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데살로니가

[살전5:1]해와 같이 빛나는 빛의 아들들

'코이네' 2019. 11. 8. 21:55

빛의 아들

본문 : 살전5:1-6

설교 : 이근호 목사

 

그날이 도적같이 ......

 

성경은 마지막 때에는 심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심판의 날을 주의 날이라고 합니다. 흔히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데 원래 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날,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하는 주님의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 주님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고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근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적같이 오고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일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 깨어 근신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의 심판날이 늘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심판의 날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올 수 있느냐? 그것은 어린아이에게나 통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도적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주의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19921028일 예수님 오신다고 떠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시켰던 다미 선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네방네 마이크를 차량에 설치해서 떠들고 다녔습니다. 누가 그 이야기를 했든지 간에 예수가 다시 재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다 구원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통해 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4-5)

형제들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이 형제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로서 어두움에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에 속해서는 안됩니다. 낮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빛의 아들이 어떤 사람이며, 낮의 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며, 어두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과연 낮의 아들에게 속한 사람인지, 어두움에 속한 사람인지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빛의 아들과 어두움의 아들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라는 말은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말 빛의 아들에 속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구나,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두움에 속한 행동이구나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하고 똑같네 하면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과연 빛과 낮의 아들인지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본인이 빛의 아들과 낮의 아들이라면 자기와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므로 내가 따라가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행동의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 앉아 있다고 그게 빛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빛의 아들과 어두움의 아들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입니다. 밝음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어두움밖에 없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1:2)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말은 깜깜함이 온 천지를 덮었다는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아들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창조하고 싶어하시는 그러한 모습을 띤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창조에서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빛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신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는 너 같은 인간을 만들고 싶다. 너는 하나님이 하는 이 창조 활동과 일치된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의 사역에 네가 협조자가 되고 같은 편이 되었구나. 하나님의 창조가 네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구나.’ 하시는 인간이 빛의 아들입니다.

 

좀더 쉽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빛은 하나님이 만들고 싶은 것 중에 최초의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아들은 다른 인간 말고 꼭 너 같은 인간을 내가 만들고 싶었단다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의지가 담겨 있는 인간입니다. 내가 너 같은 인간을 보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다고. 나는 너 같은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너를 창조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나를 창조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귀한 뜻이 내 가슴에 내 손가락 발가락 전부에 들어 있다는 고백이 들어 있는 사람이 바로 빛의 아들입니다.

반대로 어두움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나.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웃기고 있네.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었지. 모든 것이 인간 손에서 다 만들어졌는데 왜 인간에게 하나님이 필요하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모든 농토, 모든 자식을 다 내 손으로 일구었지. 하나님이 나에게 들어올 필요가 없어.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과 의지가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어두움에 놓인 어두움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의 솜씨가 들어 있는 사람은 빛의 아들, 하나님의 솜씨가 안 들어 있는 사람은 어두움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을 빛의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을 하신다면 하나님, 왜 나를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는데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 드려야 합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만이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해와 같이 빛나리라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실 때 빛을 창조했습니다. 빛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인간은 빛을 만드실 때의 하나님의 품성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만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시겠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는 대로 지옥에 관하여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지옥은 뜨거운 곳입니다. 그곳은 맹렬한 불꽃이 있습니다. 그곳은 물 한 방울이 귀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그곳은 어둡다는 것입니다. 빛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하늘 나라는 굉장히 밝습니다. 얼마나 밝은지 해도 달도 별도 소용이 없을 정도입니다. 굉장히 광명한 세상입니다.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어느 정도 밝습니까? 태양보다도 밝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3)

광채가 나고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밝게 빛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 눈앞에 훤하게 밝다는 것을 염두에 둡니다. 밝기 때문에 숨어서 행동한다든지, 뭔가 께름칙한 행동이라든지, 양심에 가책이 되는 행동이라든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행동이라든지, 숨어서 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빛의 아들들의 특징입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왕 주님 앞에 다 드러날 것, 지금부터 천국 생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숨기고 싶은 행동을 한다든지 남에게 속이고 감추고 싶은 행동들을 아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낮의 아들이고 빛의 아들입니다. 모두에게 공개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들이 사는 생활

