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아가

[아7:10] 사랑의 미로(석원태목사)

'코이네' 2016. 7. 13. 19:06

사랑의 미로(未路)

아가서 7장 10-13절

설교 : 석원태 목사 (경향교회)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행복의 노다지입니다. 그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나, 소리나, 말이나, 행동으로 그 사랑의 내용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중에 하나가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말이 더 매력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온갖 좋은 꿈들을 심어 줍니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온갖 축복과 용서와 약속들을 심어 줍니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온갖 시와, 산문들과, 노래들을 심어 줍니다. 우리에게 들려 오는 세계적인 명곡과 명작들 그리고 명시들과 예술들은 예외없이 위대한 사랑의 영감의 산물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신령한 시와 노래들로 서로 화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노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노래의 보고(寶庫)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자기 사랑의 최대 표현이요, 하나님 자기 사랑의 극치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가리켜 구약에는 아하바(ה󰔧󰕗אַ)라 일컬었는데, 이 말이 신약에는 아가페(ἀγάπη)로 불려졌습니다. 신약성경 중에 위대한 사랑의 장(章)이 고린도전서 13장이라면, 구약에는 바로 솔로몬의 아가(아 1:1) 곧, 노래 중의 노래입니다.

 

이 위대한 사랑찬가인 아가서는 꽃이 피는 봄날에 엮어졌습니다. 이 노래 속에 숨어 있는 풍부한 비유들은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것들입니다. 그 속에 나타나고 있는 자연, 공원, 목장, 포도원, 양의 무리들 그리고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은 이 사랑노래의 정서를 멋있게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솔로몬과, 그의 짝인 술람미 여인 그리고 예루살렘 여자들과, 술람미 여인의 고향 어미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이 책의 영감의 목적은 틀림없이 장차 나타나실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관계를 맺은 신부인 그리스도인과의 사랑 관계를 나타내는 예표론적 노래입니다. 솔로몬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짝인 술람미 여인은 신약의 성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신랑 솔로몬이 신부가 된 술람미 여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다음에, 나타난 술람미 여인의 사랑 화답입니다. 그 화답 내용의 중심은 ‘함께하는 사랑의 미로’입니다.

당신의 것이 된 나와 함께 들로 나가가면 거기에 있는 포도동산에서 내가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하는(아 7:10-13), 사랑의 미래를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말하자면 ‘함께하는 사랑의 미로(未路)’입니다.

 

Ⅰ. 주(主) 안에 함께 된 나는,

 

아가서 7장 10절에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며 자기 신분의 소속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말은 술람미 여인 자신은 혼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미 솔로몬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고백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아 2:16, 6:3). 그는 이미 솔로몬의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행복의 고백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교회)은 예수의 사람이요, 예수에게 소속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버린 자들입니다(롬 14:8).

그녀는 솔로몬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고 함으로 위대한 사랑의 입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술람미 여인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솔로몬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여기에서 자기 존재의 보람을 느낀 것입니다. 바로 오늘 그리스도인된 우리 모두가 함께 감지하는 예수 사랑 체험의 행복입니다.

 

Ⅱ. 함께 주의 포도동산으로 가서

 

이제 술람미의 여인은 솔로몬에게 사랑의 야유(野遊;들놀이)를 청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아 7:11-12a)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전에는 신랑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찾아오고, 부르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술람미 여인편에서 신랑에게 동행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함께)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자고 제의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궁실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동네는 옛날 그녀가 살고 있던 수넴의 농촌 마을을 두고 한 말인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그녀가 돌보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아 1:6).

그녀는 들녘에 있는 포도원의 봄소식을 알고 싶었습니다. 포도원에 움이 솟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꽃술이 퍼진 웃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석류꽃이 피어 있는 웃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생명이 풍성한 들녘의 포도원으로 사랑의 야유(野遊)를 떠나자고 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산, 움직이는 동산, 성장의 동산, 생명의 동산, 혼이 넘치는 동산으로 함께 나가보자는 사랑의 미로(未路)를 제의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들녘 동네 가운데 자리잡은 포도동산은 이 세상에 자리잡은 주님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에 예외없이 포도동산은 이스라엘을 상징했고, 주님의 교회를 상징했습니다.

중대한 내용은 그 포도동산이 살아 있는 동산인가, 죽은 동산인가에 있습니다. 포도원에 포도움이 돋았는가? 꽃술이 퍼졌는가? 석류꽃이 피어 있는가? 함입니다. 말하자면 부활 생명의 동산인가? 봄동산인가? 향기가 있는 동산인가? 벌과 나비과 모여드는 동산인가?

 

말하자면 생혼(生魂)이 넘치는 동산인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교회인가? 깨어 기도하고 있는 교회인가? 선한 일에 열심하는 교회인가? 전도와 구제와 선교로 구원받을 무리들이 날마다 움처럼, 꽃술처럼 피어나고 모여들고 있는가?

 

술람미 여인이 제의한 사랑의 미로(未路)는 결코 불확실하거나, 불분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제의한 사랑 여로의 목적지가 확실합니다. 들녘의 동리 그리고 그 곳에 있는 포도동산이었습니다. 그곳은 죽은 동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이 넘치는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장을 볼 수 있는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잠잠히 말이 없는 싸늘한 시체들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움직임과 창조와 생산이 넘치는 동산이 저들이 떠나야 할 사랑의 미로(未路)라고 하였습니다.

