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스라 에스더

[에4:14] 기회 그리고 축복

'코이네' 2017. 6. 10. 23:38

기회 그리고 축복

4:14-16

 

 

시간 관리에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첫째로, 시간 파괴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시간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남의 시간까지 파괴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 술에 취하는 사람들, 시기, 질투, 증오, 원한... 이런 것들이 시간을 파괴합니다. 또한 그 파급 결과는 물론 후속 결과까지 따르기에 결국은 많은 파괴를 초래합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그 아까운 시간을, 그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남의 시간까지 말입니다.

둘째로, 시간 소비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일한답시고 시간표를 만들고, 계획표를 만들고, 소위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짭니다. 준비하는 게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약속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뭘 한다, 뭘 한다 해 놓고는 정작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저 생각만 하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용같이 계획하고 뱀 꼬리 같이 실천하는 용두사미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시간 소비형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생각만 어벙벙해 가지고 말만 많습니다.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한 시간 창조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뜻을 알고,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대하여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부름이 있습니다. 사명 적으로 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크신 창조 역사에 내가 가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사역에 내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 창조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최악의 시대에서 최선의 세대를창조해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1. 역사의 현장

 

우리에게 주어진 에스더의 사건은 아하수에로왕 때 일어난 하나님의 섭리 적인 역사입니다. 절세의 미모를 지녔던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의 왕후가 된 이후, 전 페르시아에 산재한 유대인들은 운명적인 죽음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권좌에 앉은 아하수에로왕의 악한 신하 하만의 유대인 멸종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아하수에로왕은 하만이 모든 악법에 서명을 하므로, 아하수에로왕 12년 아달월 13일에 전 페르시아 제국에 산재하는 유대인을 전멸하도록 법령이 발표되었습니다. 왕은 그의 반지로 어인을 찍어 이 법령의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였습니다(9:1). 이 법령에는 유대인의 출신으로 왕후가 된 에스더도 죽임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유대인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위대한 창조적 삶을 통하여 위기에 처해 있는 자신뿐 아니라 하만이 만들어 낸 모든 유대인의 죽음의 음모를 들추어내므로 아하수에로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어인이 찍힌 유대인 학살의 악법을 중지하게 하고, 전 페르시아 제국의 관리들에게 그 법령 집행을 중지하도록 사자들을 급파하는 대 역전의 드라마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죽음에서 다시 사는 생명의 해방을 받게 하고, 유대인의 역사 중에 부림 절이라고 하는 새로운 절기를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2. 위대한 생의 비결

 

1) 모르드개는 상황을 잘 포착했습니다

궁중 문지기요, 유대인이요, 에스더 왕후의 삼촌이었던(2:15)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전달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4:13-14) 하였습니다.

여기 <이 때에...>,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한 이 때는 어떤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민족 수난의 때요, 민족 멸망의 대요, 민족 구원의 때였습니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왕후에게 이르기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라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은 시간이라고 하는 창조 질서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낮과 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심음과 성장과 거둠과 인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날 때와 죽을 때, 약할 때와 강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에 대하여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라고 하시면서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만사에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에 대한 때를 잘 분별하여야 인생은 성공적으로, 신앙은 평안함으로, 사랑은 열매 맺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민족 수난의 시기에 살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시기에 출생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자기가 일해야 하는 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사는 사람이 였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유형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 자신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결정적인 싸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90:12)”. 그것은 우리들의 날들이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도록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90:10). 바울은 말하기를 <지혜롭게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4:5, 5:15-17). 이 말은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게, 내용 있게 살라는 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주의 뜻대로 선용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바로 붙잡는 자는 세계를 붙잡는 자가 됩니다. 우리의 생애를 결정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수단입니다.

