가 하는 일처럼 들고 나

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킬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전한 것은 사도 바울이 행했던 기사와 표적을 아무나 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하나님은 아무나 함부로 주지 않아요.

 

그러면 사도바울하고 우리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적진에다가 대포를 쏘아가지고 적진지를 부수어 버리고 약화시킵니다.

그런 다음에는 소총부대가 나섭니다. 소총부대는 남아 있는 사람을 따르르 따르르

죽이면 됩니다.

그러면 누가 대포를 들고 나갔습니까? 사도들입니다.

우리는 소총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위치요,본분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성령의 능력으로서 이런 엄청난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의 받은 능력을 가지고 일을 했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1. 표적과 기사만이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말에 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말, 십자가라고 하는 말, 그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부활하셨다는 말 그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도바울도 그렇게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한 사람이지만, 이 것을 긍정했습니다.

고전 2:4 네말과 네 전도 함이 성령의 나타남으로 했다 고 했습니다.

 

2.성령의 능력이 내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따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기다려야 하느냐? 지금도 성령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같은 이

적을 보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느냐? 아닙니다.

성령은 이미 오셨습니다. 임했습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성령도 내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능력이 나와함께

합니다.

 

3.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약하고 두려워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약하다고 해서 성령도 약하냐? 아닙니다.

내가 두려워서 떨고 있다고 해서 성령도 떨고 있느냐? 아닙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도 전도할 때마다 두려워서 떨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가 연약해가지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두려워 했다고 했습니다.

고전 2:3내가 너희중에 거할 때에, 약하며,두려워 하며, 심히 떨었노라

여러분 몇번 반복해서 강조합니까? 3번이나 강조합니다.

이 정도면 바울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떨었는지 알만 하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전도를 해봅니다만,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불안하고 떨립니까? 어떤

때는 자신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워하고 떨고, 약한 바울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복음은 놀랍게 전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두려워 하는 것과 성령의 능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 해도 성령의 능력은 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불안해도 성령의 능력은 나와 함께 합니다.

내가 약해도 성령의 능력은 나와 함께 합니다.

믿습니까?

 

성령의 능력! 그 능력이 나와 함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은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만 나타나지 않고 내가 전하는 복음, 내가 전

하는 말씀 속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은 나의 약한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떠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

니다.

죠지물러가 좋은 말을했습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는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욱 가까이 오십니다. 난관이 크면 클

수록 주님의 도우심은 더욱 가까이 오십니다.}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조용히 찾아와 물으십니다.

 

산돌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아!

청주시에 복음이 편만하도록 전하였느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가득히 채운것처럼 네 가정에 복음을

가득히 채웠느냐? 네 직장에 복음을 가득히 채웠느냐? 산돌교회 주변을 복음으로 가

득히 채웠느냐? 청주시를 복음으로 가득히 채웠느냐?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이 사실이라고 합시다.

만일 당신이 예수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소중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입다물고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분명히 확인하십시요.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했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의 생명입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기쁨이요,소망이요, 정말 자랑할 분입니까? 정말 예수님이 좋

습니까?

그렇다면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힘써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