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5:21] 가서 화해하라

'코이네' 2020. 11. 7. 22:36

가서 화해하라

□ 본 문 : 마태 5 : 21-26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먼저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 잃을 그르치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이를테면 우선순위를 제대로 찾지 못하여 생겨난 일이겠습니다. 우선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아주 상식적인 일이면서도 “먼저” 손이 가지 않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말 몰라서 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손해보지 않으려는 속셈이 앞섰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생각이 심하게 굽어있어서 분명 그릇된 방향을 걷고 있으면서도 “이 길이 옳다,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움직이는 경우이겠습니다. 어찌되었던 이 모든 경우 결국에자신에게 당도하게될 허탈한 결과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해야할 일을 바르게 찾아내는 눈”이 정말 필요합니다.

 

“예배만능주의”가 한국 기독교를 그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는 줄곳 “삶이 곧 예배이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풀어말한다면 “호흡하는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이 깃들어 있어야 하고, 이것은 어느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뜻을 “자 어서 매일 매일 교회로 모여라 거룩한 예배를 바쳐야 한다”고 해석해 버렸습니다. 교회는 “모임과 흩어짐의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모임은 흩어져서 해야할 일을 고민해야 합니다. 모여야 할 필요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그만큼 흩어져서 건강하게 살아야할 일에 대하여, 모든 공간과 시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풀어내야할 일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꾸며진 예배를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 일에 우선하여 풀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서에서 예수는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먼저”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 “밀실회담”하듯 이루어 지거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국제적인 관계속에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이 한 많은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밝혀지고 이루어 져야 합니다. 먼저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땅딪고 서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내는 일입니다. 이것을 밀쳐두고 밀실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면 결코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 발딛고 서 있는 땅의 현실, 곧 뼈에 사무치는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내벼려 두고, 밀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형제를 거절하고 욕하면서, 이방인 중의 이방인으로 취급하면서 하나님을 밀실속에서 찾으려 하는 태도는 더이상 바르게 평가될 수 없습니다. 분단을 지속시키려는 그 어떠한 세력도 화해하시고 해방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 희년의 해”로 선포된 1995년을 두해 앞두고 우리의 민족통일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땅을 빼앗긴 백성들에게 노예로 전락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희년의 해방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본래 저마다 누려야 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제 모습을 찾는 희년의 기쁨은 한반도 역사 속에서 민족 통일의 기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며 우리가 먼저 힘써야 할 일의 내용입니다. 더이상 밀실회담하듯 하나님을 만나려 말아야 합니다. 먼저 해야할 일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