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천국까지
(마7:13-14)
설교 : 김장환 목사
한 때 베스트셀러 였고 가끔 신문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책의 제목이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책에 나오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김우중 회장은 그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대그룹의 총수가 되기까지의 역경과 성공을 강한 필치로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내용 중에는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 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야기며, 문제아요 건달이었던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계를 상대로 내 집 드나들 듯이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는 기업가로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글을 쓰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비젼이 이렇게 그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비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비젼입니다. 이 비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보라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그 비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환상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땅에서도 물론 할 일이 많고 육신을 위하여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지만 우리는 영원한 천국 내세를 위해서도 지금부터 비젼을 가지고 준비하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우중 회장의 책제목을 떠올리면서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천국은 영원하고 갈 사람은 적다”
1.수원에서부터
저는 오늘 영적인 길을 가는 위대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누가 위대한 사람들입니까? 제가 목사 안수 받은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종류의 신자들을 보았습니다. 산기도 파부터 시작해서 예언 파들, 귀신 파들, 기타 유사 기독교 단체들, 또 율법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해방신학자들, 세계를 다니며 별별 신앙을 가진 사람을 다 겪어 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천국 가는 길을 나름대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단체에서는 천국 가는 길을 다르게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이러한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히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빠집니다. 사이비 일 수록 열심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열심히 간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좁은 길, 그리고 좁은 문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문(The Door 요10:9)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멸망의 문입니다. 수원에서 천국까지 가려면 예수님의 길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로 즉 피의 복음을 통해서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자기의 열심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누가 천국 까지 이르러 큰 인물 될는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사람일까요? 재능이 많아서 여러 가지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일까요? 노래 잘하고 잘 가르치고 지도력 있는 사람들일까요? 이런 분들이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참으로 유익한 덕을 줍니다. 하지만 재능이나 외모로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으로만 갑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 만으로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되는지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먼저 기억하셔야 할 사실은 천국은 바로 이곳 오늘 우리가 딛고 있는 수원으로부터 출발해서 천국까지 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려고 모이신 여러분들은 한결 같이 공통점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 가는 길을 알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설교는 당연히 천국 가는 길을 말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려면 우리가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사실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천국 가는 모든 사람은 그 출발점이 자기가 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수원중앙교회가 있는 수원에서는 당연히 수원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무론 다른 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천국 가는 길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도 태어 나지 않고 곧장 천국에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은 가장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종로 성결교회 장로인 정근모 장관은 경기 고등학교를 수석 입학하였습니다. 정장관은 4개월만에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였는데, 신부전증으로 고통을 받는 아들에게 콩팥을 떼어준 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그분은 말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을 믿는 사람들은 한없이 불쌍한데, 사람의 눈으로는 빛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 파장이 긴 적외선을 볼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진리라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과학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는데 자유, 사랑, 죽음, 생명, 구원, 하나님의 은혜를 과학의 이름으로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진리에도 서열이 있습니다." 참 멋있는 말입니다. 사랑을 과학으로 실험할 수 없다는 것을 멋지게 설명한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생각하기를 ”저 분은 과학자요 학자로서 부름을 받으니까 성경을 보는 눈도 저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자는 과학자의 자리에서 부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예술가였던 자리에서 또 문학가는 문학가였던 자리에서 모두 다 하나님의 복을 듣고 천국을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자기가 딛고 서 있는 곳에서부터 천국의 걸음을 시작합니다. 이 천국으로 가는 첫 걸음은 물과 성령으로 가듭나는 것입니다.(요3:5) 물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첫걸음은 예수님 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길(The Road)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음으로 다른 길로 가면 안됩니다. 주님의 제자중에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 같은 이는 어부였는데 그들이 첫발을 내 딛은 곳은 예루살렘의 한 작은 어촌, 갈릴리 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들이 갈리리에서부터 주님을 만남으로 위대한 삶이 시작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있는 곳에서부터 천국까지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 할 사실은 천국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천국으로 간다고 다 가는 게 아닙니다. 잘못 출발하면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사망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런 멸망과 사망의 길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멸망과 사망의 길은 의외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른 길은 찾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합니다. 문이 너무 작다는 것이지요. 길이 너무 좁고 협착하다는 것이지요. 13절에 보니까 그 문이 좁은 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영원하고 넓은데 갈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찾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 찾아서 멸망의 길, 사망의 길인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세에 대한 열망과 비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멸망의 길, 사망의 길로 가서 결국 지옥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가는 길을 찾고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좁고 협착하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보기에 미련하게 보인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의 이성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방법으로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러한 고민에 빠져 있는 고린도교회에 말하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폐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고전1:18-19)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만 천국 간다는 것을 믿지 못할까요? 그 이유가 사람들의 자기 성향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ㅛ,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여기에 보시면 사람들의 성향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진리를 차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기적”과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결코 이 두 가지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진리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천국가는 길이라는 것이 매우 좁게 보입니다. 협착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점에 굉장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기적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님이 하셔서 우리를 천국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좁다는 것을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그리하여 자칫하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왜냐면 천국 가는 길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구라도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만 하면 됩니다. 그 이외에는 우리에게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휘황찬란하고 멋있고 기적적이라면 찾는 이가 많겠지요. 그러나 십자가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노력을 좀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길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른 길은 멸망의 길이요 사망의 길입니다.
