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레아와 라헬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란?(김기홍목사)

'코이네' 2016. 8. 7. 01:32

레아와 라헬

 

교회와신앙 2008년 09월 16일 (화) 00:00:00김기홍 목사 khk0725@hanmail.net

 

 

레아와 라헬은 형제였다. 함께 이스라엘 조상 야곱의 부인이었다. 이들도 우리처럼 행복을 찾았다. 첫 눈에 보기에 동생 라헬이 행복할 조건을 다 가졌다. 우선 미모가 빼어났다. 거기다가 영리했다. 인기가 높았다. 당연히 남편 사랑 독차지이다. 반면에 언니 레아는 평범했다. 미모도 머리도 없었다. 남편 사랑 받기를 늘 사모하며 살았다.

 

결과는 어떤가? 라헬은 늘 불안했고 둘째 애 낳다 죽어 길가에 묻힌다. 반면 레아는 열 두 지파 중 여섯 지파의 어머니이다. 그 가운데 제사장인 레위지파가 있고 왕인 유다지파가 있으며 그 후손에서 그리스도가 왔다. 평생 존경 받고 죽어 조상의 묘인 막벨라 굴에 영광 속에 안장된다. 레아는 부족한 삶에서 행복의 비결을 터득했던 것이다.

 

어떤 개가 꼬리를 좋아했다. 거기 행복이 있다고 믿어 잡으려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지쳤다. 쓰러진다. 다시 일어나고 평생 그런다. 지켜보던 늙은 개가 말한다. “미친 짓이야. 나도 한때는 그랬지. 꼬리를 잡으려하면 어지러울 뿐이지만 목표를 향해 달리면 꼬리가 늘 나를 따라왔지.”

 

꼬리는 꼬리고 행복은 행복이다. 미모나 재능이나 돈은 꼬리이다. 있으면 좋다. 행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자체는 행복이 아니다. 그것들로 오는 행복은 잠시이다. 오히려 불행을 줄 수 있다. 행복은 따로 있다. 잡으면 좋은 것들이 따라온다. 레아와 라헬의 경우에서 어떻게 행복을 누리는지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행복이다

 

레아와 라헬 두 사람 다 처음에는 외형적인 것들을 행복으로 알았다. 남편 사랑 받고 아들 많이 낳는 것이다. 라헬은 남편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들이 없다. 레아는 반대였다. 아들 많이 낳아도 남편 사랑이 없다. 그래서 모두 다 얻으려고 난리였다. 어느 날 들에서 놀던 레아의 맏아들 어린 르우벤이 향기로운 약초를 가져온다.

 

이름하여 합환채. 여성이 먹으면 남성의 성욕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여성은 임신한다.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그 약초가 절실히 요구된다. 레아는 남편의 관심도 필요하지만 생산도 멎었기에 역시 필요하다. 6살 어린이가 우연히 가져온 전설적인 이 약초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보물이었다. 산삼은 저리가라였다.

 

결국 행복이라면 절대 양보 못하는 라헬이 빼앗아간다. 그 대가로 남편이 그 날 밤에 레아와 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을 감동시켜 레아를 사랑하게 하신다. 그리고 레아에게 아들을 더 주신다. 후에는 라헬의 태도 열어주신다. 모두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여전히 갈등은 계속 된다. 다른 두 부인들도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행복은 어디 있나? 애인에게 있는가? 자식에게 있는가? 얼굴 예쁘고 돈 많으면 행복하나? 메릴린 먼로는 모든 남성을 설레게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여성에게 그러했다. 부자고 유명했지만 마약에 절어 죽었다. 재벌도, 재벌의 딸도 자살했다. 행복해 보일 뿐이지 행복은 없다. 무엇이 행복을 주나? 행복은 그냥 행복이다.

 

목표 향해 달리면 꼬리는 저절로 온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목표가 없다. 그냥 꼬리뿐이다. “사람의 제 일 되는 목적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일조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복이다. 그를 즐기라. 그것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요 행복이다. 행복 따라가 보아야 꼬리 따르기이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에게 있다. 돈이 은행에 있나? 건강이 병원에 있고 보약에 있나? 권력이 권력자에게 있나? 맞다. 그러나 모두 행복으로부터 나온 꼬리일 뿐이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을 잡는다면 모든 걸 소유한다. 정말로 하나님만 확실하게 잡으면 그리고 누리면 천하를 잡는다.

 

행운이 어디 있나? 천국은 어디 있고 축복은 어디 있나? 죄용서와 권능은 어디 있나? 하나님에게만 있다. 이걸 아는 게 지혜이다.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 다른 데를 기웃거린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직접 하나님 앞으로 오라. 시간이 없어 예배에 못 나오나? 어디에 시간을 다 쓰는가?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목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누리라

 

<런던타임스>에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독자로부터 모집하였다. 제1위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 제2위 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 제3위 세밀한 세공품 장을 다 짜고 휘파람을 부는 목공, 제4위 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막 한 생명을 구한 의사가 상위로 뽑혔다. 모두 마음에서 느끼는 행복이다

 

그러면 우리도 모래성을 만들러 가야 하나? 아기 목욕 시키러가고 목수일 배워야 하나? 의사들이 더 행복한가? 누가 <런던타임스>의 말에 공감하나? 세상 그 자체만으로는 행복이 없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태양이 있어야 광채를 발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누려야 행복이 된다. 안 그러면 개꼬리일 뿐이다.

