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10:6]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

'코이네' 2020. 11. 7. 23:06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

마태복음 105~10

 

 

며칠전 청송교도소에서 출감한 두명의 출소자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20kg 가까이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서 서울까지 '십자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던 기간동안 복음을 받아 들여 자신들의 죄를 진실로 회개하면서 출소이후에 다시는 지난날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직 연약한 사람들의 곁에서 한평생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겠노라 다짐하는 의미로 '십자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복음 때문에 이와같이 변화된 사람들의 얘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찍이 복음을 가리켜서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12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면서 그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참 이상합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집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애초에 제자를 12명만 선택했기 때문에 인원이 부족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물론 그런 이유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인원이 부족했다면 차라리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아서 보내실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70인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던 각동네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낼 사람이 부족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복음이 증거되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그러신것일까요?

 

며칠전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한인교회에서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한국인 유학생 윤원준씨가 피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살해한 스미스라는 범인은 백인우월주의자로 흑인과 유태인 그리고 아시아인에 대해서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처럼 인종차별주의가 강했기 때문에 다른 곳은 가지말고 이스라엘 집의 어린양에게 가라고 하신 것일까요? 물론 그런이유때문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친히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저의 어머님이 저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눈 팔지 말고 곧장 다녀오너라"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의 집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똑 같이 말합니다. '한눈 팔지 말고 곧장 다녀와야 돼'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과 사마리아의 고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한눈팔지 말라'는 의미였을까요? 물론 그런 이유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가장 보편화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는 '전도의 출발점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먼저 고려되어야 할 대상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점점 복음이 확산되어 마침내 세계선교를 이루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있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 420절을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을 오늘 이 본문에 적용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가까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세계선교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란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대상이 가족이며, 친지입니다. 교회에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차라리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믿지 않는 내 남편이나 아내를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는 방금 읽은 이 본문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까운 가족부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 해석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비록 가족이나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할지라도, 그래도 사랑하는 내 가족부터, 그리고 나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해볼 때 한가지 더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은 '이스라엘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가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믿다가 낙심하여 믿음가운데 있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덧붙여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주위에는 믿다가 믿음을 포기하거나, 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하듯 신앙의 방학을 맞이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안산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과거에는 정말 열심으로 헌신을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은 거의 신앙생활을 중단하다시피 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분들에게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는 안되며 다시금 믿음안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도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하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메시지를 전해야 할것인지에 대해 일러주고 계십니다.

사실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치는 것은 제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도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친바 있고, 주님도 그렇게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외치도록 주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왜 같은 말씀을 자꾸 되풀이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 다릅니다. 어떤사람은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저께 조선대 전 총장을 지냈던 김기삼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했습니다. 그분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해직되었는데 그후 88년에 복직해서 96년에 조선대 총장이 되신분입니다. 그런데 지난 97년에 조선대 부속병원 의료기기 납품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면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평소 자살을 해서라도 누명을 벗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은 명예를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재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곡간을 늘리고 그 곡간에 곡식을 가득채우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사실 집안에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저축통장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도 상당히 흥미있는 일입니다. 이 부자는 그런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요즘 어떤분들은 다이어트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육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이어트를 합니다. 눈뜨자마자 운동복 갈아 입고서 운동장 뛰고, 아침식사하고 등산하고, 저녁먹고 줄넘기 하고, 음식량도 줄이고 필사적으로 다이어트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수십번도 더 체중계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몸무게 얼마나 빠졌나 체크합니다. 저도 살이 이렇게 쪄 있는 상태라서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살 안쪄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설마 다이어트가 인생의 목표일까?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얼마든지 그럴수 있습니다.

