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을 간 때는 언제였을까?

'코이네' 2019. 1. 16. 11:43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을 간 때는 언제인가요?

 

질문)

○ 마2:1-23 및 눅2:1-39절은 예수님 탄생 시점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은 그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즉, 마태복음은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할례와 결례도 행하며 심지어 시므온과 안나의 축복인사까지 받는 등 무척 느긋한 느낌이 듭니다.  

 ☞ 어찌하여 양 복음서의 상황묘사가 상이합니까? 주님의 애굽 피난은 1회적인 역사적 사건인데, 왜 이처럼 상반된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피난 시기는 언제인가요? 갓 태어난 직후인가요? 아니면 수개월 또는 수년 후인가요?

 

답변1)

   ⊙ 주님 탄생기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는 각각 상이한 관점에서 탄생시점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4권의 복음서는 상호보완적입니다. 4권을 다 합쳐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관련된 사실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상황


   ⊙ 마태복음 2장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1절 : 주님이 탄생하시고 별을 보고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의 헤롯 왕을 찾아와서 유대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함.
     ○ 2-6절 : 헤롯이 학자들에게 메시야 탄생 예언 장소는 베들레헴이라는 자문을 들음.
     ○ 7-12절 : 베들레헴을 방문한 박사들이 주님을 경배하고 천사의 지시에 따라 헤롯 왕 몰래 고국으로 돌아감.
     ○ 13-15절 : 천사가 나타나 헤롯의 음모를 알려주고 애굽으로 피난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주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감.
     ○ 16-18절 : 상황을 눈치 챈 헤롯이 2세 이하 어린이를 모두 학살함.
     ○ 19-23절 : 헤롯 왕 사망 후, 애굽으로부터 귀국하여 나사렛에 정착함.


   ⊙ 누가복음 2장의 내용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1-20절 : 베들레헴에서 주님이 탄생하시고 목자들이 경배함.
     ○ 21절 :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음.
     ○ 22-38절 :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고 시므온과 안나의 축복을 받음.
     ○ 39절 : 율법의 모든 조건을 필하고 나사렛으로 돌아감.


이 문제에 대해 질문자와 같은 의아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관한 기록은 마태와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고 그것도 두 사건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상황인지라 앞뒤 연결이 제대로 안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동방 박사의 베들레헴 방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입니다. 이미 질문자님께서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박사들의 방문 시기를 단순히 별의 나타난 시기와 여행에 소요된 기간 등으로 추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확실한 힌트가 성경 본문에 두개나 있음을 대부분의 신자들이 놓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1을 봅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경배한 장소가 마구간(stable)의 구유(manger)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house)이었습니다. 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oikia는 주로 집안, 일가족이란 뜻으로 쓰이며 거주지(집)로도 번역되는데 마구간이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또 본문의 아기는 신생아나 갓난 유아(infant)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아이(child)로서 사용된 헬라어는 paidon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2:7은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Manger)에 뉘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16절)와 “이 아기에 대하여”(17절)에 사용된 아기(babe)는 신생아를 뜻하는 헬라어 brepho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에 대해 헬라어를 몰라도 영어 역본만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KJV, NASV, RSV, NIV등 모두가 마2:11은 house와 (young)child로 또 눅2:16은 전부 manger와 babe(bab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동방 박사 경배 사건은 마구간에서 신생아를 두고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마구간이라는 명시적 설명이 없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가축 먹이나 물을 담아 두는 구유가 들판에 있었기에 아기 예수가   출생한 곳이 베들레헴의 들판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아기 예수가 출생하여 한참이 지난 후, 즉 성전에서 할례(눅2:21-40)를 마치고 일반 가정 집으로 옮긴 뒤 1-2살 정도 사이에 일어난 것입니다. 헤롯이 2살 미만의 아이를 살해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헤롯이 조금 여유 있게 2살까지 아이를 죽이라고 한 이유는 동방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시기를 물어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는 기간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마2:7) 헤롯은 틀림 없이 박사들에게 언제 별이 나타났으며, 얼마 동안 준비해서, 언제 출발해서, 어디를 거쳐서, 얼마나 걸려 도착했는가 자세히 물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헤롯의 영아 살해 사건에 관해선 Macrobius가 지은 ‘축제’(Saturaalia)에 “아구스도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 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 하면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별이 처음 나타났을 때 출생하여 동방 박사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자란 후입니다. 처음에는 호적을 하러 왔던 요셉과 마리아가 장남이 태어나자 아마도 아기 교육을 위해 혹은 경제적 이유로 그래도 시골 나사렛보다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베들레헴 고향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구해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수인 요셉은 어디 가서도 쉽게 생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75마일,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은 5.5마일,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300마일임)

애굽으로 피신해서도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 곳곳에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어 타지의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그럭저런 살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역사가 필로에 따르면 당시 애굽에는 약 백만의 유대인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함) 또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도 베들레헴(혹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려다 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나사렛으로 방향을 바꾼(마2:12) 사실을 보건대 동방 박사 방문 때에 베들레헴에 정착하려 집에서 거주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유년 시절의 큰 사건을 그 발생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이렇게 됩니다.

 

1. 아기 예수가 출생하여 구유에 누여지고 목동들의 방문을 받음.(눅2:8-20)
2. 아기 예수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눅2:21)
3. 결례를 위해 성전에 올라가 선지자들을 만남(눅2:22-38) 남자 아이의 경우 40일이 지나야 결례를 할 수 있음,
4.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음(예수의 나이는 최하 6개월에서 2살 미만으로 추정)(마2:1-12)
5. 애굽으로 피신(마2:16-18)
6. 헤롯의 2살 미만의 영아 살해 사건(마2:16-18)
7. 예수의 가족(The Holy Family)이 애굽을 떠나서 나사렛으로 돌아 옴(마2:19-23, 눅2:39-40)
8. 성전에서 소년 예수가 발견됨(눅2:41-52)

 

기록된 성경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