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102:1] 영적침체,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이 올 때/ 이정익 목사

'코이네' 2019. 12. 11. 18:57

영적 어두운 밤

(102:1-11, 1:12-15)
설교 : 이정익 목사 


 

영적 침체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심각한 다운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영적침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그래서 모세 엘리야 욥 예레미야 베드로 사도바울도 경험하였습니다. 당연히 오늘 우리에게도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02편입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인데 그중에는 7편의 참회시가 있습니다. 그것이 6, 32, 38, 51, 102, 130, 143편입니다.

102편은 다섯 번째 참회시 입니다. 본문의 저자는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다만 심각한 영적침체 상황에서 기도한 내용임은 분명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우울증이 심각한 시대입니다. 이 우울증이 마침내 영적 침체로 빠지게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영적 어두운 밤을 지내야 하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영적 침체


영적침체는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 침체상태가 가장 많이 나와 있는 곳이 시편입니다. 시편 425절을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여호와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절을 보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영혼의 불안이라는 말은 내가 영적 침체에 깊이 빠져 있다는 말입니다.

시편 319절을 보면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여졌다고 말씀하는데 여기 눈과 몸과 영혼이 쇠하여졌다는 말도 한부분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아프고 두렵고 감정과 정신과 영이 다 고통스럽다는 고백입니다. 319-10절을 보면 영적 침체시에 나타나는 증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내며 나의 뼈가 쇠약하였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영적 침체는 처음에는 우울함으로 시작됩니다. 차츰 절망으로 빠지게 되고 결국 영적 침체가 깊어져 갑니다. 내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이 말은 뼈가 마르며 몸속의 생명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그리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영적 침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지금 이런 상태에 빠져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아주 암담하게 느껴지고 때로 죽고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침체 현상입니다. 본문 표제 보면 고난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고 적고 있습니다.


증상


그때 나타나는 영적침체 증상이 본문은 7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증상은 식욕감퇴입니다. 3절을 보면 내 뼈가 숯같이 탔나이다.하고 말합니다. 그 말은 골수가 말라간다는 말입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식음을 전폐했다는 말입니다.

둘째 증상은 무력감과 절망감입니다. 4절을 보면 내 마음이 풀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라고 고백하는데 그 말은 내 모든 힘이나 희망이 소진되었다는 말입니다.

셋째 증상은 체중감소입니다. 5절을 보면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하고 말합니다. 그 말은 내 영이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말입니다.

넷째 증상은 수면장애입니다. 6-7절을 보면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내가 밤을 새우니 참새 같으니이다하고 고백하는데 그 말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증상은 슬픔입니다. 9절을 보면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매일 눈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여섯째 증상은 에너지 감소입니다. 11절을 보면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말은 완전 연소되어 탈진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울증 즉 영적 탈진의 증상입니다.

욥이 우울증에서 마침내 영적 침체로 빠지게 됩니다. 그때 욥이 이 우울증 증상을 호소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다음에는 희망을 잃음(욥기7:3-4)을 고백하고 다음에는 죽음을 희구(욥기7:15-16)하며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한탄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워 수치심을 느끼고(욥기10:15) 그래서 욥은 절망감을 호소하고(욥기17:15-16) 체중감소를 호소하고(욥기19:20) 외로움을 호소(욥기19:13-15)합니다. 이런 우울증이 깊어지면 영적 침체로 빠지게 됩니다.

왜 이런 증상이 나오는가 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시편 102:2). 응답이 빠르면 우울함이 오래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통 속에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을 갖게 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원인


우리들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우리 주변에 상존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기인합니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올 수 있습니다. 즉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때도 옵니다. 낙심이 됩니다. 미련이 깊어집니다.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외로움도 요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큰 고뇌는 외로움입니다. 엘리야의 실패 원인이 나만 홀로 남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만 홀로남아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너 혼자가 아니다, 아직 순결자가 7천명이나 있다고 격려하십니다(왕상 19:1-18). 외로움은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노년이 되면 모두 주변으로부터 떠납니다. 결국 혼자 남습니다. 외로움은 병을 만듭니다. 노년일수록 자꾸 도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노인이 병났을 때 독방에 입원시키면 낫지 않습니다. 외로워서 병이 났는데 또 독방에 입원시키면 그곳이 곧 감옥입니다. 노인일수록 9인실에 입원시켜야 합니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사고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영적 침체가 오기도 합니다. 그때는 극복도 돌파할 힘도 없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집니다. 그때는 버림받은 느낌입니다. 그때 모두 포기하고 죽고 싶은 생각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영적 침체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악화도 원인이 됩니다. 인간관계의 악화와 단절 그리고 소외는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인간관계의 악화와 소외에서 영적 침체를 겪었습니다. 시편 3111절을 보면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이웃들과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고 오해받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존재감을 상실하고 자격지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사명감이 흐려질 때도 문제가 됩니다. 그때는 수직관계가 모호해 집니다. 이때는 사람들이 싫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일하기가 싫어지고 의욕도 사라집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으며 의욕이 상실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사명감이 흐려질 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그때 의욕이 상실되고 미래가 암담하고 현실을 돌파할 능력이 없어집니다. 또한 걱정과 근심과 불안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것들은 내 삶에서 기쁨과 행복과 안정과 감사를 빼앗아 갑니다.

