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아가

[아2:10] 겨울이 지났습니다

'코이네' 2021. 5. 20. 21:05

 

겨울이 지났습니다

아가서 2:10-17

 

 

 

오늘 우리가 읽은 아가서는 히브리 원어의 뜻대로 하면 노래 중의 노래라고 합니다. 영어로 한 제목에는 솔로몬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이 아가서는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 있어서는 30세가 될 때까지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노래들은 단순한 연가만은 아니고 그 노래 속에는 깊은 영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유대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보여 주시는 사랑을 노래로 엮은 것이라 했고 기독교회에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어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대화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신랑인 그리스도, 신부인 사이의 노래로 생각하면 참으로 영감이 흘러 넘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그리스도와 사귀는 신령한 체험을 노래한 은혜 충만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우리가 사랑 받고 또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갈 그 동산은 어떤 곳입니까?

 

1.겨울이 지났습니다.

 

겨울은 삼라만상이 얼어붙는 계절입니다. 나무도 얼고, 땅도 얼고, 강도 얼고, 모두가 얼음 동산입니다. 쓸쓸하고 적막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북풍한설은 살을 에이는 듯하고 숨마저 쉬기가 힘이 듭니다. 모든 짐승들은 자기 보금자리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겨울은 매우 추워서 웬만한 것은 살아 남기가 어렵습니다. 다 얼어죽습니다. 이처럼 자연계에 겨울이 있듯이 우리 영혼의 세계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자연계에 겨울이 왜 있습니까?

태양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때가 겨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도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영혼의 겨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멀리떨어져 있는 심령, 구원받지 못한 심령은 말하자면 겨울과 같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심령은 마치 겨울과 같아서 모두가 얼어붙어 있습니다. 춥고, 딱딱하고, 생명이 없습니다. 사랑도 없습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감사도 없습니다. 찬송도 없습니다. 있다면 불평, 불만, 원망, 시비, 비관, 절망, 시기, 좌절, 투기,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쓸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적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사이는 여행 자유화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외국에 다녀오셔서 전보다 외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동남아 지역의 태국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괌이나 사이판 같은 데는 일년 사철이 더운 여름입니다. 왜요? 태양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계절로 말해서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꽃샘추위까지 다 지나갔으니 춥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초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의의 태양이신 주님을 가까이함으로 심령의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마음의 봄을 맞이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절망 속에서 어둡게 살았지만 마음의 봄을 맞이 하여 소망 중에 밝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겨울에는 쓸쓸하게 살았지만 겨울이 지났으니 그리스도와 더불어 화기가 넘치고 따뜻하게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령의 겨울철에는 슬픔 속에 살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원합니다. 겨울철에는 맥없이 움츠리고 살았지마는 겨울이 지났으니 이제 새 힘을 내고 힘차고 씩씩하게,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감으로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점령하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오랜 겨울철을 지냈습니다. 공포와 절망, 독재와 폭력의 겨울이 지났습니다. 이제 문민 시대의 봄철을 맞이하여 대지를 헤치고 새순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자유와 번영의 새순이 힘있게 솟게 되기를 바랍니다.

 

2.비는 그쳤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는 봄비가 내립니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비입니다. 더럽혀진 땅을 씻어 내리는 비입니다. 말라붙은 땅을 적시는 비입니다. 그래서 절기로 말하면 우수가 있고 곡우가 있습니다.

이 비를 맞으면 말랐던 초목에 생기가 돋습니다. 비를 한 번 맞을 때마다 싹이 나고 잎이 자랍니다. 더구나 비가 그친 뒤의 산천초목을 바라보세요. 삼라만상이 생기를 머금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도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 합니다.

호세아 1012절에 보세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지를 기경하라는 말은 우리의 심령의 회개하므로 심령의 밭을 갈아엎는 것을 말합니다. 갈아엎은 심령 위에 비가 내려서 완악하고 교만한 심령이 변하여 새 생명을 받아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의 싹이 움트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우리의 심령이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은 이스라엘 땅처럼 메마르지는 않았습니까? 메마른 밭에는 씨를 뿌려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심령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에스겔 3426절에 약속하신 대로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의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그러한즉 밭의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니라하신 축복이 임할 것을 믿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172장을 뜻을 생각하면서 함께 부르십니다.

 

1.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2.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3.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4.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 하나의 심령 위에 봄비로 내리는 성령이 흠뻑 임해서 얼어붙은 우리의 심령, 얼음덩이 같던 우리 마음이 푹 녹아져서 주안에서 새 생명이 약동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3.지면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이 지났습니다. 땅을 적시는 봄비도 그쳤습니다. 동산을 바라보세요. 온 동산에 꽃이 만발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봄을 알리는 진달래와 철쭉꽃은 정말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무엘하 23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모두가 얼어붙어 죽음의 세계와 같던 산천에, 죽은 것 같던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이것은 정말 우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꽃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쓸쓸해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꽃은 무슨 꽃이나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의 심령에 은혜의 꽃이 피는 것은 우리 마음의 우주에 대한 은혜입니다. 이 마음의 동산에 사랑의 꽃, 찬송의 꽃, 봉사의 꽃이 만발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장미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백합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민들레꽃도 아름답고 할미꽃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어떻게 핍니까? 겨울에 꽃이 필 수 있습니까? 추운 데서 꽃이 필 수 있습니까? 햇빛이 없는 데서 꽃이 필 수 있습니까? 햇빛 같은 주님을 가까이 하여 대지가 따뜻해질 때 꽃이 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얼굴은 천사처럼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초대 교회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핍박을 받게 될 때 처음으로 핍박받은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분인 스데반 집사님은 결국 예수님 때문에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무참히도 신성 모독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은 죽은 가운데서도 눈을 들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비록 돌 무더기에 싸여 죽으면서도 주님을 바라볼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생활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매시, 예수님을 바라보십니까?