 

또 어떤분은 자녀 뒷바라지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식이 잘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일도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자녀를 둔 부모이기에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본오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 수업시간에 수박씨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박씨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씨가 많은 수박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가 수박씨를 가져갈 수 있도록 수박한통을 싸서 다 먹어도 원하는 만큼의 수박씨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들이 포기하겠습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수박씨를 구해서 보내게 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그 준비물을 부족하게 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정도를 가지고 자녀 뒷바라지가 인생의 목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도 이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인생을 오직 자녀 뒷바라지에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명예도 중요하고, 재물도 중요합니다. 다이어트도 중요하고, 자녀 뒷바라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을 아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도 우리는 그 육신을 가지고 100년도 못되는 인생을 삽니다. 자식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도 마지막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남기는 말은 "자식 애써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어"라고 말입니다. 이 땅에 속한 것중에 그 어느것도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거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천국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을 외칠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절에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라"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천국을 전파할 때 주님이 행하신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에게 천국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시면서 주님께서 그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당부하시기를 너희도 그저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개척할 무렵 어느분이 저에게 '선교원을 운영하면 재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산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재정적인 적자를 해결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개척초기에 어려운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라 주변상황이 주는 생각일 뿐입니다.

 

그때 그분에게 말씀드리기를 "우리교회가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선교차원에서 그 일이 필요하다면 무료로 운영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하면 선교원이나 유치원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그저 받은것이기에 그저 주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장애아이들을 위해 목요일마다 운영하고 있는 놀이방이 후원회원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후원회원중에는 놀이방에 오는 아이의 부모님들도 회원이 되셔서 후원회비를 내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대부분 후원회원이 되어 그 아이들을 돌볼수 있는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일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봉사하시는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기 때문에 그 일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복음에 관한 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모두 그저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그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는지를 한번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할수 있는 일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의사도 제대로 없는 이 시대에 병자를 고쳐주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가정에 이렇게 고침을 받은 가족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으로든지 보답하려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제자들에게는 죽은자도 살릴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아마 이런 일을 경험한 가정이 있다면 전재산을 다 내놓을 것입니다.

 

문둥병은 이 당시 불치의 병입니다. 그런 불치의 병이 고침을 받았는데 입 싹 닦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귀신들린 사람이 집안에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온 가족이 지칩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을 쫓아내주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것을 받기 시작하면 제자들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제자라고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때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넘치시던 분들이 사업이 잘되어 여러 가지 환경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슬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리와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주면서 돈을 받기 시작하면 그들은 얼마가지 않아 돈방석에 앉을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과연 천국을 외치면서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겠습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호화빌라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누굽니까 병든자들, 문둥이들, 그리고 귀신들린자들입니다. 고급승용차가 달리는 곳은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입니다.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달립니다. 그런길을 통해서 가는 곳은 이런 사람들이 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날수도 없습니다.

 

시원스럽게 뚫린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고급승용차는 돌멩이가 여기저기 튀어 나와있는 좁은 시골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병든자들, 문둥병자들, 귀신들린자들은 고급승용차가 들어갈만한 곳에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비만오면 땅이 질퍽질퍽해서 온통 흙탕물이 되고, 길은 좁고 울퉁불퉁하여 소달구지가 다닐때도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그런 곳에서 삽니다.

 

고급승용차에 고급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설령 그런차림으로 그곳에 도착했다 할지라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병든자들은 먼저 그 자리를 피하고 말것입니다.

몰로카이 섬에서 전도했던 다미안 신부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몰로카이 섬은 문둥병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는 한동안 열정을 다해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 섬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그 건강한 몸으로 외치는 복음이 그들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게 여겨진 것입니다.

 

그때 다미안 신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건강한 몸이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저도 저들과 같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의 기도대로 그는 얼마후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몰로카이 섬에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심령속에 파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섬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주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료해준후 대가를 받았다면 그들은 더 이상 병든자들을 찾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과 10절에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두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행을 하려면 갈아입을 옷도 몇벌 챙기고 여행지에서 신을 샌들이나 슬리퍼를 챙겨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말씀드려서 일종의 '무전여행을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극단적으로 해석을 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살아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은 천국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행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우리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살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많이 배워서 지혜롭게 대처하면 이 세상에서 훌륭하게 살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심을 믿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청송교도소를 출감한 두명의 출소자는 지금도 십자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십자가만 메고 걷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도중에 몇몇사람들이 차를 세워 그들에게 돈도주고 먹을 것도 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사양하고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걸어야할 때입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우리가 길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보냄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길을 나선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