이런 요인들은 마침내 하나님과 단절로 이어지게 만들고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하여 영적 혼란을 겪게 만듭니다. 시편 3122절을 보면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라고 고백합니다. 기도하였지만 마음속에서 하나님께서 듣지도 않으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는 영적 회의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낙담과 침울은 신앙의 최대의 적인 것입니다.

초기 교회시대 때에는 죄를 7가지로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잠언 616-19절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예닐곱 가지를 꼽았습니다. 그것이 탐식, 음욕, 탐욕, 교만, 분노, 침울, 낙담입니다. 그중 신앙생활에 가장 큰 장애를 주는 요소는 낙담과 침울이라고 하였습니다. 낙담은 탈진을 촉진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침울은 삶의 의미를 잃은 상태 즉 절망의 상태입니다. 이 둘은 영적 파괴를 가져오고 영적침체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 중에는 영적 침체를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질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 내향성인 사람이 있고 외향성인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과 에서의 경우입니다. 이 두 형제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납니다. 야곱은 내향성입니다. 피부가 매끈하고 성격이 조용하고 매일 집안을 떠나지 않습니다(25:26-27). 그런데 에서는 외향성 사람입니다. 우선 몸에 털이 많습니다. 사냥꾼으로 밖으로 돌아다니는 남자입니다.

 

내향성인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영적침체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향성인 사람은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때 생각이 떠오르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런 사람은 우울증이 오거나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싫어합니다. 더 깊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침체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향적인 사람은 스스로 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갑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교회에 와서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그 결과 쉽게 헤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느 여집사가 새벽기도에 와서 눈물로 남편의 핍박을 막아달라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합니다. 목사님이 좀 조용히 기도하라고 하자 나는 조용히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핍박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러니까 누가 비싼 밍크코트 사 입으라 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여집사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합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모르는 사람 있는가.이런 분들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쉽게 풀어나갑니다. 이런 분은 교회에 처음 와서도 스스로 찾아다니며 적응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습니다. 매사 적극적입니다.


맹구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교사가 지나가다가 맹구를 보고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일산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몇 번 타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60번 타면 된다고 말하고 일을 보고 와 보니 그때까지 서 있습니다. 왜 그대로 서 있느냐고 물으니 방금 58번째 버스가 지나갔으니 두 대만 기다리면 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우울증이나 영적 침체에 잘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편한 사람들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영적 침체에 빠지는 원인 4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기질이라고 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시련들은 기질과 성향에 따라 대처하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정신력입니다. 마귀는 몸과 생활과 정신을 보고 찾아와 마음대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자는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걸리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는 저 산 너머에 있는 섭리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불신앙을 낳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혜나 에너지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잘못 사용하여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유를 빼앗기고 고독과 자책감으로 인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한 가지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로 자아를 상실하고 고립을 자초하고 불안한 삶으로 공포스럽게 살다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질서를 이탈하게 되어 거기서 고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유익


영적 침체의 시간은 힘든 시간이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외로움과 절망과 공포와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고난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영적 침체는 한마디로 기쁨을 잃은 삶입니다. 그런데 영적 침체는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유익도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다는 유익입니다. 시편을 보면 끊임없이 영적 침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로 엮어져 있습니다.

시편 319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영적 침체는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게 만듭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을 교정하고 자신의 영혼을 깨우게 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자기를 수정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영적 훈련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로마서 54절을 보면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침체시간은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입니다.


그 과정에서 연단을 받아 강해지고 눈을 뜨게 되고 거듭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유익을 주는 과정입니다. 제철소에 가 보면 용광로가 있습니다. 모든 쇠붙이는 그곳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모든 쇠들은 시뻘건 쇳물이 됩니다. 그 쇳물을 거푸집 속에 부어 육중한 기계로 힘 있게 누르면 저 밑바닥에 기차 바퀴가 뚝 떨어집니다. 쇠가 연단 받은 후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시험은 용광로 속에 들어가 연단 받는 시간입니다. 어느 시간이 되면 기차바퀴가 만들어져 나오듯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위인들은 대부분 그런 용광로에 들어갔다가 나온 분들입니다.


역경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크고 작은 역경들은 도약의 발판이 됩니다. 역경이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사람은 적당히 실패를 경험하고 역경도 아픔도 경험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앓고 나야 성장합니다. 개구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일단 뒤로 물러서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예방주사를 맞아 내 몸에 균을 넣어 아파야 면역이 생깁니다. 박태환 선수는 어려서 천식이 심하여 치료에 수영이 좋다고 해서 운동하다보니 수영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얇은 종이는 바람에 쉽게 찢어지지만 그 종이 가운데에 구멍을 뚫으면 건재할 수 있습니다. 골프공은 공 표면에 흠이 파여서 멀리 날아갑니다. 사람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때를 살펴보면 역경을 맞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시련과 고생과 아픔을 주시는데 모두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까 외국 국적자 젊은이들이 군에 자원입대 하는데 지금까지 1,308명이 입대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해병대에 7년 근무하고 또 다시 입대한 젊은이도 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4급 보충역을 받은 청년이 교정을 받은 후 다시 입대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고 떳떳한 한 국민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대할 때가 되면 하나같이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것을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연단 받으면 모두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연단의 효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만 주시지 않습니다. 모진 연단도 주십니다. 욥도 모세도 엘리야도 베드로도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그 후 그들로 하여금 다시 서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영적 침체를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침체를 주신다면 빨리 하나님께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해결방안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연단과정으로 알기를 바랍니다. 살아가다가 영적 침체를 겪게 되면 시편 102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길이 있고 해답이 있습니다. (이정익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