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골로새서

[골3:1] 삶의 질을 높이라 / 김장환 목사

'코이네' 2018. 3. 20. 22:33

삶의 질을 높이라

(3:1-4)

설교 : 김장환 목사

 

한 연구 발표에 따르면 죽음에서 기사회생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다고 합니다. 가이드 포스트에 실렸던 간증입니다. 198012월 댄 크라이너트는 다시 태어납니다. 18세인 그의 심장은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병으로 피폐해진 심장박동은 거칠게 가슴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한 시간 내로 병원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경찰 차가 그를 태워 비행장으로 달렸습니다. 전세 비행기에서 내리자 다시 경찰 차가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는 청취자들에게 잠시동안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막 수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옆에서 말했습니다. "너를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내놓겠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수술 뒤 며칠간 그는 혼수상태였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그는 눈을 떴습니다. 중 환자실에 들어온 가족들은 여러 사람들이 보내준 격려의 카드를 전달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카드는 글자 그대로 감동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도움으로 카드를 개봉하고 하나씩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들의 기도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중서부 우체국 소인이 찍힌 카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편지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목이 메어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왜 그러니?" 그는 쉰 소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남편과 나는 당신을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아들 로이드의 심장을 기증했습니다. 당신이 그 애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그의 일부가 당신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음으로 우리는 그를 잃은 슬픔을 훨씬 덜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사랑을 보냅니다"

성탄절 아침에 그는 하나님이 왜 세상에 오셔서 죽어야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주고 자신의 심장을 넣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이 심장의 힘으로 나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심장이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힘을 알고 믿습니다. 로이드처럼 아름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심장으로 새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가슴은 그 힘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심장의 비꺼덕거리고 불규칙하게 꽝꽝거리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아름다운 꿈으로 가득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이 주어진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제 다른 잘못된 길을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도 없는 일 일 것입니다. 그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댄 크라이트너 뿐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살았다는 것은 남은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며 뜨겁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1.위에 것을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3:1)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우리에게 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속에 자신의 심장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우리가 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구원을 주신 것은 천지 만물 중 감사할 줄 아는 피조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받은 사람은 감사의 표시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유도 이 때문인 듯 싶습니다. 자신의 삶이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를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관계 때문에 상처를 입고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며 삽니다. 성경은 그것이 위엣 것을 찾는 삶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옛날 죄 속에서 방탕하며 진노의 자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절이 밝히는 대로 "죽었던"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며 이 세상 풍속과 사탄을 쫓아 살아" 날마다 실패하여 형벌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자가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전달되어진 그의 생명을 감사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절망의 순간에서도 삶을 진지하게 영위해 나갑니다. 진지한 삶이란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법이 아니라 위엣 것을 찾는 삶입니다. 위엣 것이란 땅의 것, 죄 된 것만을 좇던 삶의 반대되는 삶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최근에 읽은 소설의 제목입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를 통해 아들을 잃은 아픔을 글로 쓴 이가 그이 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박완서씨입니다. 그녀는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던 198825살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다섯 자식 중에 하나였지만 아들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그 충격을 일기로 모아 놓았다가 출판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활자화되어 최근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 놓았던 것입니다. 처음 그녀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절규하듯이 그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은 제아무리 독한 저주에도 애타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었고 오히려 잠잠하기만 한 하나님을 향하여 급기야 한 말씀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대답이 없었고 결국 그 아들 원태는 255 개월만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무심한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실수를 했다고 치부하며 잊으려 애썼지만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던가요? 그러나 한참이 지난 후에 그녀는 사람의 죽음 앞에 아무 말이 없는 그 분의 전능하심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결국 고난을 감당하기에 이른 자신의 심경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 자신의 경우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더불어 살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고통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 안에서 그 고통을 이길 힘을 얻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의 생명력을 체험할 때 삶의 질이 달라져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위엣 것을 찾는 삶입니다.