 

라헬도 그런 식으로 행복을 누려보려 했다. 남편과 함께 아버지 집을 탈출할 때 드라빔을 훔친다. 그걸 의지해 행복하려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 우상을 찾으려 텐트마다 뒤질 때 깔고 앉아 숨겼다. 그 후 라헬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 다음 아들 베냐민을 낳을 때 난산으로 죽는다. 우상은 행복이 아니라 파멸과 죽음을 준다.

 

라헬의 후손도 복 받지 못한다.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나온다. 그도 라헬처럼 인물이 출중했다. 키가 보통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었다. 지혜도 대단했다. 이처럼 탁월하기에 교만하였다. 아랫사람 다윗을 질투한다. 다윗이 죽어야 행복하다고 믿었다. 꼬리 잡느라 10년 세월을 소모하고 망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다. 빈약한 집안의 말째 아들이다. 목동이다. 아무 내세울 게 없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만 누리기이다. “주 만이 나의 주이시니 주 외에는 내 행복이 없나이다.” 시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나 좋은 것을 주시고 인도하신다고 늘 주장한다.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리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 거의 모든 스승들이 수련으로 마음의 행복을 얻는다고 한다. 죄인인 우리가 수련한다고 행복이 오는가? 그저 아이가 모래성 쌓고 느끼는 행복 정도일 뿐이다. 사람 개인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로 사자나 곰을 잡을 수 없다. 잡으려는 게 교만이다. 한계를 알아야지.

 

그러나 하나님 의지하면 신기한 힘이 나온다. 얼른 보면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윗은 하나님 의지하고 혼자 훈련해서 돌로 사자를 잡는다. 힘을 키워 양 물고 가는 곰을 따라가 입을 찢는다. 하프를 잘 타 감동적인 연주를 한다. 귀신을 몰아내고 병을 고친다. 하나님은 믿는 모두에게 필요한 힘을 주신다.

 

그가 내 속에 계신가? 내 목표요 내 행복인가? 행복하기로 결심하라. 그게 되느냐고? 된다. 신자는 하나님 힘으로 산다. 행복도 사랑도 건강도 믿고 결심하면 나온다. 돈 없고 몸 아프고 가정 힘들어도 먼저 행복하라. 속에서부터 나오는 권세를 누리라. 그 행복이 돈도 건강도 가정 행복도 다 가져온다. 레아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게 한다.

 

하나님을 나누라

 

웨슬리와 전도 여행한 존 넬슨의 말이다. “우리는 바닥에서 잤습니다. 삼 주간을 지낸 후 어느 새벽 웨슬리가 말했습니다. ‘기뻐합시다. 내게 아직 한 쪽 옆구리의 감각이 살아 있어요.’” 하루는 설교하고 오다가 산길에서 산딸기를 보고 말한다. “먹을 게 없는데 웬 산딸기입니까!” 신자는 행복을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행복하다.

 

이 하나님을 나누라. 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라. 이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라. 기도하라. 섬기라. 봉사하라. 시간과 돈을 사용하라. 이상하다. 다 없어지는 것 같은데 금세 채워진다. 하나님께 바친 시간과 돈은 수십 배로 다시 넘쳐온다. 잘되는 사람들의 고백이다. 믿고 해 보라.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섬겨 보라.

 

하나님은 나눌수록 많아진다. 세상 모든 것은 한 컵의 물과 같다. 아무리 많아도 나누면 금세 없어진다. 하지만 샘물은 그렇지 않다. 퍼낼수록 더욱 맑은 물이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생명의 샘물이 되신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라. 다른 것 의지하는 것은 돈이건, 인간이건 모두 우상이다. 문제는 다 하나님께 말하라.

 

이 하나님을 믿고 전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은 샘을 한없이 풍성하게 해주신다. 그것이 우리 속에 들어오신 이유이니까. 나를 구원하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과실을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께 부탁하라. 하나님만 목표로 삼고 누리며 하나님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해 달라고. 상황도 주시고 사람도 달라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달라고. 그러면서 가정과 사업을 위해서도 똑같이 기도해 보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게 해 달라고. 상황도 사람도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매사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

 

합환채를 주면서 레아는 깨닫는다. 미모나 부귀나 남편 사랑이 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리 해도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들을 통해서 얻는 행복은 그림자이다. 하나님만이 행복이다. 하나님을 누리면 세상 모든 것을 다 누릴 힘을 얻는다. 삶이 열려진다. 여전히 그들은 행복 자체가 아니다. 행복은 따로 있다. 하나님이 행복이다.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시 한 편이 확신을 더해줄 것이다.

어젯밤은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불행은 침대 밑 깔개 위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낸 것 같다

나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잠시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의 첫 아침을 향하여

눈을 뜬 최초의 인간이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