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데살로니가

[살전2:17] 사단 / 이근호 목사

'코이네' 2019. 11. 8. 21:41

사단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17-20

설교 : 이근호 목사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늘 나라가 보여야 합니다.

 

교회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별난 세계라 여겨집니다. 세상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교회와 교인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교회는 그 인식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세상 것만 가득 들어 있는데 우리 교인들은 하늘 나라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지상의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 고민하고 있지만 우리 교인들은 세상 문제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인에게는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늘 나라가 확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은 희한하게도 하늘 나라만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펼치자 하늘 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강림하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구름타고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늘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잡다한 이야기,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성경을 펼치면 우리 주님이 장차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데 너희가 과연 구원을 받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것을 생각하다가 성경을 펼치면 주님이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가 있지.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지. 그렇다면 주님 앞에 내가 깨끗한 신부로 서야지. 주님 오실 때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나 세상 사람들이 다같이 이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기름을 준비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장래 일을 모르면 모든 것이 초조하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알고 확신하면 그 불안과 초조감이 사라집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이 장래일에 대해서 미리 앞당겨서 알려주는 곳입니다. 우리는 장래 일을 앞당겨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에게 믿는다는 표시를 내야 합니다. 낮에 어떤 학생이 이런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오는데 그 중에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온다고 기름을 준비하고 다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밤에 잘 때에 신랑이다 맞으라 해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그 때서야 기름을 준비하느라 허둥대다가 결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주소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 내용은 이런 뜻입니다. 열 처녀가 둘로 나뉘는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가 오히려 똑똑해 보이고 기름을 준비하는 처녀가 어리석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신랑이 온다는 것은 전혀 믿을만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뭔가 믿는 것은 믿을만해서 믿는 것입니다. 신랑이 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신랑이 온다는 그 어떤 징조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랑이 곧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뭔가 믿고 싶기는 한데 믿을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신다고 해서 80년 전에 이곳에 박사 교회를 세웠는데 아직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말만 있지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이 한 군데로 모인다든지 사람 몇 명이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하는 징조가 보여야 할 텐데 전혀 그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증거 변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앞당겨서 기름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때라는 말씀을 읽으면 주님이 강림하시는구나.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장차 지옥에 갈 것이다하면 보여줘! 하지 말고 안 보여줘도 지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천국에 간 자들은 하늘 나라에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것이다하면 앞으로 그렇게 되는구나 그렇게 믿고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놀라운 증거와 기적을 보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놀리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 앞에서의 증거입니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증거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늘 나라가 있다는 증거를 대라 하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내 마음이 증거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외부에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모습입니다.

 

사도는 성도들의 얼굴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주님이 강림하시는 것에 대비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든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살전2:17)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얼굴을 보려고 애를 씁니까? 애인입니까 주말부부입니까? 뭐하려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애를 씁니까?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데 보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하면 듣는 사람이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사도 바울이 나는 여러분을 보기를 원합니다말할 때 듣는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만나려고 애를 씁니까?

왜 사도가 그렇게 형제들을 만나려고 애를 씁니까? 그 이유와 내막을 아는 존재가 본문에 딱 하나 있습니다. 누굽니까? 19절에 보니까 사단 때문입니다. 마귀 때문입니다. 그는 압니다. 마귀는 사도를 알고 사도는 마귀를 압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마귀는 사도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압니다.

교회가 별난 이유 중의 하나가 세상에서는 잘 말하지 않는 사단 마귀를 자꾸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만 골라서 말하는 기관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무지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내막을 다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내막을 다 알기 위해서는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을 분리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도가 형제를 만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져서 구조작업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장마비가 와서 중단하고 다 집에 갔습니다. 그 때 자원 봉사대 아저씨 한 분이 손가락으로 계속 땅을 후비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하다가 비가 와서 다 집에 갔는데 아저씨는 왜 집에 가지 않고 땅을 파고 있습니까?”

여기에 13일 동안 갇혀 있는 ○○○ 양을 구하려 그럽니다.”

“13일이나 지났으니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고생하지 말고 그냥 갑시다.”

여기서 13일이 지났지만 구하겠다고 땅을 파고 있는 사람이 사도고 그냥 가라고 재촉하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바울은 우리 주님이 강림하실 때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서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마귀는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갔는데 저 미친놈은 뭐하나?” 하면서 소용없다 죽었다 하면서 집에 가자고 잡아끄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더운 날 다른 사람들은 수요예배에 안 나왔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엇하러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다른 사람은 안 막아도 마귀는 막습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천국갈까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 같습니까? 그러나 동화책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2:1-3)

시편 2편은 마귀가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를 대적하며 그 메시아와 연결된 사람을 어떻게든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는 공동묘지에 귀신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마귀는 교회에 못 나가게 해서 예수라는 지남철과 나라는 쇠조각인 성도가 서로 붙지 못하도록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나의 취미생활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그것을 알고 어떻게든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그 희한한 일을 사도행전 19장에서 다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19:15)

잘 보세요. 마귀는 바울을 알고 바울도 마귀를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도 귀신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던 것입니다. 마귀는 이처럼 예수님과 성도가 붙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니라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런다고 일을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구름타고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장차 구름타고 오시는 그분 앞에 오늘 본문에 어떻게 말씀합니까? 흠도 없는 너희가 우리 주님 앞에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19-20)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 사도 바울이 크게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주님 앞에 오는 것을 마귀가 그렇게 막았었는데 주님이 저를 구원하셔서 천국가는 것을 보니까 저에게 그것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큰 목숨을 주시고 영생을 주십사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내가 살 수 있는 영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와서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예수님만 생각하자는 말입니다.

만일 다른 교회 집사님을 오랜만에 만났다면 집사님, 요즘 신앙생활 잘 하십니까?” 물으면 잘합니다하면 될 텐데 요즘 봉사 잘하고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봉사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 외에 다른 쪽으로 예수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교회 출석하는 것 말고 은밀하게 주님과 나 사이를 두고 말하는 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말씀듣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교회에서 직분받아 봉사 생활하는 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생활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강림하시는 걸 생각한다면 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놀러 다니다가 지옥가면 그것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너무 소극적이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세상에 그런 게으른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올라가서 따먹으면 될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감나무 밑에 있더라도 하늘 나라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놀고 있으면 밥과 떡을 주겠지 생각하는 것은 나쁜 사람입니다. 다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늘 나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될 때 그가 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역행하는 마귀의 도구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꾸 세상일을 생각하면 어느 새 마귀가 와서 염려와 걱정으로 우리를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주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수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일이 잘 되든지 말든지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이요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