2.땅에 것을 찾지 말아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 위에 것만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2) 땅에 것을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질을 높여 사는 것입니다. 죄만 짖고 살던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찬송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 떠나가면 내 생명 헛되네...."그렇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성도! 이보다 더 비참한 성도가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예수를 잃어버리고 다닙니다. 예수의 부모들이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다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 길을 찾아 다녔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를, 십자가를, 골고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위엣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아래의 것을 찾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죄 가운데 방종하며 살지 않기 위하여 한 걸은 한 걸은 여러분의 삶의 질을 업 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람을 업 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요사이 컴퓨터 없이는 조금도 생활 할 수 없는 시대임을 실감 합니다. 10년 사이에 컴퓨터는 286에서 시작하여 386, 486, 586 그러더니 펜티엄급으로 그리고 이제는 686급으로 컴퓨터가 점점 업 그레이드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신 기종이라고 그러더니 어느새 보면 신형의 속도바른 컴퓨터의 광고가 나옵니다. 그런데 꼴불견이 무엇이냐면 펜티엄급 컴퓨터를 가지고 고작 한다는게 286시대에 하던 게임이나 오락을 하는데 그 비싼 컴퓨터를 온 종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업 그레이드 되었는데 사람은 업 그레이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엣 것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 여전히 땅에 것만 추구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업 다운 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을 업 그레이드 하면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캐롤 버리스라는 주부는 근육무력증에 걸립니다. 이 무서운 병은 온 몸에서 점점 근육이 무력해져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40대 초반에 6명의 자녀를 두고 변호사 사무실의 비서요 무용학교 원장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충만하고 풍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의 모습은 끔찍하게 변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모두 빠지고 스테로이드 과다투여로 얼굴과 몸 전체가 부어 있었습니다. 마치 낡은 담요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기도를 하면서도 말입니다. 부활절에 성가대원들이 그녀의 집에 몰려 왔습니다. 그들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통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 후 다시 무력해지면서 비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나도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것은 다 무엇인가? 그냥 헛것인가? 내가 신자로 그렇게 믿어야 하겠는가? 왜 백부장 처럼 살아 움직이는 신앙을 갖지 못하는가? 하는 그런 자각이 오자 우선 자리에 누워있지 말아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일어나서 움직이기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거기서 물러 설 수는 없었습니다. 처절한 싸움이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멸감의 어두운 그림자를 물리치면서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몸이 불편하고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라고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지 못할 것은 없다고 자신의 삶을 업 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이윽고 그녀는 병 때문에 어둠에 빠진 다른 이들을 방문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집이나 요양원이나 병원의 환자를 찾아 용기를 주려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진지하게 위엣 것을 추구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전에 모르던 새로운 영역이 열립니다. "내 생명이 꺼질 때까지 사랑하고 생명을 나누리라"고 결심한대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병이 완전히 다 나아 버렸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이 병을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업 그레이드 하십시오. 삶의 질을 높이십시오. 그러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여 그 생명을 느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설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보혈을 빼 버리고 봉사하는 분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심장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와 골고다와 그 보혈의 공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3.우리가 죽었습니다.(3)

 

그러면 왜 사람들이 위엣 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땅에 것을 다시 찾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 이유가 나옵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 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3). 이 생명은 잠시 감취 었다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나타날 생명입니다.

영국의 국회의원 중에 헨리 파우스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 20살 때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아버지의 실수로 눈이 다쳐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딸을 일생동안 불행하게 만든 아버지의 충격은 더 컸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는 죽으려고 합니다. 그때 그들은 낙심가운데 소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딸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향하여 딸이 먼저 소리질렀습니다. "아버지, 이제부터 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나는 곧 읽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일어 설테니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녀는 예수 안에 감추어진 자신의 생명을 본 것입니다. 잠시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주실 그 때에는 온전한 영광의 모습 아니 그보다 더 향상된 모습으로 주실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새로 배우고 읽혀서 국회의원의 자리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그 소원을 가슴에 간직하고 이루기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믿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 딸은 좌절과 절망의 자리에 일어서서 마침내 국회의원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헨리 파우스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헨리 파우스트의 생명을 감추어 두신 주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인 크리스챤이라는 사람이 성경해석가의 집에 들어갑니다. 집에 보니 어떤 사람이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에 자꾸 찬물을 끼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벽난로에 찬물을 끼얹을수록 불길은 더욱 크게 치솟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한 사람이 벽난로 뒤에서 계속 기름을 붓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 계속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타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더욱 향상된 믿음의 삶을 살려고 애 쓸 때, 사탄은 마음의 열심을 식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핑계와 구실을 만듭니다. 빨리 피로감을 느끼게 합니다. 좀더 눕고 좀더 자게 합니다. 좀더 편안해지게 합니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딴 생각을 하게 하고 집중이 되지 않게 만듭니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하므로 열심히 식어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열심히 식어질 때 우리의 소원도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업 다운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땅엣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이 다시 식어져 갈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심의 기름을 계속 붓고 있습니다. 우리를 더욱 업 그레이드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까지 우리를 지키십니다. 계속해서 위엣 것을 찾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질을 더욱 높여 이제 남은 생은 오로지 위엣 것만 추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땅엣 것을 찾던 삶에서부터 이제 위엣 것을 찾는 삶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위엣 것이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신령한 것을 바라보고 좇는 삶입니다. 그러나 땅에 것을 좇는 삶은 음란과 호색과 쟁투와 술 취한 삶입니다. 본질적으로 악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이제 위엣 것을 찾고 좇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영을 좇아 영의 열매를 이루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을 좇아 살면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의 길을 좇아 살면 우리 삶의 질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영의 소욕을 좇아 우리의 믿음을 업 그레이드 시켜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으면 결코 영을 좇아 사는 삶을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모든 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날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므로 사람의 질을 높이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