2) 에스더는 자기의 직분을 선용하는 자입니다.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에게 그가 받은 <왕후>라고 하는 위를 얻은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본문 414절 중에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지금 모르드개는 그녀가 페르시아 제국 군주의 왕비가 된 것은, 그 왕후의 위를 조국 유대인의 구원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 페르시아 제국 군주의 왕비로 연락하고, 영예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된 위를 써야 될 때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기독 신자들에게 주어진 직함과 달란트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정확하게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요셉의 애굽 총리직이 그러하였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에 미리 보내어 총리게 되게 하신 것은 세계적인 흉년을 만날 때 가나안의 아브라함 자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러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하였습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시기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직분을 최대한으로 선용할 때, 그 사람에게는 바로 인생을 최고로 효율적으로 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이 시대에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모르고 하루 세끼 밥을 꼬박 꼬박 찾아 먹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일에 욕심을 내어 다른 길로 가게 되면 평생 후회와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명감의 사람입니다.

 

삼촌 모르드개로부터 이 소식을 전달받은 에스더 왕후를 보십시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며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4:16)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조국 유다를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일사 각오를 나타낸 말입니다. 지금 에스더는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왕후의 위를 조국 유다를 구원하는 일에 모조리 사용하려고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죽음을 불사르는 사명감입니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 왜 왔고, 왜 살고 있으며, 누구를 위하여 왕후의 위를 받았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 후 그는 금식하였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을 때 왕에게로 가는 자는 누구를막론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어전의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나타났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하수에로왕에게 규례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게 하고 사흘이나 금식하여 얼굴이 초췌한 에스더가 더 예쁘게 보이도록 왕의 배후에서 섭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주장 하사 흔쾌히 승락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의 연회에 초청 받은 왕의 마음을 흥분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에스더에게 주고 싶도록 섭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에게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말하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나라의 절반도 주겠노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신하 하만의 마음을 교만으로 흥분하게 하사, 자기가 죽을 일을 스스로 꾀하도록 섭리하였습니다. 오십 규빗이나 되는 장대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일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 밤에 같은 시간에 하나님은 임금의 마음을 주장 하사 궁중일기를 읽게 하고, 언젠가 왕을 죽이려고 모반한 일이 있었을 때 충성된 신하 모르드개의 공로를 다시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은 왕과 하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는 재가를 받기 위하여 왕을 찾도록 하고 왕은 모르드개에게 상을 베풀도록 명령하기 위하여 하만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에스더로 하여금 두 번째 연회를 베풀게 하고, 마침내 그 자리에서 <내 생명과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을 팔려서 죽임이 되고,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7:3-4)고 민족 구원을 요청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하만의 악한 계교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고 왕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게 하므로 악한 신하 하만으로 하여금 자기가 만든 오십 규빗 되는 장대에 죽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은 아하수에로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어인이 찍힌 유대인 학살의 악법을 중지하게 하고, 전 페르시아 제국의 관리들에게 그 법령 집행을 중지하도록 사자들을 급파하는 대 역전의 드라마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죽음에서 다시 사는 생명의 해방을 받게 하고, 유대인의 역사 중에 부림절이라고 하는 새로운 절기를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역신 하만이 누리던 지위와 권세가 모르드개에게 주어지도록 하고, 에스더에게는 눈물이 아닌 기쁨으로 그의 아름다움이 다시 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생애 중 위대한 절정, 영예로운 기쁨을 맛보도록 하였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생애는 저들로 말미암아 유다 선민의 역사에 부림 절이 기록되는 그 날 그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섭리를 바로 붙잡았던 자들입니다. 그 때가 바로 저들 생의 절정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궁중 문지기의 자기 임무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에스더는 그가 그 때에, 왜 왕후가 되었는가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바로 생각하고, 바로 말하고 바로 행동하는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저들은 그 일을 위해 죽기로 각오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저들의 삶은 최고도에 이르는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성전 건축이라는 시간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이 받은 한 생애 중, 가장 축복된 절정을 이룰 계기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때를 선용해야 합니다. 찬스를 바로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잠잠하거나 방관하거나,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은 생의 절정을 놓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새영교회의 목사가 되고, ,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교사가 되고. 성도가 되고, 멤버가 된 직분의 의의를 크게 깨달아야 됩니다. 많은 이론과 말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일사 각오의 행동만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축복의 찬스를 매수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들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모든 달란트를 총동원하십시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하는 충성의 행동을 나타내십시오. 그 사람, 그 가정, 그 교회는 절정에 이르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