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료

진정한 용서와 사랑 그리고 망각

'코이네' 2017. 6. 11. 00:08

진정한 용서


 어느 날, 어린 제니가 사는 집 앞 골목에 큰 시멘트 트럭이 와서 회색 빵 반죽 같은 젖은 시멘트를 가득 부어 놓았다. 이어 트럭 안에서 굵은 팔뚝을 가진 아저씨 둘이 나오더니, 젖은 시멘트를 고르게 발라 새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길을 다 만든 아저씨들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인 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제니에게 무서운 눈초리로 말했다. 너 이 시멘트가 마를 때까지 절대로 만지거나 건드리면 안 된다! 알았지? 아저씨들은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회색 빵 반죽처럼 보이는 젖은 시멘트를 만지고 싶은 유혹은 제니에게 너무나 큰 것이었다. 딱 한 번만 손가락으로 찔러 봐야지. 아무도 모를 거야! 손가락에 와 닿는 시원한 시멘트의 감촉이 너무 좋아 정신 없이 손가락으로 찔러보던 제니는, 시멘트 길 위에 자기가 만든 여러 개의 구멍을 보고 깜짝 놀라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팔뚝이 굵은 아저씨가 제니를 잡으러 올 것 같았다.

 

 저녁 기도 시간에 제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예수님은 내가 어떤 잘못을 했던지 다 용서해 주시죠? 그럼! 엄마와 손을 잡고, 흐느끼며 기도를 마친 제니는 걱정스럽게 다시 물었다. 엄마! 내가 만든 시멘트 구멍 자국이 말라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내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시면 어떻게 하죠?그러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때, 우리의 잘못을 다 잊어버리신단다!

 

무한정의 용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내게 죄를 범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어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덧붙이셨다.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즉 무한정으로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라기보다는 축복의 권고로써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 의학은, 사람이 분노나 원한, 또는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가질 때, 그 감정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혈압을 상승하게 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우리 몸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밝혀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명령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주신 지혜로운 충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 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용서해 달라는 기도는 과연 얼마나 응답을 받을까?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아니, 겉으로 혹은 말로만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한복판으로부터 진정으로 상대방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용서를 하는 것과 용서를 받는 것이 가능한데... 용서하되, 우리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용서 같은 진정한 용서를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진정한 용서 


 진정한 용서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용서란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며,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란,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시 87:5,6)는 것을 알고,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총체적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용서를, 상대방이 여전히 잘못했다고 판단하면서 그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넌 잘못했지만 그래도 난 너를 용서해! 이렇듯 먼저 판단하고 난 다음에 용서하는 것을 용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낮은 수준의 용서이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높은 수준의 용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판단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감싸는 것... 원한도 없이, 불만도 없이, 불평도 없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인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우리의 에고가 생생하게 존재하는 한, 우리는 용서할 수도 없고, 상대방의 잘못을 잊을 수도 없다. 만일, 우리가 용서를 하려고 애쓰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며, 단지 노력을 통해서 자신을 억누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용서를 하기 위해 억눌러진 자아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 자기 주장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랑과 망각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는 말씀보다 더한 명령, 곧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용서와 사랑은 함께 가는 것이다. 사랑은 잊어버림과 함께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를 살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끊임없이 미워하며 산다. 용서하지 못하고, 잊어버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상처와 손해를 입힌 사람들의 소행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산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우리는 현재에 살아야 한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속에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를 잊을 수도 없고, 누구를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과거를 다 잊어버리시고 망각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현재의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처럼, 과거를 버리고 현재에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고후 5:17)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사랑이며, 사랑은 망각이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취급하신 것처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재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과 눈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마음의 변화와 거듭남을 요구한다. 겉으로 만의 용서와 화해가 아닌 진정한 용서를 하려면, 우리는 그 영혼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마음까지 가져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를 끼치고 괴롭게 했는가를 생각할래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망각의 상태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아름다운 사랑의 망각의 상태에...

 

 타락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게 과연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나님처럼 용서하고,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처럼 망각하는 것이?...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내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용서할 수 없는,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랑할 수 없는 육신의 마음, 자아를 버리고 진정한 용서가 가능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진정한 용서! 그것은 우리의 육신의 마음이 죽고, 우리의 속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온전히 변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용서를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용서를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과 우리의 얼굴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출처 : https://goo.gl/uP5hcu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