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5:1] 죽음에 대면하는 용기

'코이네' 2017. 5. 31. 21:58

죽음에 대면하하는 용기

본문 : 고전 5:1-10

설교 : 이동원 목사

 

 

언젠가 타임지에 “죽을 수 있는 권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낸시 쿠르덴이라는 32세의 여인이 7년 전에 교통 사고로 의식을 잃었는데, 그 후로 계속 초현대적인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식물 인간(植物人間)으로서 생명을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어머니였던 조이스 쿠르덴이 얼마 전에 “내 딸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딸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면서 미국의 대법원에 정식으로 제소(提訴)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식물 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자들이 약 일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기사에서는 “이런 초현대적인 의료 기구들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기계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하기보다는 죽음을 연장시키는 기계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성도의 장례식을 집례할 때마다 자신을 향해서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곤 합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다가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 제가 설교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죽기 전에 유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참 다양합니다. 여기 아주 흥미로운 유언들이 몇 가지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어떤 영화 감독은 죽으면서 “내가 이제 죽는다. 레디 고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코메디언은 “내가 웃기려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다”라고 말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농담 중에 장의사가 죽으면서 “우리 집 매상은 이제 내가 올릴 차례다”라는 말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음, 그것의 위협은 사실 생명의 마지막 단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죽음의 사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인생을 가리켜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이 죽음을 느끼면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은 죽음의 위기들이 있었는지요? 그는 항해 중에 여러 차례 파선의 경험을 하면서 죽음을 대면했습니다. 옥중에서,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씩이나 맞으면서, 여행 중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을 겪으면서, 그가 고백한 대로 난치의 질병을 끌어안고 살면서 죽음의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에 들어가기 전에, 4장 12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내가 사망에 처하는 이 고난을 받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첫부분의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라는 고백은, 바울 사도가 생의 골짜기를 통해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죽음의 위협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4장 1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바울은 살아가면서 시시각각으로 사망의 위협을 받았지만 낙심치 아니한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인들의 삶 속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요소 중의 하나는 “죽음에 대면하는 용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가 드린 기도를 한 구절씩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기도문을 내용으로 한 찬양이 있는데, 끝 부분에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라는  가사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역(誤譯)입니다. 이 가사를 그대로 부르게 되면, 마치 자기를 던지는 희생적인 삶이 영생의 조건인 것처럼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문에 보면 이 구절은 “우리가 죽음으로써 영원한 세계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길 수 있고 또 마땅히 이겨야 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