사실 어떤 의미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겨울철과 같이 춥고 쌀쌀합니다. 모두 다 얼어붙어 버리고 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쌀쌀한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은 따뜻한 봄날 같아서 우리 삶속에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났습니다. 우리 하나의 마음의 동산에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에 사랑과 행복의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에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4.새의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비도 오고 아름다운 꽃도 피었으나 새의 노랫소리가 없으면 봄동산의 운치의 결함입니다. 비가 그친 맑고 깨끗한 동산, 꽃피는 아름다운 언덕, 새가 노래하는 나뭇가지들, 이는 한 폭의 그림이요 한 구의 시입니다. 우리 마음의 동산에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18절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 노래하는 마음은 얼마나 요긴한지 설명할 필요가없습니다.

마음으로 노래하면 우선 우리 몸의 건강을 도와줍니다. 잠언 17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혈액 순환도 잘 되고, 소화도 잘되고, 신경의 긴장도 풀리고, 소위 엔돌핀이 많이 생겨서 삶이 활발해집니다.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일이 잘 됩니다.

학생의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공부를 잘 할 것입니다. 교사의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학생을 잘 가르칠 것입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사무를 잘 볼 것입니다. 누구를 대하나 명랑하게 친절하게 대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노래가 있으면 일하는 것이 지루하지 아니하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입니다. 온 가족이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가정이 화평할 것입니다. 마음에 노래가 있는 사람이 장사를 하면 손님에게 기쁨을 주고 장사가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 원한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가 세상에 기웃거립니까? 내 마음에 노래가 없어서 그럽니다.

더구나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담대합니다. 마음에 노래가 있는 사람은 용기가 생깁니다. 불만이 없어지고 근심과 걱정도 사라집니다. 오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음에 노래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밤중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고랑이 풀렸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도 이런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5.무화가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습니다.

 

무화과는 은화 식물과에 속하는 것으로서 꽃은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열매를 열어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식물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쪽에서는 조금 생산이 되는데 별로 흔한 과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무화과는 아주 단맛이 있는 부드러운 과일입니다. 무화과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닙니다. 하늘에 빛나는 산 소망입니다.

 

로마서 521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고린도후서 418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했습니다.

소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는 소망이요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세상의 소망이요, 보이지 않는 소망은 하늘의 소망입니다.

보이는 소망, 세상의 소망에는 몇 가지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소망은 소망하는 대로 되는 수도 있지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눈물과 한숨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의 소망은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한다고 다 재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하는 사람의 소망은 다 박사 학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한다고 다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박사가 되는 사람보다 못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의 소망은 장관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한다고 다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망은 소망하는 대로 된다고 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만족합니까? 정치하는 사람이 소원하던 대로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만족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가 되니까 만족합니까? 아들을 낳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아들을 낳았습니다. 만족합니까?

세상의 소망은 얻기 전에는 그렇게 좋아 보이고 만족스러울 것 같아 보이지마는 정작 얻고 보면 별것이 아닙니다. 바닷속에 있는 해초가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해 보이고 싱싱해 보이는데 바닷속에 들어가서 뜯어 가지고 나와 보면 별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망은 이루어져도 실망의 식은 재로 화해 버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 보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소망의 닻줄을 굳게 붙잡고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15:13)

 

6.포도나무는 향기를 토합니다.

 

고린도후서 314-15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향기에는 끄는 힘이 있습니다. 봄동산에 아름다운 꽃이 피면 벌과 나비들이 사방에서 모여듭니다. 아름다운 꽃 때문이 아니라 꽃속에 향기가 있어서 그 향기에 끌려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다 그 끄는 힘에 끌려 왔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각계 각층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인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향기에 도취하여,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그가 주시는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황제도 그랬고, 정치가, 철학자, 과학자, 사업가가 그랬습니다. 향기는 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향기는 이끌기도 하고 물리치기도 합니다. 벌과 나비같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봉첩은 향기로 이끌지만, 어떤 더러운 것은 향기로 물리칩니다. 향을 피우면 모기가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향기가 모기를 물리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나타날 때 많은 사람이 향기로 말미암아 이끌려 오는 동시에, 어떤 사람에게는 물리치는 힘이 있어서 오히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죄를 더 짓고 짓다가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복음은 향기입니다. 우리가 복음 속에 들어와서 향기에 온전히 흡수가 되면 우리 자신이 향기가 되어서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 오셔서 주님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온전히 지배하게 되면 우리 자체가 향기가 되어서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언중에 감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깨끗해집니다. 그런 사람이 관청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에게 감화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면 군대가 감화됩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보다 향기가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겨울이 지났습니다. 비도 그쳤습니다. 지면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새들이 노래합니다. 무화과 열매가 맺었습니다. 포도나무는 향기를 토합니다.

우리 하나의 심령에도 겨울이 지나고 아름다운 봄을 맞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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