 

Ⅲ. 함께 사랑을 나누자

 

아가서 7장 12절 하반절에서 13절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사랑 성장은 이제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있음을 봅니다. 그녀는 들녘 동네 가운데 있는 포도원에서 ‘자기 사랑’을 솔로몬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거기 포도동산, 곧 생명의 봄이 완연해져버린 곳에서 자기 사랑을 솔로몬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거기는 사랑의 심볼(symbol)인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티 루터는 이것은 ‘사랑의 사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화란어도 이 번역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유숙하는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의 묵은 것과 새것이 예비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위하여 쌓아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사랑에는 모든 것이 함께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움돋은 포도나무, 퍼진 꽃술, 피어버린 석류꽃들, 향기를 토하는 합환채, 풍족하게 예비된 여러 맛난 과실들…. 거기서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의 성장입니다. 이제는 신부를 취한 신랑이 아니라 신랑을 취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부에게 드리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에게 드리는 신부로 성장하였습니다. 전에는 받으려는 처녀, 받으려고 애쓰는 처녀였으나, 이제는 신랑에게 드리는 신부, 바치는 신부로 변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 함께 사랑을 나눌 들녘 가운데 동네 그리고 포도원! 그것은 그녀가 어미의 아들들의 포도원을 연상하고 한 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들녘 가운데 있는 동네의 어느 집 그리고 포도원은 사실상 솔로몬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은 그 어느 하나라도 솔로몬에게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솔로몬에게 받은 그것으로 솔로몬을 섬기고 사랑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주께 드릴 수 있는 온갖 사랑의 고백은, 본래 내 것이 아니고 모두가 주께 받은 것으로 드리는 것을 알려 줍니다. 주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온갖 생명의 은총들을 가지고,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몰랐습니다. 미움밖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를 통하여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요일 4:8-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들녘, 동리 가운데 있는 포도동산! 그곳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사랑을 함께 누릴 미로(未路)였습니다. 그곳은 쓸쓸한 사막이 아니라 화창한 봄날의 동산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 버리고 덮여 버린 사막이 아니라, 모든 것이 움돋고 꽃피는 부활의 동산이었습니다. 사랑의 심볼인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각종 묵은 과실, 새 과실이 준비되어 사랑의 흥을 북돋아주는 동산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사랑을 받은 그녀는 이곳으로 사랑의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미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의 미로(未路)를 내다 본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경향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들녘 동리 가운데 포도동산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 그 동산의 아름다움의 마무리 작업으로 한창 분주합니다.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학교법인 경향학원의 동산입니다. 주님은 거기에서 신령한 포도동산을 우리에게 허락하였습니다. 지금 거기에는 우리가 주께 드린 사랑 고백의 결과로, 아름다운 새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만천여 평에 가까운 큰 공간입니다. 넓고 넓은 주차공간이 지하 2층으로 완비되어 성전으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400여 평에 이르는 최신 체육 공간이 완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제1, 2, 3성전의 공간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500여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식탁 공간과 아래층까지 햇빛이 들어가는 100여 평의 선컨(sunken) 공간과 또다른 작은 선컨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교육기관들과 집무실(사역실)들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학원내 경복여자고등학교와 경복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와 새 예배당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학교의 큰운동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되어 꾸며진 새공간의 정원들에는 벌써 우리 앞에 봄을 싣고 왔습니다. 새성전의 도로편에는 50미터가 넘는 십자가의 높은 탑이 경향의 깃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새 포도동산은 최고도의 설계와 건축공학의 산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교회사적인 건물은 확실히 주께 받은 것으로 드린 여러분의 사랑고백의 결과입니다. 바로 이곳이 오늘 서울이라고 하는 들녘 가운데, 강서라고 하는 동리에 세운 경향의 포도원, 아니 주님의 포도원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그 길, 그곳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정말 멋진 사랑의 미로(未路)가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거기 경향의 새동산에서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사랑의 고백을 하려 합니다. 우리 경향인 모두는 거기서, 우리에게 있는 사랑을 주께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 포도나무의 움이 되고, 꽃술이 되며, 피어난 석류꽃이 되고, 합환채가 되고, 과일들이 되어서 우리가 받은 삶의 전부를 주 사랑의 이름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거기서 주를 향한 새 사랑의 출발, 새 사랑의 약속, 새 사랑의 고백을 하려 합니다. 정말 복스러운 사랑의 미로(未路)가 아닙니까?

 

나 혼자 따로 가면 안됩니다. 둘만이 가서도 안됩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주님이 없는 사랑의 미로란 아무런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 함께 사랑의 미로(未路)를 떠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 널리 펴져 내려왔던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밤늦게 연인의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방안에 있는 처녀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나입니다(It's me.).”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방안에서 처녀가 대답하는 말은 “이 방은 너무 좁아요. 한 사람밖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돌아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실망한 그 청년은 슬픔을 잊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랑에 대한 큰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그 연인의 집에 찾아가 전처럼 문을 두드렸습니다.

방안에서 처녀는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옛날에 했던 그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청년은 “당신입니다(It's you.).”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문은 곧 열렸고, 그 청년은 그 사랑하는 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아니고, 당신 자신이었을 때 문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이에는 나와 당신이 아니고, 오직 당신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와 나도 아니고 오직 당신뿐’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미로(未路)는 내가 아니고 오직 당신(主=κυριος)일 뿐입니다. 들녘에 있는 동네의 포도동산은 내 동산이 아니고, 당신(主)의 동산입니다. “당신의 동산에서 내가 당신께 받은 사랑을 바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복된 사랑의 미로(未路)입니다.

그렇다면 경향인이 받은 사랑의 미로(未路)에는 불안이라든가, 공포라든가, 불만이라든가, 의심이라든가, 절망, 무상, 허무 따위는 자리잡을 시간도 장소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4반세기만의 사랑의 미로(未路)는 확실하고, 빛나고, 영광스럽습니다. 우리 모두 주와 함께 서울 들녘 가운데, 강서 동네에 주님의 세워주신 포도동산에서 움과 꽃과 향기와 열매의 사랑을 주께 바쳐봅시다. 거기서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 아 멘 -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