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골로새서

[골3:16] 생명걸고 감사하라 / 김장환목사

'코이네' 2018. 3. 20. 22:40

생명걸고 감사하라

(3:16-17)

설교 : 김장환 목사

 

먼저 시련중에도 감사하는 삶이 필요함을 생가해 보려고 합니다. 흔히들 병든 조개만이 진주를 품는다고 말합니다. 불에 달군 쇠가 단단하듯 시련을 격은 사람이 보다 큰 성공을 약속 받는다고 하죠.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하여 광고 카피를 맡겼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죠. 소질만 발견된다면 채용해서 교육을 시킨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한 학생이 작성해 올린 광고문안이 기존 카피라이터보다 훨씬 좋았던 것입니다. 광고회사 사장은 그 학생을 만나보고 당장 정식 채용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보수도 후히 주었죠. 그리고 나서 계속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곧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재질이 특출한 것으로 인정했던 그가 회사에 정식 채용되자 그토록 샤프하고 독창적이던 카피가 나와주지 않는 것이었죠. 어째서 그럴까? 아르바이트 할 때보다 여건도 나아졌고, 작업환경도 좋아졌을 텐데. 그 학생에 대한 기대가 컸던 때문에 광고회사 사장은 그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학생의 생활환경을 세심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 찌그러져 가는 판자 집에서 살고있었고 부양해야 되는 가족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광고회사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환경에 있었던 것이죠. 이를 알게 된 사장의 뇌리에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사장은 학생을 불렀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오늘부터 예전처럼 아르바이트로 우리 일을 해주게. 좋은 카피는 언제나 받아들이지.” 이렇게 해서 학생은 다시 아르바이트로서 광고문안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은 자연 예전처럼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자 과연 이 학생의 그후 일은 어찌 되었을까요. 학생은 다시 전과 같은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일본 상업계에 손꼽히는 카피라이터로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시련의 쓰라림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탄생되었듯 인간에게 있어 시련은 더없이 소중한 자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어려울수록 더욱 삶에 대한 자세가 진지해지는 것이지요. 이 법칙은 믿음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고난은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한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어도 하나님의 뜻을 믿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가장 성숙한 표지를 감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 그래도 감사합시다.

 