우리가 내 딛는 첫 발은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순간 하늘에서 빵파레라도 울려퍼지고 천사들이 나타나 춤을 추는 것이 보여야 할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이 좀 싱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삶은 사람의 영혼 속 저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죄가 예수 십자가의 피로 씻어지고 구원의 길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제 수원을 떠나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2. 수원을 뒤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여 하루빨리 구원받아 이 수원을 떠나 가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곳은 멸망할 곳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심판 받기로 선포되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물론 당장 이러한 심판이 온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죽음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는 영원한 삶을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후 79년 죄악의 도시 폼페이가 베수비우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거대한 용암으로 인해 매몰될 때, 그 용암을 피해 도망한 사람들 중에 한 부인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값진 보석들을 훔쳐서 한아름 안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품에는 가락지와 팔찌, 목걸이, 금고리 등의 많은 보화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녀는 그 도시를 빠져 나오다가 비같이 쏟아지는 화산재에 덮혀서 보석을 껴안은 채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도시에서 건축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다가 보석을 껴안은 채 죽어 간 여인의 화석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약 2천년 전의 이 여인의 비운은 경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땅에 있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심판을 벗어 나지 못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금은 보화가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원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던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창12:1) 그 다음에 가야할 곳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이란 ~부터 ~에게로입니다. 떠나는 것이 있어도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들의 가족이 가려고 했던 곳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곳까지 곧장 가야 합니다. 마치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로 가고 있다면 가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그 곳에서 기거해서는 안됩니다. 휴게소에서 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두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얻기 위해서 지금 내가 이 곳에서 해야할 일은 이 세상을 뒤로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해하면 염세주의자가 되라는 것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얻기에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마라톤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경주입니다. 항상 평탄하게 갈 수만 없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고, 목이 마르고, 지치고,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뒤돌아 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곳은 골인지점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고 안락한 곳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에는 기근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이미 일곱 족속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환경은 좋았지만 그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전쟁을 해야 했고 옛사람을 몰아내야만 했습니다. 결코 신앙생활은 뜬구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귀를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적당히 살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업을 가진 이유가 무엇인지, 결혼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사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면 후에는 비참한 결론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고 아브람은 믿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3.주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기억 해야 할 것은 이 길은 이제 우리혼자 가는 길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걸어갔던 것과 같이 엠마오의 길입니다. 주님이 함께 동행하여 주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 길이 되시고 또 그길에 동행하여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서시로 유명한 기독 시인 윤동주는 노래하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역시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수원을 떠나 천국으로 가는 신자들의 삶엔 신이 함께 합니다. 성신께서 함께 합니다. 마치 살아 계신 예수님같이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와 생각을 나누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며 외로울 때는 위로자가 되시면서 무사히 천국에 이를 때까지 동반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있는 길이 천국가는 길입니다.
바로 에데 리컨베커(Eddie Rickenbacker)선장과 젊은 두 선원이 이런 체험을 간증합니다. 그들은 난파를 당하여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작열하는 태양과 그로 인한 목마름과 밤이면 추위와 그리고 상어 떼들의 극성이었습니다. 탈수와 기갈, 뜨거움과 상어의 공포 때문에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몇 일이 지나자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이커 선장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불이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하루하루가 죽음 같은 공포의 연속이었지만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갈매기가 날아와서 선장의 머리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몇 일만에 그 갈매기를 잡아서 요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미끼로 삼아 낚시질을 하였습니다. 계속 끼니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비가 처음으로 내렸습니다. 그래서 물도 마셨습니다. 불볕 더위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였고 더욱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두 주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신문기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그 엄청난 공포와 역경, 배고픔과 뜨거움, 무서움과 초조함을 이겼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장의 대답은 꼭 한 마디 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 말은 어려울 때에 주님이 그들과 함께 동해하여 주셨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천국 가는 길이 어려워도 그리고 무서워도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동행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저는 이러한 간증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천명도 넘게 알 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적어도 수원은 출발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출발한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수원에만 여러분의 관심이 머물러 있다면 얼른 일어나십시오. 주님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 길은 비록 미련하고 찾는 사람이 적지만 생명의 길이요 또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람은 일생에 세 번 태어납니다. 첫째는 모태 속에 태아로 탄생합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어머니의 그 안락한 터전에서 삶을 허락 받은 시간은 270일 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태아는 자궁에서 나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도 허락 받은 시간은 평균이 70이요, 강건한 사람이라도 80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때가 되면 또 다시 내세로 가야 합니다. 다음 세상은 둘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영원천국이요, 또 한 곳은 영원지옥입니다. 뱃속의 태아가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듯이, 사람들 역시 내세가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오신 주님이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나 있는 곳에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겠다” 이 약속을 믿는 자는 이제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다는 것은 이렇게 천국 가는 길로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이 세상으로부터, 천국까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 가운데서 부름을 받아 내세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설교를 통하여 여러분은 수원에서부터 출발하여 천국까지 이르게 된 사람의 복된 자리에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아니 아직 그 길에 접어들지 못하셨다면 이 시간 예수님을 구원주로 마음에 받아 들이십시오. 그러하면 여러분도 천국가게 될 것입니다.
byㅣ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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