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아가

[아가1장]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자

'코이네' 2014. 11. 27. 20:53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자

 

(아가 1:1)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기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은 누구나 하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라고 뉴욕 한인교회 최효섭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너무 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랑은 값싼 싸구려 사랑입니다. 실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저질적인 인간의 욕정을 미화시킨 가짜 사랑입니다. 정말 세상에서 참 사랑을 찾기 힘들고, 또 그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도 보기 쉽지 않습니다.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고자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결혼하는 젊은 세대를 보세요. 사랑보다는 신부의 지참금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신부가 될 여자 또한 신랑의 직업, 재산 등을 따집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모습들입니다. 말세의 징조 중에 두드러진 현상은 불법이 성행하는 것과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라고 주님은 예언하셨습니다(마 24;12). 사도 바울은 사랑이 변질되는 것, 곧 자기만 사랑하는 것, 돈만 사랑하는 것, 쾌락을 사랑하는 것 등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딤후 3:2,4).

 

사랑도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풋사랑, 첫사랑, 친구간의 사랑인 우정, 부모님의 사랑,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갖고 있는 하나님 사랑 등이 그러합니다. 개역 성경에 “사랑”이라고 번역된 헬라 원어도 여러 다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아가페, 필란드로피아, 카리스, 필리아 등이 그러하고, 성경 밖의 헬라어 중에는 에로스와 스톨게가 있습니다. 이를 좀더 간략하게 설명 드리면, 아가페는 지고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며, 필란드로피아는 호의적인 친절, 카리스는 하나님의 은혜로 임하는 사랑, 필리아는 친구의 사랑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경 밖의 헬라어인 스톨게는 부모님의 사랑을말하고, 에로스는 가장 보편적인 남녀 연인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는 결국 말의 구분이야 어떠하든지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종은 아가서를 강해하고자 합니다. 성도님들에게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은혜롭게 증거 하고자 합니다. 기도해주시고 경청하여 큰 은혜를 받아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사랑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은혜목회정보- 1997.10제작 □설교/박성규목사

 

아가서는 신약 고린도전서 13장과 함께 사랑을 노래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담은 책입니다. 한문 “아”(雅)자는 ‘맑다, 바르다, 우아하다’라는 뜻입니다. “가”(歌)는 물론 ‘노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雅歌”는 문자적 의미로는 ‘맑고 우아한 노래, 고상한 노래’를 가리킵니다. 물론 이 의미 때문에 책 제목이 된 것은 아닙니다만, 아가서의 내용 속에 이 의미는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원래 히브리어 제목은 “쉬르 하쉬림”(םירישׁה רישׁ)입니다. 의미는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 '최고의 노래‘(the Best Song)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아가, 룻기, 예레미야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섯 권 성경을 “오축”(다섯 두루말이)이라 부르며, 이스라엘 명절 때에 각각 한 권씩 읽었습니다. 유월절에는 아가, 오순절에는 룻기, 예루살렘이 파괴된 압(Ab)월 제9일에는 예레미야 애가, 장막절에는 전도서, 부림절에는 에스더를 각각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가서의 경우는 구약 성경 중 가장 늦게 정경(正經)으로 인정되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더욱 사랑을 받은 책이었습니다. 1세기 말에 살았던 아카바라고 하는 랍비는 “이스라엘이 아가를 얻은 날이 태초로부터 지금까지의 전세상보다 더 가치가 있다”라고 극찬하면서 “아가서는 가장 거룩한 책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가서가 정경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많은 오해를 받은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강해를 들음으로 알게 되겠지만 아가서의 내용이 남녀의 농도 짙은 사랑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같이 낮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가 어떻게 거룩한 책이 될 수 있느냐는 비판을 받은 이유였습니다. 그래 이스라엘은 만 30살 이하의 청년들은아가서를 읽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세기 말 얌니아 종교 회의에서 정경으로 인정된 이후로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되어 많은 사랑을 받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아가서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물론 그 배경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라는 시골 처녀와의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론사이드(H. A. Ironside)의 배경 설명을 들으면 아가서 전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북쪽, 약 50마일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포도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왕은 포도원을 소작농에게 맡겼는데, 그 소작농은 술람미 가정이었습니다. 술람미의 가정은 어머니와 두 오라비가 있었으며, 두 오라비는 술람미의 이복 형제였습니다. 이복 오라비인 두 오빠는 술람미를 포도원으로 항상 내몰았습니다. 그녀는 뙤약볕에서 일을 많이 하여 검게 그을렸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고, 작은 여우가 포도원 담에 구멍을 뚫지 못하도록 하고, 양을 치며 온종일 지치도록 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솔로몬 왕이 목동으로 변장을 하고 포도원을 방문합니다. 솔로몬 왕의 한눈에 술람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술람미에게 관심을 보이자 술람미도 이내 솔로몬 왕을 사랑하게 됩니다. 처음에 술람미는 변장한 솔로몬 왕을 왕으로 알지 못하고 그저 한 목자로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후일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술람미는 사랑하므로 병이 납니다. 얼마후 왕은 가마를 보내어 술람미를 예루살렘 왕궁으로 불러 술람미를 왕비로 맞이합니다.