 

그러면 우리가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과거에 마귀의 아들이고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5:8-12)

전에는 너희가 어두움이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꾸 낮의 아들 빛의 아들이 되라고 하면 부담이 생길 것입니다. 바르게 옳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그것이 마귀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행동을 바르게 하는 쪽으로 나가 버리면 마귀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두움에 속했었다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예수 믿기 전에는 여러분이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행동을 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예수 믿기 전에도 여러분들이 행동을 조심했고, 예의 바르고, 교양 있고, 가정 교육을 잘 받은 분이었습니다. 교회를 안 나왔을 뿐이지 착하기 그지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양심대로 살고 남에게 칭찬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에 있었다는 말을 날마다 술먹고 노름하고 칼들고 사람 좇아 다니고 개판치던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제가 어두움에 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가 와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빛의 아들입니다. 누구에게 들킬까 싶어서 숨어서 행동하는 사람은 어두움에 속한 사람입니다. 나쁜 짓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존심이 무척 강합니다.

 

지나간 과거를 잘라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은 나쁜 짓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고 모든 행동을 해도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저 못난 놈이에요 하면 될텐데 뭔가 자꾸 내세우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온통 양과 가가 가득합니다. 이럴 때 돌대가리 같은 아들 때문에 속상한 것입니다.

어두움에 속했다는 말은 우리끼리는 알아도 되지만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정도로 자존심과 오기로 똘똘 뭉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오해하기를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노인정에 가보면 교회를 안 다녀도 얼마나 점잖고 예의바르고 착하고 남에게 나쁜 소리 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소위 예수쟁이라고 하면서 술고래에다가 줄담배 뿜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속했다는 것을 나쁜 짓 했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게 남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부끄러운가. 나만 살짝 알고 있어야지. 자기의 자존심과 오기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위신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두움에 속한 사람입니다.

빨리 거기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주님, 나 공부 못해요. 그래도 나 천국갑니다. 좀 자신 있게 말해야 합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 주님과 1:1로 만나듯이 지금 이 땅에 살 때부터 좀 돈을 못 벌고 못났어도 그것 가지고 너무 기죽지 말고 하나님, 나 이렇게 못났어도 천국갑니다. 왜 자신있게 하나님 앞에 공개하지 못합니까? 이것은 순전히 자존심과 오기 때문입니다. 자꾸 마귀가 너는 위대해야 돼. 너는 뛰어나야지. 너는 스타가 되어야 해. 너는 훌륭한 과거가 있잖아 하면서 속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싸워야 합니다. 칼을 들고 여러분 엉덩이에 나 있는 과거라는 꼬리를 잘라야 합니다. 과거가 밥먹여 주는 거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는 흘러가는 시냇물에 종이배를 띄우듯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가 아름답고 꿈이 컸고 잘나갔다 하더라도 그 행복한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앞으로 천국에서 어떻게 1:1로 붙어서 만날 것인가? 그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주님은 어두움 속에서 우리를 상대하시는 게 아니고 밝은 곳으로 우리를 불러 내십니다. 너는 밝은 곳에서 나와 만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는 이렇게 못난 인간입니다. 나는 매맞아도 쌉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주님의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 지금이라도 구름타고 당장 오시옵소서. 나 천국갈 자신있습니다. 이처럼 늘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셔도 이미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상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빛된 생활을 할 때 주님의 재림이 어떻게 겁이 날 수 있습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어두움의 자식들은 어떻습니까? 누구에게 들킬까 싶어서 숨어 지냅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갑자기 도적같이 임하실 때는 자기의 더러운 실상이 다 폭로되니까 이들은 어두운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장차 천국에서 커다란 운동장에서 홀로 서 있을 때 주님이 나를 지켜봐 주실 때 그 앞에서 혼자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 행동을 지금부터 우리의 가정에서 안방에서 부엌에서 화장실에서 그대로 하는 것이 교회고,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좀 깨끗하게 산다는 말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고 솔직하게 살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행동을 절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늘 밝은 대낮에 속한 빛의 아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