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9:14] 금식에 대하여

'코이네' 2020. 9. 11. 21:23

 

금식에 대하여

 

성경:9:14-17

 

 

1.서론

금식이란 무엇입니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무조건 금식이 아닙니다.금식이란 반드시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 어느 기간 동안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이러한 금식이 우리들에게 과연 필요한 것일까요? 본문에는 예수님께 금식에 대하여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가르쳐주고 또 바리새인들도 일정 기간 동안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하는 반론에 대해서 예수님이 설명을 하신 내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2.금식의 경우

성경에 보면 여러 경우에 금식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첫번째 예로,법궤를 빼앗겼을 경우에 금식을 했습니다.법궤를 빼앗겼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굉장한 위기입니다.법궤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법궤를 빼앗겼다는 말은 하나님이 저들을 떠났다고 하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법궤를 빼앗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그 당시 법궤를 블레셋군에게 빼앗겼다는 말을 들은 엘리 선지자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마침내 이 법궤는 블레셋으로 옮겨갔습니다.그러나 그리로 옮겨가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재앙이 나타나기 시작했고,하는 수 없이 저들은 벧세메스로 법궤를 옮겼습니다.그래서 마침내 기럇여아림으로 법궤가 옮겨졌을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함께 성회를 베풀고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다시 말하면 국가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때 우리들이 금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구약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느헤미야 14절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 성전은 무너지고 나라는 빼앗겼을 때에도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그러므로 개인적으로나,가정적으로나.교회적으로나,사회적으로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생명을 내걸고 하는 금식 기도만이 국난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이방인 중에서는 최초로 예수님을 믿게 된 고넬료는 그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벽을 느끼고 금식 기도를 하였습니다.그후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서 이방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네번째로 안디옥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선정해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그 결과 지중해 연안에 있는 모든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선교사를 파송해 놓고도 금식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선교사는 혼자 고전하다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 실패를 하고 맙니다.선교라는 것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우리들은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을 금식 기도를 통해서 도와야 합니다.그래서 바울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모세도,엘리야도,예수님께서도 금식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위태로울 때,하나님의 지혜를 필요로 할 때,국가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교회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 금식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금식의 목적

첫째는,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열왕기상 212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금식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아합은 부인 때문에 유명한 사람입니다.그 부인 이세벨은 바알숭배에 제일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이세벨의 아버지는 본래가 바알을 숭배했던 제사장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이런 이세벨의 충동질에 의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왕상21:26)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이 아합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27절을 보니 그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면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겸비하다는 말은 자신을 낮춘다는 말인데 겸비중에 최고의 겸비는 금식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비하게 하는 것입니다.아합의 금식 기도는 그에게 임해야 할 재앙을 하나님께서 보류시키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그러므로 금식은 죄를 짓고 나서도 자기 자신을 낮추며 회개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 금식 기도입니다.

둘째는,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려 할 때에 금식을 합니다.

셋째는,더 큰 능력과 굳건한 믿음을 위해서 금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려고 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그래서 큰 능력과 믿음을 위해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기 위하여 금식 기도를 해야 합니다.

 

4.금식할 때 주의점

첫째는,신앙을 과시하는 행위로서의 금식 기도입니다.이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둘째는,형식주의입니다.형식적으로 금식을 해서는 아니됩니다.금식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통회자복하면서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는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5.예수님 당시의 금식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금식하는 것을 많이 따라했습니다.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음식도 가장 소박한 음식을 먹었고,옷도 몸을 가릴 정도의 옷을 입었습니다.그리고 그는 금식을 했습니다.그러면서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이것이 세례 요한의 삶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날을 정해놓고 금식을 했습니다.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는데 그들은 그때에 민족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특별히 속죄일이 될 때에는 일년에 한 번씩 누구나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대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입니다.말하자면 민족적으로 기도하는 날입니다.그뿐만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들을 비판했습니까?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 의해서 금식을 했고,형식주의에 빠져서 금식 기도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나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9:15)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씩,그리고 1주일에 두 번씩 금식 기도를 했지만 결혼식이 있을 때는 모든 법에 구애를 받지 않았습니다.금식 기도는 지은 죄에 대하여 통회자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반대로 결혼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그래서 먹습니다.먹는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금식 기간이라고 해도 결혼식이 있을 때는 금식을 하지 않습니다.만일 금식을 하게 되면 결혼예식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결혼예식이 금식보다 위에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 당시의 관례를 들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생베조각과 가죽부대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니라”(9:16,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유교적,불교적,세속적인 삶의 형태를 벗어나서 새로운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6.결론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교회는 신부입니다.그러므로 교회의 일원인 우리들은 항상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물론 통회자복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필요합니다.마치 결혼예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성도들이 만나서 나누지 못했던 교제를 나누면서 온 교회가 매주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이 지냈으면 합니다.그래서 주일을 그리워 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결혼예식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새 예복이 필요합니다.그 예복은 흰 세마포입니다.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우리들이 모두 흰 세마포옷을 입을 때에 천국백성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는 새 예복과 함께 새 능력이 필요합니다.그래서 때때로 금식을 해야 합니다.이 사회는 구조악으로 가득 차있습니다.어쩔 수 없이 구조악 속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금식 기도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