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7:1] 비판하지 말라

'코이네' 2020. 3. 6. 20:31

 

비판하지 말라

 

7:1-5

 

 

오늘 본문1절에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나 남에게서 비판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남에게서 바판 받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혹시나 장점을 들추면서 좋게 말해주거나 칭찬해 준다면 몰라도 단점만 골라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장점을 많이 보느냐 아니면 단점을 많이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게 되면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게 되지만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장점은 보지 않고 단점만 보려고 하면 자연히 입에서 좋은 소리가 안 나오고 단점을 지적하는 말만 나오게 되기 때문에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고 따라서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대게 이런 사람은 그 성품자체가 너그럽지 못하고 옹졸하고 편협하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환영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실 부부는 제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압니다. 어떤 면에서는 비밀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습니다. 장점도 단점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 부부사이인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편의 단점만 보고 말한다면 이 집안은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점점 더 험한 말을 주고 받게 되고 나중에는 파경에 이르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서로가 단점은 덮어주고 장점만 생각하면서 산다면 자연히 오고 가는 말이 부드러워지고 행복한 부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사이에서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서로 서로 장점을 보고 그 장점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로 산다면 이 세상은 한결 밝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것은 선행과 악행을 분별하는 일까지 금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12:56-57에 보면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7:24에 보면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은 똑 바로 잘해야 할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분별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1)[] 분별을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4:1-3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영 분별을 잘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참 영인지 거짓 영인지 분별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이단] 분별을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11:4에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또한 디도서3:10에는 [이단에 속한 인간은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고 요한이서1:7-11에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쓴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웠을 정도로 사랑을 중시했지만 이단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격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무리 중요해도 이단가지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3)[거짓 선지자]를 분별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7:15-23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바쁜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밎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큰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통해서 분별을 해야지 그 사람이 행한 표적만 보고 하나님의 종인 줄 알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4)[빛과 어두움의 일]을 분별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5:8-12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고 했고, 디모데후서2:15을 보면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을 분별하되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빛의 일인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어두움의 일인지 옳게 분별하여 어두움의 일에는 참여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을 금하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 내면서 비난하는 행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하고 가혹하게 비판하는 것을 발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비판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하고 그 영혼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비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1)인간은 정확하게 판단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정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전체를 본 것이 아니고 일부분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전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보고 안다는 것은 일부분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감정을 가지고 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똑 같은 것을 보아도 어떤 감정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미운 감정을 가지고 보면 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판단은 모두 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되겠습니다.

 

2)인간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능력도 없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도 없습니다. 사람을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치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남을 판단하고 비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도적질하는 자이니 하나님앞에 큰 죄를 범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비판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자기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는 죄가 없고 의로운 자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남을 비판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야말로 외식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본문 3-4절에 보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더 핑크 박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들보를 위선 영적교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특별한 죄와 욕망, 이 세가지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죄와 허물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죄 중에서도 큰 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큰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작은 죄와 허물을 보고 비판한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1-2절에서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큰 잘못을 깨닫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세가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안입니다.

이 눈으로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지안입니다.

우리는 이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분별하게 됩니다. 똑 같은 것을 보아도 지식이 없으면 겉만 보지 속은 볼 수가 없습니다. 지안이 있는 사람은 전깃줄만 보지 않고 전깃줄 안에 흐르고 있는 전기를 보는 것입니다.

영안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눈이라고도 하고 믿음의 눈이라고도 합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안이 밝은 사람은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육안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고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영안을 밝히 뜨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가 되며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일 때는 오직 그 사람을 사랑한는 마음을 가지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조용히 찾아가서 겸손한 마음으로 충고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6:1에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18:15-17에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을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우리는 함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도리어 자기자신이 가장 비판을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서 (디모데후서4:1-2)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서 가혹하게 비판하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긍휼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2-13에 보면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시고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