신앙의 제일 큰 덕목은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 골3:16에 보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권면하고 하는 모든 일이 감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 이것이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을 배우는 최종적 목표입니다. 지난주에는 수원에서 천국까지란 말씀을 전했는데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증거가 무엇이냐면 감사와 찬양하는 삶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며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아니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 목사의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래도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설교 중에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얘기를 귀에 담아 두었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하여야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고 감사의 기도를 해야 기도에 힘이 있고 응답이 옵니다" 하지만 그 여집사님은 한숨만 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 나도 남편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남편은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데 어떻게 집은 찾아 왔는지 집까지 와서는 문앞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렇게 쓰러진 남편을 침대에다가 누이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여집사님은 이런 남편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잠자리에 들기전에 기도를 하려고 하면 신세 한탄만 나오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서 울화가 치밀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스런 기도를 했습니다. "왜 나를 저런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서 이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이렇게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아 그런데 낮에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가 다시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만이라도 남편을 위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저 감사하다고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그때 성령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생각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코를 골고 자고 있는 남편이라도 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저렇게 취해있어도 용케도 집까지는 찾아와서는 문간 앞에서 쓰러져 주는 것도 고맙지 않느냐", "그리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와서 주일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으니 집봐줘서 교회 가기 좋지 않느냐"는 등등의 생각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생각나는 대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편 마음속에서는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목이 말라서 잠을 깨서 눈을 살며시 떠보니 아내가 옆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웃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때 남편이 "뭐가 그리 좋아서 웃느냐"고 묻습니다. 이 지혜로운 집사님은 대답하기를 "당신같은 남자하고 사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웃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한디에 남편이 감동을 해서 약속을 합니다.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 줄께" 여러분 성도의 삶에 우연이 있겠습니까? 남편을 위해 10년을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었는데 "그날 단 한번의 감사의 기도가 10년의 소원을 이루어 준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도 감사하는 신자에게 기쁨이 임합니다. 천국이 임합니다. 천국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삶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 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4-7)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그래도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무슨일에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사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야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조건이 없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신앙의 수준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앞의 감사가 초등학생의 감사라면 뒷부분의 감사는 대학생의 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니까 또 무엇을 하든지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낸 신혼부부가 들뜬 기분과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며, 신혼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받아 마신 단 한잔의 술이 신랑의 기분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풀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서 강변도로를 질주하던 차가 커브 길에서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뒤따라오던 친구들과 주변 차량의 도움으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신랑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허탈감에 빠진 신부는 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던 목사님을 찾아가서 항의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 계신 건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혼여행도 떠나기 전에 저는 구사일생으로 살기는 했지만 신랑은 데려가시고 이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축복으로 결혼식을 마친 저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잠시 침묵을 지키시던 그 목사님이 이렇게 권면을 하였습니다. "자매님의 슬프고 아픈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이 그와 같은 사고의 현장에서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 나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 보셨습니까?" 목사님의 권면이 끝나기도 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는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목사님은 따라나가며 "자매님,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반드시 감사하셔야 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도망치듯이 나온 그녀는 이제 삶의 소망도 즐거움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타락의 길 밖엔 없었습니다. 술집 잡부로 전전긍긍하며 삶을 보내게 됩니다. 지나친 음주와 찌든 담배로 인하여 그녀의 몸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종합검진 결과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잊어버렸던 외침이 되살아났습니다. "자매님,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녀는 다시 그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지나간 삶을 눈물로서 이야기하여 하염없이 울기만 합니다.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죽게 될 몸이지만 그래도 살아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한부 인생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회복한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그 사고를 당하였을 때 무슨 일에도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더라면 그녀의 삶은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을 누렸을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역경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더하여 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그러면 지옥 같은 상황도 천국으로 변해 버립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23)고 했습니다. 무슨일에나 감사할 때 고난은 끝이 나고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말에나 일에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어떤 삶에도 감사합니다.

 

가끔씩 가다가 30여년전의 우리 모습의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보게 됩니다. 너무나 달라졌고 축복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한끼를 건너뛰기 위해서 배 꺼질까봐 일찍 자고 아침을 거르기 위해 늦게 일어나던 우리 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는 별로 감사할 것이 없어"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줄어든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감사가 줄어들었습니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살아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인간도 더욱이 신앙인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죄로부터 멸망당할 자리에서 구원받고 그리고 땅에서 예수그리스도께 접목되어 날마다 그 도우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지 않게 된 지옥, 영광으로 가득찬 천국에 들어갈 권리, 이 모든 것들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것이 아닙니까?

 

감사해야 할 때가 언제 입니까? 바로 오늘입니다. 지금 이시간 입니다. 바로 이 순간을 감사할 줄 모른다면 내일 역시도 감사할 거리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0이 넘은 여류 작가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군대 갈 나이가 되어 신체검사를 받는데 몸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진단결과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강인한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연약한 여자요 자식에 대한 사랑에 몸부림치는 여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신앙이요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에미보다 먼저 가려는 자식을 품에 안고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왜 먼저 데려가십니까? 살아계신다면 한 말씀만 해주십시요"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들도 죽었습니다. 장사지내고 난 후 그는 아들은 잃었지만 귀중한 것을 얻었음을 알았습니다. 생명의 유한성과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묵묵부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부활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뜬 것입니다.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다시 썼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여류작가 박완서 씨의 "주여 한 말씀만 하옵소서"란 자전적 소설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 단계 더 높여서 어떤 삶에도 감사하다고 고백합시다. 17절에서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평강이 임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3:15)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사 믿음 없는 눈으로 보면 짜증나고 불평스럽고 또 억울한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차를 들이받고는 뺑소니치는 사람을 잡지 못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거나, 보증을 서 주었다가 경매에 들어가서 재산이 몰수당해서, 아니면 갑자기 원치 않는 병이 생겨서 등등. 하지만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왜냐구요 그것이 신앙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안에서, 경영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계획 속에서 보게 되면 모두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사하는 성도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아니 감사하는 성도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