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4:48] 현모양처 리브가

'코이네' 2016. 4. 17. 00:45

 

모범적인 여성 리브가

 

창24:48-61

 

 

리브가는 그 이름이 아름다운 미로서 사람을 이끈 소녀란 뜻이다. 고향은 메소보다미아 밧단 아람이고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인 브두엘의 딸이요 라반의 누이였다. 아브라함의 명령대로 엘리에셀은 나홀의 집에 가서 이삭의 처가될 신부를 구하였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별 어려움이 없이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부모에게 허락을 받아 이삭에게로 데리고 오게 된 것이다.

리브가는 어떤 여성인가?

 

1. 부지런하며 순결한 여성이었다.

 

창24:15에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고 하였다. 본문을 볼 때 리브가는 가사의 일에 매우 열중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대체로 가사에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신의 미모를 꾸밀 여유가 없을 것인데, 리브가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우리들도 리브가와 같이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꾸미며 단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리브가는 순결한 여성이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순결성이다. 신부는 신랑으로부터 순결을 요구받는다. 정결하고 순결한 여성은 훗날 결혼을 통해서 남편 앞에 설 때에 아름다움을 발하게 한다. 이같이 우리 성도들도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순결하고도 정결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하였다. 신부된 성도는 신랑 되신 예수님께로 부터 신앙적 순결을 요구받는다. 신부는 한 남자 외에 다른 남자를 둘 수 없듯이 성도는 한 주인 외에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의 순결은 성적 순결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도의 순결은 신앙적 순결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결한 모습을 지킴으로 영적 우상 숭배를 함으로 배교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도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영적 혼인 잔치에 참석할 때까지 자신의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 신앙적 순결은 계14:4,5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따라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나타낸다. “처음 익은 열매”는 구약에서는 '성물'을 의미하였으며 신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첫 수확물을 뜻하였다. 이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된 것을 나타낸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새 예루살렘 성에 참예하지 못하고 영원한 유황 불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예하는 자들 중에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 있다(22;15). 반면에 본문의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은 생활이 정결한 자이며 지상에 있는 동안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순결을 간직한 자들임을 시사한다(히 9:14;벧전 1:19).

 

2. 봉사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리브가가 물길으러 왔을 때 창24:46에 보면 “그가 급히 물 항아리를 어깨에 내리며 가로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약대에게도 마시운지라”라고 하였다. 리브가는 자신의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물을 길러서 엘리에셀에게 공손히 대접하고 또 짐승에게도 먹이고 자기의 주소 성명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또 자기 집으로 인도하면서 손님 접대를 최선을 다하여 한 것이다. 리브가로서는 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지방은 사막 지대로서 물이 잘 없다. 소중하게 길은 물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준다는 것은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것이다. 리브가의 이와 같은 봉사 정신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왕상17:8-16에 사르밧 과부

자기 아들과 함께 남은 밀가루를 마지막으로 먹고 이제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당신이 먹을 양식을 나에게 내놔라 할 때에 주기가 쉬운가? 매우 어렵다. 그가 아무리 선지자요 하나님의 종이라 해도 마지막 남은 양식을 먹지 않고 준다는 것은 힘든다. 그 동안 아껴서 먹고 남겨 둔 것을 염치도 없이 달라는 사람이 한없이 미운 것이 보편적인 사람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생의 마지막 음식이라도 자기와 자기 자식에게는 못 주더라도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에게 대접을 하였다. 그로 인해 받은 축복은 풍년이 들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마14:13-21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온 한 어린아이

자기가 먹으려고 점심으로 싸 온 도시락을 난데없이 예수님 제자라고 하면서 달라고 하니 쉽게 내놓겠는가? 아이도 지금 배가 고파서 먹어야 할 처지인데 선뜻 준다는 것은 힘든다. 그러나 주가 쓰시겠다 할 때에 두말없이 내놓았다. 어린아이지만 어른보다 더 나은 갑진 봉사였다. 이러한 마음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봉사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3. 리브가는 순종의 여성이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청혼이 왔을 때 신랑될 사람을 본적도 없다. 지금보고 잇는 사람은 엘리에셀이다. 리브가로서는 지금 모험의 단계이다. 자신의 일생을 맡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본적도 없으며 성격이나 재능이나 미모나 결혼에 대한 여러 가지 조건들을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것을 따지고 살펴보지도 않았다. 리브가의 결정은 믿음에서 오는 결정이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었다. 또 창24:61에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고 하였다.

 

리브가는 가까운 이웃에 사는 총각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보냈다는 종 엘리에셀을 따라간다면 약 800km를 가야 하는데 처녀 혼자 몸으로서 아무리 비자와 같이 간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엘리에셀을 따라 800km를 같이 동행해서 따라간다는 것은 매우 힘드는 일이다. 이것을 볼 때 리브가는 순수하고 착한 성품을 소유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리브가는 800km나 되는 먼길을 중매자를 따라 순종하며 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주를 뒤따라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by 코이네자료실