 

아이론사이드의 이야기는 아가서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만을 전하고자 기록된 책은 정녕 아닙니다. 예로부터 아가서를 통하여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고자 여러 해석이 시도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풍유적 해석, 문자적 해석, 유형적 해석입니다.

 

먼저 풍유적 해석은 아가서의 사랑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의 사랑으로 해석합니다. 신랑인 여호와 하나님과 신부인 이스라엘과의 영적인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해석합니다. 주후 55년경의 탈굼역은 아가서를 구절 구절마다 그 말씀을 비유로 보고 솔로몬 왕은 하나님, 술람미는 이스라엘을 비유한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오게네스도 이 해석을 받아 들여 신랑을 예수로, 신부를 성도들의 영혼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아가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 합니다. 주전 5세기에 데오도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아가서는 솔로몬과 애굽 바로왕의 딸인 공주와의 결혼식 때 부르는 노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해석은 제2차 콘스탄틴노플 종교회의에서 정죄되어 교회에서 배척되었습니다. 후에 하인리히 에발트라는 사람도 문자적 해석을 하였습니다. 아가서에는 술람미에게 두 명의 청혼자가 등장한다고 해석하고는, 한 명은 솔로몬 왕이고 또 한 명은 시골 목동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술람미는 왕의 청혼을 뿌리치고 가난한 목동을 선택하는 정절을 지키는 시골 처녀였다고 말하면서 바로 이와 같은 윤리적 특성 때문에 아가서가 성경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이 해석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문자적 해석에서는 그리스도의 사건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형적 해석의 출발은 아가서가 성경이라는 분명한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곧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책이라는 원리가 그 원칙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유형적 해석은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술람미는 교회의 모형이라고 해석합니다. 캠블 모간의 말은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아가서는 먼저 단순하고 우아한 인간적 애정시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우리들은 본 시가 인간의 영과 성령의 영, 그리고 궁극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 사이의 교제의 기쁨을 노래한, 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를 드러낸 것으로 승화시켜 이해해야 한다.” 1절은 아가서의 제목(title)입니다.

 

【솔로몬의 사랑 노래】 이것이 아가서의 전체 주제이며 책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출생 때부터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12:24-25 말씀은 이러합니다.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여호와께 사랑을 입음)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물론 솔로몬이라는 이름 그 자체도 ‘평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솔로몬을 평화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평화의 왕, 사랑의 왕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게 되어 이제까지 그 누구보다 더욱 뛰어난 지혜자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을 지었으며(왕상 4:32), 그 중에 으뜸은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였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는 하늘의 소리가 들려 왔고(마 3:17), 주님의 생애는 평화의 왕으로 승리하신 생애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복음과 사랑의 노래가 넘쳐났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낱낱이 기록하였다면 이 세상이라고 그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였을 것입니다(요 21:25). 해서 정말 요긴한 말씀, 아름다운 사랑의 말씀만을 정수로 추려서 남겨 두었으니 곧 오늘 우리가 항상 읽는 네 권의 복음서인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입에서는 절로 감사와 기쁨의 찬송이 나옵니다. 사랑 받고 있는 사람도 절로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왜요? 사랑을 받으니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입니다. 사랑에 노래가 없다면 어찌 참사랑이라 하겠습니까? 주님 말씀을 들어보세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체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신령한 찬송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시 23:3)이십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성도들이 부를 노래이며, 찬양 중의 으뜸은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찬양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세번씩이나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또는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이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노래, 신령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5:19)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입에서는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까? 신령한 찬송을 부름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주님의 사랑이 확증되고 있습니까? 종은 기원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안과 주님의 위로가 크게 임할 줄 믿습니다. 1886년 런던호가 비스케이(Biscay)만에서 침몰할 때에 배 안에 있던 승객들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배 안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두 얼굴에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평안의 미소를 띠고 눈물을 흘리며 배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분명 그 영혼들은 찬송을 부르는 그 순간에 하나님 나라의 하늘 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노래부릅시다. 그리고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여 이전보다 더욱 뜨겁게 사랑하므로 끝까지 사랑의 승리를 완성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가 되십시다. 하늘에 계신 주님이 크게 영광 받으시고 넘치는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할렐루야! 아멘!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